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지킨다”… 위기의 순간, 대처능력 키운다
“위급한 상황 닥쳤을 때 배에 힘 주고 고함치세요”
어른 개입 불가능 상황 속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실감나는 역할극 통해 간단한 호신술 가르쳐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교사도 함께 교육
“아~~~~~~~~.”
여효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리(연수종합사회복지관)가 고함과 함께 팔을 휘두르며 교실을 휘젓는다.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안전한 곳까지 뛰어가면서 내지르는 ‘특별한 고함소리’다. 우렁찬 고함과 과도한 몸짓에 놀란 아이들이 술렁거린다. “평소에 내는 소리와는 다르지?” 시범을 마친 여효선 대리가 말한다. “캡(CAP) 고함이라고 부르는 건데, 우리 뱃속에 들어있는 호신용 호루라기 같은 거야.” 이번에는 아이들 차례다. “횡경막에 주먹을 대고, 목이 아닌 배로 깊게”라는 설명에 아이들은 주먹을 배로 가져가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곧이어 학급 전체가 일제히 내지르는 함성은 교실을 뚫고 학교 전체에 퍼져 나간다. 고함에 놀란 옆 반 아이들이 4학년 2반 창문 아래 모여든다. “너무 잘했어요.” 여효선 대리는 아이들을 독려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으니 정말 위험한 상황에서만 써야 해요”라는 당부를 덧붙인다.
지난 19일, 인천가현초등학교 4학년 2반 교실에서 아동폭력예방교육이 진행됐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진행하고 있는 ‘캡(CAP, Child Assault Prevention) 프로그램’이다. 1978년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처음 시작돼 현재 전 세계 18개국 35개 지역에서 이뤄지는 아동폭력 예방교육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2009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교육철학의 핵심은 ‘임파워먼트(Empowerment)’다. 어른의 개입이 불가능한 위험 상황에서도 아동이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교육은 아동들이 가진 권리와 힘을 일깨워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3인 1조로 이뤄진 이날 교육팀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안전할 권리, 씩씩하게 자랄 권리, 자유로울 권리’를 설명했다. “안전한 사람은 누구며, 함께 있으면 기분이 어떤가” “씩씩하게 용기를 냈던 경험은 언제인가” 등의 질문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소 어려운 ‘권리’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알게 했다. 이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형태를 폭력으로 규정했다.
세 선생님은 갖가지 폭력 상황을 ‘역할극’으로 표현했다. 등굣길 친구에게 돈을 빼앗기는 상황을 실감 나게 표현한 역할극이 끝나자, 아이들은 “학교 가기 두려울 것 같다”, “겁나고 슬프다”며 안타까워했다. 낯선 사람이 거칠게 아이를 데려가는 역할극을 보면서는 “어! 안돼!” 하며 격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역할극에는 서로 “저요! 저요!”라고 손을 들며 의욕을 보인다.
역할극이 끝나면 대응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일러준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간단한 호신술도 그 방법 중 하나다. 팔을 잡혔을 때 정강이를 겨냥해서 낮게 차는 것이나, 입을 막은 손의 새끼손가락을 뒤로 꺾는 것 등 아이들은 손쉽게 자신을 지키는 방법들을 배웠다. 여효선 대리는 “어른들의 일방적인 보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끄집어내는 것이 교육의 기본 방향”이라며 “무조건 ‘조심해라’가 아니라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고 설명했다. 수업을 마친 김초아(10)양은 “캡 고함을 새로 배운 것이 가장 좋았다”며 “배로 소리를 내니, 목으로 낼 때보다 너무 커서 놀랐다”고 했다.
캡 프로그램은 아동에 대한 교육뿐 아니라, 반드시 학부모와 교사들 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가현초등학교의 경우 지난 17일 오전에 부모들이, 오후에는 교직원들이 교육을 받았다. 이지영 인천가현초등학교 4학년 2반 담임교사는 “월요일에 전체 교직원 30명이 수업을 들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며 “전문적인 내용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았고, 역할극을 통해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캡 프로그램은 전 세계 수 백만명의 아동, 학부모, 교직원들을 통해 이미 그 효과성을 입증받았다. 납치의 순간에 캡 고함을 지르고 도망가 위기를 모면했다거나, 호신술을 이용해 빠져나왔다는 후기가 세계의 아동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국내에선 지난 2009년부터 전국 830곳의 초등학교, 어린이집 등에서 14만7000여명의 아동이 교육을 경험했다. 2010년까지는 어린이재단 직원들이 교육을 수료하고 팀을 만들어 진행했지만, 아동폭력 문제가 심각해지고 교육을 원하는 곳이 급증하면서 일반인 전문가도 양성되고 있다. 작년에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이기도 한 김경란 KBS 아나운서가 캡 전문가 양성교육을 이수하고, 아동폭력예방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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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부터 64년 동안 국내외 어려운 아동을 도와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현재 5만명의 아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아동의 권리옹호와 안전을 위해 성폭력 및 아동학대예방교육CAP(Child Assault Prevention), 학교폭력예방 (NO-Bullying) 및 실종.유괴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다.
후원문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희망나눔센터 전화 1588-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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