맷 데이먼(49)이 아프리카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재단을 처음 세웠을 때 대중은 반신반의했다.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유명 배우,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젊은 인텔리의 우아한 취미쯤으로 치부하는 시선도 있었다. 개의치 않고 뚜벅뚜벅 걸어온 세월이 벌써 13년. 이제 그를 ‘자선활동가’라고 소개하는 일은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의 레드카펫에 선 ‘제이슨 본’을 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비영리활동가 게리 화이트와 함께 만든 ‘워터닷오알지(Water.org)’는 에티오피아·인도·페루 등 저개발국가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선봉장이 됐다. ‘세계 물의 날’(3월 22일)을 앞둔 지난 19일 맷 데이먼을 전화로 만났다.
◇영화 제작하며 물 문제에 관심…재단 설립으로 이어져
물에 대한 관심은 2006년, 사하라 사막에서 싹텄다. 당시 맷 데이먼은 울트라 마라토너 4명이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아프리카 국가의 물 부족 실태에 대해 알게 됐다. 가장 가까운 우물이 많게는 며칠을 걸어야 하는 곳에 있고, 아이들은 물을 긷느라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른 제작자들과 함께 같은 해 10월 H20아프리카재단(H20 Africa Foundation)’을 설립해 아프리카의 물 부족 문제를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H20아프리카재단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물 관련 활동을 하는 다른 단체와의 파트너십이 필요했어요. 물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오며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단체를 수소문했죠. 그러다가 게리를 만났습니다.”
게리 화이트는 1990년부터 ‘워터파트너스(WaterPartners)’를 세워 저개발국가에 수도 시설을 공급하는 활동을 해온 물 문제 전문가다. 두 사람은 2008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주최하는 ‘클린턴글로벌이니셔티브(CGI)’에서 처음 만났다. 맷 데이먼은 “게리는 물 문제에 관해 해박하고 아이디어도 풍부했다”면서 “그와 꼭 함께 일하고 싶어서 내 파트너가 돼달라고 졸랐다”며 웃었다.
맷 데이먼의 H20아프리카재단과 게리 화이트의 워터파트너스가 합쳐져 2009년 워터닷오알지가 탄생했다. 워터닷오알지의 최우선 목표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저개발국가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수도시설을 설치하는 것. 맷 데이먼은 “많은 사람이 수도꼭지만 돌리면 깨끗한 물이 쏟아져나오는 환경에 살지만, 저개발국가의 수백만 명은 오로지 물을 긷기 위해 매일 6시간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빈곤 해결도 불가능”
워터닷오알지가 ‘시간’에 주목하는 이유는 시간이 빈곤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을 구하는 데 쓰는 시간을 절약하면 사람들은 그 시간에 돈을 벌거나 학교에 다닐 수 있다. 맷 데이먼이 “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래서 시작한 게 2010년부터 운영 중인 ‘워터크레디트(Watercredit)’ 프로그램이다.
“처음 만났을 때 게리가 ‘워터크레디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해줬어요. 워터크레디트는 사람들에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줘서 집에 수도 시설과 화장실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입니다. 전통적인 자선단체들이 주로 하는 우물 파기 사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아이디어였죠.”
게리 화이트는 30년 동안 저개발국가를 돌아보며 수십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을 얻는 데 수입의 20% 이상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역의 물 공급업자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물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마다 수도 시설을 갖춘다면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매달 물을 얻는 데 60달러를 쓰던 사람이 워터크레디트 프로그램을 통해 집에 수도 시설을 설치할 비용을 대출받으면 매달 대출금과 수도 사용료를 합해 10달러만 내면 됐다. 당장 한 달에 50달러를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현재 워터크레디트의 대출금 규모는 12억5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에 달하고, 혜택을 입은 사람은 1600만명에 이른다.
◇“배우라는 명성 활용해 메시지 더 멀리 전파할 것”
그는 “기업과의 파트너십은 우리의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맥주 브랜드 ‘스텔라 아르투아’와 함께하는 ‘푸어잇포워드(Pour It Forward) 캠페인이 대표적 사례. 스텔라 아르투아 전용 잔 ‘챌리스(Chalice)’를 한 개 구매하면 수익금 약 3달러가 워터닷오알지에 기부돼 저개발국가 주민 한 사람이 5년 동안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구매 행위만으로 쉽게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죠. 또 식탁에 놓인 잔을 보며 물 부족 국가 사람들을 떠올릴 수도 있고요.”
2015년 처음 시작된 푸어잇포워드 캠페인을 통해 지난해까지만 2100만달러(약 237억원)가 워터닷오알지에 기부됐고, 160만명이 5년 동안 깨끗한 물을 공급받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받게 됐다. 이달 초부터는 국내에서도 ‘멋진 한 잔’이란 이름으로 푸어잇포워드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10년 넘게 배우와 자선활동가의 삶을 병행하면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오히려 배우라는 직업 덕분에 물 문제의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더 널리 알릴 수 있었다”며 웃었다.
“지금 이 인터뷰도 한국 독자들에게 워터닷오알지를 소개하는 좋은 기회이고요(웃음). 물 관련 이슈는 굉장히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임에도 사람들이 별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주제입니다. 이런저런 원인이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이니까요. 수돗물이 펑펑 나오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도 않고요. 저 같은 유명인이 이처럼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관심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감을 느껴요.”
워터닷오알지가 설립된 지도 어느새 10년. 맷 데이먼은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꿈을 꾼다. “여전히 우리 앞에는 어마어마한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앞으로 게리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파트너들과 협력하며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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