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집 짓기 자원봉사… 나의 행복도 지었습니다

해비타트 현장을 가다
허리엔 공구주머니 차고 각목에 못 박기 작업땀 뻘뻘… 손엔 물집…
11년 봉사 베테랑도 처음 참가한 대학생도 “보람있는 땀 흘려 기뻐”

지난달 한국을 찾은 켄 클라인 국제해비타트 이사회 의장은 취재차 만난 기자에게 “긍휼의 용량(Capacity of Compassion)을 키우러 직접 봉사현장에 오라”고 권했다. 그래서 기자는 한국해비타트 대전 현장으로 향했다.

이날 하루, 봉사자들은 홈파트너에게 희망과 행복을 선물한다는 기쁨에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몇 배로 즐거웠다.
이날 하루, 봉사자들은 홈파트너에게 희망과 행복을 선물한다는 기쁨에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몇 배로 즐거웠다.

대전시 서구 평촌동에 위치한 해비타트 퍼스트빌 단지는 논, 밭과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하고 평화로운 지역이다. 2008년 집 짓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22가구를 건축해 현재 14가정이 살고 있다. 올해에는 추가로 4가구를 새로 지을 계획이다. 이 날 17명의 봉사자에게 맡겨진 업무는 지붕 트러스 제작. 훗날 지붕으로 쓰일 삼각형 구조의 뼈대를 제작하는 것으로, 목재와 목재가 이어지는 곳에 합판을 대고 못을 박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건축과정과 주의사항 등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후, 봉사자들은 탄띠(공구 주머니를 찰 수 있는 허리띠), 못주머니, 망치, 안전모, 고글, 목장갑 등을 받아 하나씩 몸에 걸쳤다. 봉사자들의 들뜬 마음을 눈치 챘는지, 윤권중 건축부팀장이 ‘정성’을 강조했다. “못 하나를 박을 때에도 마음을 다해서, 신중히 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신기하고 재미난 체험을 하는 게 아니라, 홈파트너(수혜가정)의 삶의 터전이 될 소중한 집을 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각자 못주머니에 못을 가득 담은 후, 작업을 시작했다. 하나 둘, 못을 박다 보니 어느새 생각이 점점 없어진다. 작업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쉬워 보였는데, 손에는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고, 어깨와 팔이 쑤시기 시작한다.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선지 살짝 어지럽기까지 하다. 이제 첫 번째 트러스의 앞면 작업 하나 했을 뿐인데….

“안 하던 일 하려니 힘들죠? 그렇지만, 이 집을 통해 새로운 행복과 희망을 누리게 될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힘내세요.” 대전지회 유종곤 국장이 어느새 다가와 격려했다. “집 짓기 자체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진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 집을 통해 행복과 희망을 누릴 가족들, 단지 내 이웃들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진정한 커뮤니티…. 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떠올려보세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감동과 보람 덕에 유 국장은 11년째 해비타트 봉사현장을 떠나지 못 하고 있다. “2000년 말 우연한 기회로 지미 카터 워크 프로젝트(전 세계적 번개건축 프로젝트)가 태백 지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처음 참여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네요. 당시 만난 첫 가족에 대한 추억 때문에 아직까지 지치지 않나 봅니다.”

당시 유 국장이 집 짓기에 참여한 가족은 아버지와 삼남매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다. 백혈병에 걸린 딸아이 병을 고치느라 아버지는 퇴직금을 비롯한 전 재산을 다 써버렸다. 다행히 아이는 나았는데 이제 집도, 모아놓은 돈도 없는 가족과 함께 유 국장은 집을 지었다. “그 아버지가 얼마나 신나 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께서 필수 참여시간을 훌쩍 넘긴 1500여 시간 이상 집 짓기에 참여했어요. 입주한 후로는 새벽마다 집을 쓸고 닦고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동네 눈도 죄다 치웠죠. 입주 가정 중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가족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인생은 녹록하지 않았다. “입주한 지 1년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가난한 형편에 아이들은 이제 중고등학생이라 장례를 치를 엄두를 못 내는데, 단지 내 12가정이 힘을 모았죠. 휴가를 내서라도 모두 다 함께 장례를 치르고, 장지까지 함께 가는데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릅니다. 해비타트 집짓기의 진짜 의미는 이런 거 같습니다. 단순히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집 이상을 짓는 거죠. 희망을 짓고 행복을 짓습니다. 이렇게 가족도 짓고 서로서로 돕는 든든한 울타리를 짓죠.”

‘허리 아프고 물집 잡힌 곳이 따갑다’고 엄살 부린 것이 부끄러워졌다. ‘재미있는 체험을 한다’는 설렘만으로 내려온 것도 죄송했다. 시원한 물 한 번 마신 후 다시 망치질에 집중했다. 앞면 작업 때보다는 수월했다. 속도도 빨라졌다. 마음도 달라졌다. 드디어 첫 번째 트러스 앞, 뒷면 작업을 모두 마치고 점심 시간을 맞았다.

진정현(서울대 MBA)씨는 “졸업하려면 20시간의 봉사활동이 필수”라며 “이왕 할 봉사, 쉬운 것, 대충 하는 것 말고 제대로 해 보고 싶었다”고 집 짓기 봉사를 신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몸은 조금 힘들지만,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어서 친구들이랑 또 오려고요.” 건축가가 꿈인 고등학교 1학년 오승현군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채워야 하는 봉사활동 시간을 다 집 짓기 봉사로 채우려고 아껴두고 있었죠. 오늘도 하고요, 여름방학 동안엔 4박5일 동안 번개건축 봉사에 참여해요. 오늘 안 힘드냐고요? 에이, 재미있는 걸요. 제 꿈인 걸요.”

오전과 마찬가지로 오후에도 지붕 트러스 한 개를 앞·뒷면 모두 완성했다. 이날 기자가 박은 못은 모두 180개. 내내 꼼꼼히 우리들의 작업을 살피고 점검하던 양기흥 건축팀장이 “수고했다”며 모두를 격려했다. “땀을 흠뻑 흘리며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마시는 물 한 잔의 맛이 기가 막히죠?” 2001년 지미 카터 워크 프로젝트 당시 군산 현장의 홈파트너였던 그는 그때의 감사와 감격을 잊을 수 없어, 그 후로 11년째 해비타트 공사현장에서 후배 홈파트너들을 위해 집을 짓는다. “이제는 집짓기 봉사의 맛을 또 알아서, 못 그만두죠. 허허허.”

여기저기 쑤시고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내려올 때마다 더 설레는 채 하루 일과를 정리했다.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기자에게 유 국장은 “공정마다 매력이 다르니 또 오라”고 권한다. 기자 역시 땀 흘린 후 마시는 물 한 잔, 밥 한 그릇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맛봐선지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다음 봉사일정을 뒤적거렸다. ‘긍휼의 용량’이 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땀의 나눔’은 조금 맛본 것 같다. 앞으로 꾸준히 봉사하다 보면, ‘긍휼의 용량’도 커지지 않을까?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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