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든 싫든 월급에서 자동으로…’기부 당하는’ 직장인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내 대기업에서 운용하는 임직원 급여 기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자발적 기부’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의 월급 일부를 거두지만, 사실상 ‘반강제’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LG그룹 임직원의 월급 명세서를 보면 ‘우수리’라는 명목으로 1000원 미만 금액이 매월 빠져나간다. ‘우수리’는 물건값을 제하고 거슬러 받는 잔돈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사측은 모두 개인 동의를 받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직원들 이야기는 다르다. LG그룹 직원 A씨는 “입사할 때 서명해야 하는 여러 서류 사이에 기부 동의서가 끼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거부하기 어렵다”면서 “회사에 갓 합격한 신입 사원이 그런 문제로 인사팀과 승강이를 벌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털어놨다.

기부를 철회할 방법도 마땅찮다. A씨는 “소액이라도 내가 원하는 곳에 기부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부 철회 방법을 알아봤는데 방법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결국 그냥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직원 대부분이 반강제적 기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서 ‘기부 당한다’는 푸념이 나오기도 한다.

LG전자의 ‘2017-2018년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업장 임직원의 99.8%가 우수리 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LG그룹의 한 계열사에서 근무하는 B씨는 “동료와 술자리에서 반강제 월급 기부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돌아온 대답은 ‘그거 얼마 된다고’였다”면서 “십시일반으로 모으면 억대에 이르는 돈인데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철강 회사 포스코의 임직원들은 급여 일부를 회사 공익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부 조건은 ‘월급의 1%’ ‘월 3만원’ ‘월 2만원’ ‘월 1만원’ 등 네 가지다. 다만 일부 팀장 이상 관리자 직급은 1% 기부를 강요받았다고 증언했다. 포스코에 근무 중인 C씨는 “직급에 맞게 모범을 보여야 아랫사람들도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은근한 압박 때문에 급여의 1%를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월 500만원을 받는 직원은 한 달 5만원씩 연 60만원을 기부하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모인 임직원 기부금은 한 해 40억원에 달한다.

직원들의 기부 여부를 직속상관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포스코 직원 D씨는 “내가 원하는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려고 사내 기부를 취소했더니 부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완곡히 설득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양쪽 모두 기부금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직원들의 급여 기부는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미참여시 어떤 불이익도 없다”면서 “또한 대다수의 포스코 직원들은 우리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GS(우수리), SK(급여 끝전 모으기), 두산(임직원 기금) 등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돈을 걷어 기부금을 조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에 응한 여러 기업 직원들은 “급여 기부 자체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방식이 문제”라며 “이런 방식으로는 보람을 느끼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기업의 CSR 담당자는 “기업 차원의 급여 기부 제도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자율성·투명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급여 기부의 좋은 취지가 잘 이어지기 위해서는 직원 본인이 기부 여부나 금액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기부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정기적으로 통보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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