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북한 결핵 퇴치 활동 20년 외길, 유진벨재단 인세반 이사장
약제 내성 생긴 ‘수퍼 결핵’, 북한 내 年 8000명 생겨
방북 수월한 ‘다국적 결핵 퇴치단’ 구성
3주간 북녘 땅 돌면서 환자 진료
올 한 해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었다.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고, 이산가족 상봉도 이뤄졌다. 지난달 3주에 걸쳐 북한 정기 방문을 다녀온 인세반(68·스티븐 린턴) 유진벨재단 이사장은 한반도를 뒤덮은 화해 무드가 누구보다 반갑다. 그는 지난 1995년부터 20여 년간 묵묵히 대북 의료지원 사업을 이끌며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 매년 봄·가을 대표단과 함께 1년에 두 번 방북해 현지 의료진과 북한 내 결핵 퇴치 활동을 벌인다. 중증결핵이라 불리는 ‘다제내성 결핵(MDR-TB)’ 치료가 방북 목적이다. 지난 11일 재단 사무실에 만난 그는 “결핵 퇴치 활동은 죽어가는 삶을 살리는 일이자 평화를 향한 걸음”이라고 말했다. 전남 순천에서 나고 자라 한국어가 유창했지만 그의 말은 느리고 신중했다.
-다제내성결핵은 일반 결핵과 어떻게 다른가?
“약제에 내성이 없는 일반 결핵은 네 가지 약제를 6개월 정도 복용하면 대부분 치료된다. 완치율이 높고, 치료 비용도 1인당 5만원 수준에서 해결된다. 반면 다제내성 결핵 환자의 경우 치료비만 100배 정도 더 든다. 치료제 자체가 고가이기도 하지만 부작용이 많은 독한 약이라 부작용 치료제, 주사제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치료 기간도 3~5년 정도로 길다. 유진벨은 6개월마다 지원 대표단을 꾸려 중증결핵 환자들을 관리한다.”
-대표단은 어떻게 구성되나?
“북한 방문이 비교적 수월한 외국인 10여 명으로 꾸려진다. 구성원은 의사, 학자, 성직자 등으로 다양하다. 이른바 ‘다국적 결핵 퇴치단’이다.”
-지원 물품과 함께 비행기로 이동하나?
“대표단은 중국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북한에 들어간다. 지원 물품은 배로 실어나르기 때문에 대표단이 출발하기 두 달 전에 미리 보낸다. 치료약이 포함된 의료 지원품은 40피트짜리 컨테이너 3개에 담겨 가는데, 우선 평택항에서 다롄항으로 건너가 배를 갈아타고 남포항로 들어가서 평양 의료창고로 옮겨진다. 그곳에서 또 차량으로 각 지역의 의료기관에 전달된다. 우리가 보따리에 물건을 싸서 들고 가는 건 아니다(웃음).”
-방북 일정은 3주다. 어떻게 보내나?
“북한 서쪽 지역에 있는 12개 결핵 치료기관을 돈다. 일정은 빠듯하다.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환자를 만나야 하니까. 신의주 인근의 선천 다제내성결핵센터를 시작으로 평안도 양덕과 성산을 거쳐 평양에 흩어진 5곳의 기관을 방문하고, 황해도 해주와 개성까지 돌아본다. 하루 이틀 간격으로 기관마다 들러 신규 환자를 등록하고, 치료 중인 환자를 관리하고, 치료약 재고를 확인한다. 매일 아침 8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환자를 본다. 지난달 가을 정기방문 때에만 2200명을 만났다.”
-한 해에 치료하는 환자 규모는 얼마나 되나?
“올해는 1500명을 치료했다. 더 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으니까. 완치된 환자는 400명쯤 된다. 환자 대부분이 성인이다. 북한에서 소아 결핵 환자는 거의 죽는다. 우리 환자 중에서도 아동 비율은 1%도 안 된다. 그마저도 13~16세 정도를 아동이라고 했을 때다. 어린이들은 거의 사망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처럼 마음 졸이며 환자를 돌보는 북한 의료진은 12개 기관에 500명 정도 있다.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북한 내 다제내성결핵 환자는 매년 8000명가량 발생하는 걸로 추정된다. 반의반도 겨우 치료하는 수준이다.”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완치가 되나?
“결핵 요양소에 가보면 당장 약 안 먹으면 죽을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약을 먹어도 환자 10명 중 2~3명은 땅속에 들어간다. 우리가 파악하는 다제내성결핵 완치율은 75% 수준이다.”
