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지난 40년, 문턱 낮은 ‘배움터’가 되다… 올해로 40주년 맞은 성 이냐시오 야학

올해로 40주년 맞은 서강대 성 이냐시오 야학

“어머님, 아버님. 부등호 잊지 않으셨죠?”

“선생님이랑 할 때는 진짜 쉬운데… 잘 안되네.”

코끝에 걸린 안경 너머로 고심하는 표정들이 보였다. 몇몇은 실눈을 뜨고 시험지를 얼굴 멀찍이로 밀어 보곤 했다. 젊은 선생님은 책상 사이를 걸어다니며 수업을 상기시키려는 듯 중간 중간 질문을 던졌다. ‘젊은 선생님’ 보다 나이가 곱절은 많아보이는 희끗한 머리의 학생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시험지 답안을 채워 나갔다. 지난달 18일, 어둠이 어스름하게 내려앉던 시간에 찾은 성 이냐시오 야학(夜學)의 수업 현장이다.

야학 수업 현장  ⓒ차민지 청년기자

◇ 40년을 이어온 문턱 낮은 ‘배움터’

성 이냐시오 야학이 처음 문을 연 건 1977년. 여러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이들에게 야학은 문턱 낮은 ‘배움터’였다. 올해로 40년. 흐른 세월만큼 야학을 채웠던 이들도 달라졌다. 야학을 찾는 이들도 야학과 함께 한살 두살 나이를 먹었다.

“야학 초창기만 해도 대부분이 17살부터 20대 중반 젊은 청년들이었어요. 가족을 부양하거나 돈 문제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친구들이 많았던 시대잖아요. 야학이 말 그대로 야간 학교에요. 낮동안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이 저녁에 야간 학교에 와서 공부했던 거죠. 이젠 젊은 사람학생은 거의 없어졌어요. 교사들 나이가 학생에 비해 훨씬 어리죠.” 초대 교장이자, 현(現) 교장인 키스터(81) 신부의 말이다.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젊은 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경제적인 이유로 학교를 떠나는 이들도 줄고, 다른 대안교육 시설들이 많이 들어섰기 때문. 키스터 신부는 “야학이 청소년, 청년 교육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 목적은 어느정도 달성했으니,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야학을 여전히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어 지금까지 왔다”고 했다.

“지난해는 50명이 입학했고, 올해도 30명이 입학했어요. 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50대부터 70대까지 어릴적 제도권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어르신 분들이에요. 야학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는 한, 저희가 이 자리를 지켜야겠죠.”

이냐시오 문패ⓒ차민지 청년기자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치는 공간

희끗한 머리의 학생들, 이냐시오 야학으로 오기까지 각자의 사정은 같고도 달랐다.

“옛날엔 다 그렇잖아요? 가정 형편은 어렵고, 위에 언니 오빠들도 있고. 그래서 학교 진학을 포기했어요. ‘배워야지 배워야지’ 했는데, 먹고 사는게 쉽지 않았죠. 또 학비를 내고 학교 다니기엔 가족들 눈치도 보이고 부담되고. 그래서 계속 늦어진 거죠. 그런데 지금 이렇게라도 야학에 와서 수업듣고 배우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안동숙 씨)

김진수(가명)씨는 “배우지 못한 답답함 때문에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집이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못나왔어요. 초등학교 반부터 배워서 지금이 3년차인데, 사실 지금도 글을 쓰라 하면 눈앞이 캄캄해요.”

‘야학’이라고 해서, 교육과정이 만만한 건 아니다. 중등부와 고등부로 나눠져, 30여명에 이르는 교사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국사, 도덕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1년에 걸친 교육과정의 최종 종착지는 8월에 치르는 검정고시. 이를 위해 매일 3시간이 넘는 수 업을 들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다. 그렇다고 해도, ‘검정 고시’ 합격만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만학(晩學)의 학생들에게, 미처 누리지 못했을 ‘학교 생활’을 돌려주는 것, 이냐시오 야학의 ‘진짜’ 목표다.

“수업만 하면 검정고시 학원이랑 다를 바가 없겠죠. 그런데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학업외에도 소풍이나 체육대회, 졸업여행뿐만 아니라 연말에는 이냐시오의 밤 같은 행사도 함께 기획해요. 저번 기수에는 학생들과 선생님의 사연과 후기를 담아 ‘밀알지’를 만들기도 했고요.” 올해로 2년째 야학에서 봉사중인 김진미(22) 이냐시오 야학 교사의 말이다.

야학 공간에서만큼은 ‘만학’ 학생들도 나이를 잊고 동심으로 돌아간다. “학교 다닐 때, 남학생들이랑 여학생들이 복도에서 마주치면 막 장난도 치고 그러잖아요. 쉬는 시간에 여기 아버님, 어머님들도 중고생처럼 똑같은 장난을 치시더라고요. 추억을 더 많이 쌓으실 수 있게 체육대회나 엠티에도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윤진(24) 영어교사)

열정적인 교사들, 만학도 학생들에겐 마냥 “고맙고 미안한” 존재다. “여기서 같이 공부하는 언니들이 참 잘해요. 계속 와서 열심히 공부하시니까. ‘젊은 선생님’들도 참 열심이라 저도 많이 배우고요.” 안동숙 학생이 인터뷰 말미 덧붙였다. 나이 어린 교사들은 그럴때마다 손사레를 친다. 본인들 또한 가르치며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것. “작년엔 제가 중등 국어를 가르쳤어요. 그런데 어머님 한 분이 4월 달 검정고시에 합격해서 너무 감사하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그러면서 ‘너무 잘 가르쳐줘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도 같이 합격했다’고 하시는데, 뿌듯하고 감사하더라고요.” (김진미 교사)

키스터 신부ⓒ차민지 청년기자

올해로 40년 된 성 이냐시오 야학, 사실 얼마나 더 이어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1980년대 3000여개에 이르렀던 야학은 이제 250여개로 훌쩍 줄었다. 야학을 찾는 학생 수 역시 매년 줄어들어고 있다.

하지만 이냐시오의 학생들과 교사들은 현재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직 야학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물론 야학의 모습이 변하거나 사라질 수는 있겠죠. 그렇다고 야학이 걸어온 길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키스터 교장 신부)

차민지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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