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3일(월)

[고대권의 Ecrire(에크리)] 먼저 의사 물어보고장애인과 교감해요

양상추, 사과, 방울토마토, 키위, 건포도, 바나나, 호두, 땅콩, 요구르트, 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떠오르는 것은 견과류 과일 샐러드입니다. 양상추를 씻고, 사과를 썰고, 건포도를 얹고 요구르트를 섞어주면 훌륭한 과일 샐러드가 됩니다. 혼자 만들어 먹어도 맛있지만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 의미가 있습니다.

양상추를 씻고 사과를 써는 동작 하나하나가 발달장애를 지닌 장애인들에게는 일종의 훈련이 됩니다. 굳기 쉬운 근육을 반복적으로 움직이고 사용해보지 않은 도구에 적응하는 것이 이들의 자립생활을 위한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과일만 썰면 재미가 없습니다. 같이 샐러드를 만드는 분에게 하나하나 의견을 물어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이번에 바나나를 썰어볼까요, 아니면 호두를 얹어볼까요. 방울토마토를 좋아하세요, 키위를 좋아하세요. 지적장애인들도 분명한 자기감정과 의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자기 의견을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조금 천천히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급할 것도 없습니다.

도와주고 싶은 것이 생기더라도 미리 의사를 물어보세요. 도와주고 싶다고 일을 대신해주는 것은 오히려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동작을 재현해서 보여주시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가끔 하이파이브를 해보면 어떨까요. 과일 썰기, 견과류 얹기, 요구르트 드레싱 하기 작업이 끝날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면 서로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유대감이 생깁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을 받는데 작은 미소나 신나는 하이파이브가 큰 선물이나 거창한 말보다 더 유용할 때도 있다는 것을 덤으로 배웁니다.

재료가 남으면 정리를 부탁하는 것도 좋습니다. 위생 장갑을 끼고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하고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 정도는 오랜 훈련을 통해 익힐 수 있습니다. 신변처리를 위해서 했던 훈련들이 이런 순간에 도움이 되겠지요.

같이 맛있게 드시면서 생각해보시면 곧 알게 될 겁니다. 과일 샐러드같이 기본적인 재료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고 영양가도 좋은 음식이 장애인들의 자립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음식을 먹다 알게 됐습니다. 나눔은 그 밑바탕에 겸손함이 있고 봉사란 온전한 의사결정력이 있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는 그 순간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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