-다양한 환자를 만났을 텐데.
“지난봄에 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결핵 요양소를 찾아왔다.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뒷좌석에 결핵 걸린 남편을 싣고 말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고 하더라. 남편 살린다고. 그 여성은 남자가 결핵 환자인 걸 알면서도 결혼했다. 사랑했으니까. 그런 거 보면 참 마음이 안 좋다. 결핵 환자 치료는 한 사람 살리는 걸 넘어 한 가정을 살리는 일이다. 이번 가을 방문에 남편을 다시 만났다. 걷지도 못하던 이 양반이 6개월 만에 많이 정말 호전됐다.”
-북한 내에서 결핵 퇴치 활동을 함께하는 협력기관이 있나?
“지금으로서는 없다. 글로벌펀드가 지난 10년간 일반 결핵에 지원해왔는데 올해 초 갑자기 지원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철수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우리가 다제내성결핵을 막기 위해 어설프게나마 애쓰고 있는데 이제 일반 결핵 치료에도 공백이 생기게 됐다.”
글로벌펀드는 국가 차원의 후원기금으로 지난 2008년부터 북한에 연간 800만달러를 지원해왔다. 덕분에 북한 내 등록된 모든 결핵 환자들은 일반 결핵 치료제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 시기 유진벨이 일반 결핵 지원에서 다제내성결핵 지원으로 방향을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글로벌펀드는 올해 초 북한 지원사업에서 공식적으로 철수한다는 입장을 내고 철수 작업에 들어갔다.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부는데 왜 갑자기 지원이 끊긴 건가?
“과거 남북 관계가 팽팽했을 때 한국 정부는 자선사업이든 개발지원이든 북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공백을 유엔 기구들이 채워줬다. 그런데 지금은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유엔이 보기에 이제 둘 사이가 좋으니까 ‘우리가 빠져도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한국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 한반도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피해 보는 사람은 발생한다. 결핵 환자들이 그런 케이스다. 남북 관계가 점차 안정되면 이 공백도 언젠가 채워지겠지만, 6개월 안에 사망할 수도 있는 환자들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글로벌펀드의 북한 지원 중단이 끼치는 영향은?
“이미 시작됐다. 북한에도 결핵실험실이 있다. 3개월마다 결핵 환자들의 가래를 받아 분석하는 곳인데, 그동안 글로벌펀드를 비롯해 세계보건기구, 스탠퍼드대학 등으로부터 오랫동안 지원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소모품이 부족하다는 요청이 우리한테 들어왔다. 글로벌펀드가 철수하는 바람에 지원이 다 끊긴 거다. 지금 북한에 결핵 치료 지원을 위해 남아 있는 곳은 우리 유진벨밖에 없다. 우리가 한 나라의 결핵을 막을 수 있겠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인세반 이사장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오히려 이번 사태가 한국에서 공백을 채워줄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정부만 바라보면 안 된다. 민간단체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문제다. 단적으로 결핵실험실 지원은 3000만원이면 된다. 의지의 문제다.”
-후원금은 주로 어떻게 모이나?
“유진벨은 정부 지원금 없이 오로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움직인다. 후원자의 80% 국내에서 모이고,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손을 보탠다. 아무래도 교포가 많다. 이 밖에 호주, 프랑스, 영국 후원자도 있다.”
-지난 20년 활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도 있을 텐데.
“만약 결핵이 에볼라처럼 사람을 빨리 죽인다면 사회가 자극받아서 뭔가 움직임이 나오겠지만 결핵은 그렇지 않다. 사람을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죽인다. 앞으로도 결핵 문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할 거다. 그래서 결핵 퇴치 분야에도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 사람들이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절대 못한다. 치료약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꾸준히 보내져야 한다. 민간이 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을 살리는 것. 그거 하나다. 다른 거 없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나는 민간관계가 활발할수록 통일의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한다. 큰 대안도 중요하지만 통일은 인맥으로 좌우될 것으로 본다. 교류가 좀 더 활발해지고 민간과 민간이 함께 호흡해야 한다. 정부가 남북 관계를 독점하게 두면 안 된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 어떻게 꾸준히 교류하겠나? 이번 기회에 더 많은 민간단체가 만들어지고 북한과 교류를 활발하게 해나가야 한다. 수만 개의 유진벨이 있으면 한반도 평화도 먼 얘기는 아니다.”
인세반 이사장은 내년에 지원할 치료약 선적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6개월 후를 기약하며 헤어진 환자들이 봄까지 버티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안양=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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