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네이버스 포토보이스 프로젝트
아동이 직접 권리보장, 침해받은 사진 찍어
아이들 스스로 공유하고 토론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슨 구름사다리. 초등학교 5학년 김정우(가명·12)군이 촬영한 ‘우리 권리가 침해당한 모습’이다.
“고쳐달라고 몇 번 말해도 계속 이래요. 올라가면 삐걱삐걱 소리도 나고, 몇몇 부분은 막 흔들려서 요즘은 잘 안 놀아요. 그네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선생님이 다른 놀이기구는 설치가 안 된대요.”
지난 13일, 전남 A지역아동센터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지난해 7월부터 2개월간 진행된 ‘포토보이스’ 연구에 참가했던 아이들이 다시 한 번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포토보이스는 아동이 직접 자기 권리를 보장받은 경험과 침해당한 경험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하고, 토론하는 아동권리지수 심층 연구 프로젝트다. 굿네이버스 포토보이스 프로젝트는 수도권 한 곳과 A지역 총 두 곳에서 아이 1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프로젝트 이후 아이들 뇌리에 가장 확실히 박힌 것은 ‘놀 권리’라는 단어다. 이전의 놀이가 ‘착한 일’을 한 대가이자,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상품이었다면, 이제는 유엔아동권리헌장에 명시된 당연한 권리임을 안다. 오지학(가명·12)군은 “엄마가 정한 규칙에 따라 휴대폰을 갖고 놀려면 그만큼 공부해야 한다”면서 문제집 사진을 찍어 제출하기도 했다. 수도권 참가자인 정은수(가명·12)양은 “노래방, 트램펄린 등 우리 놀이에는 돈이 필요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성수(가명·11)군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 후 얻는 시간은 놀이 시간이 아닌 휴식 시간”이라면서 “친구들과 놀기에도, 좋아하는 프라모델을 만들기에도 너무 짧다”고 말했다.
이날 아이들의 토론을 진행한 길보라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연구원은 “시간이 부족하고 놀 공간이 마땅치 않은 아이들은 자연스레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가까이 하는데, 이는 게임 중독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았다”면서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의 놀 권리를 제한하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어른들이 무심코 버리는 담배꽁초나 금연 구역 안내판에서도 아이들은 권리를 찾아냈다. 꽁초 사진을 제출한 김정우 군은 “금연 구역인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은 ‘노답(답이 없다는 뜻의 신조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학생들의 건강과 환경을 해치는 배려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신원영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연구원은 “아동이 주도적으로 연구에 참여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유엔아동권리 협약 12조에 명시된 참여권 보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아동이 권리 주체가 되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로 8회 차를 맞는 ‘청소년글로벌리더십 캠프’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소년이 2박 3일간 국제사회 문제와 그 해결 방법을 토론한 후, 학교로 돌아가 직접 후속 캠페인을 진행하도록 구성됐다. 17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청소년글로벌리더십 캠프는 ‘No one left behind(아무도 소외되지 않는)’이라는 주제로 지구촌 불평등 문제를 다룬다.
지난해 굿네이버스 부산동부지부가 금정구청과 함께 진행한 ‘청소년참여정책 창안 대회’ 또한 비슷한 사례다. 금정구 중학생들은 ‘학교에 심장제세동기 설치하기’ ‘청소년 문화시설 설립하기’ ‘또래 상담사 양성하기’ 등 청소년이 원하는 정책을 구청에 직접 제안할 기회를 얻었다.
서울동작지부는 청소년 동아리 ‘굿 프로젝트-Good teen(굿틴)’을 운영하며 학생들이 직접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등을 기획해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서도록 했다.
신원영 연구원은 “아동 권리는 아동을 단순히 보호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권리 주체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면서 “단순히 생존과 발달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의견을 묻고 표현할 기회를 주는 것이 아동 권리의 꽃”이라고 말했다.
아동 복지 선진국인 유럽은 이미 아동의 목소리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영유아 교육 정책 개선에 앞서 아동 인터뷰나 포토보이스를 통해 아동의 의견을 모으고 이를 반영한다. 영국 런던과 뉴포트(Newport)에서는 놀이터 재건 사업에 어린이를 참여시켜 이용자 친화적 놀이터를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