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 교수 인터뷰
‘시각장애인 한 명을 돕는 것과 2000명의 실명(失明)을 막는 일, 무엇이 나은 선택인가.’
‘우리나라도 힘든 사람이 많은데, 빈곤국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게 우선일까.’
두세 번은 곱씹게 되는 날카로운 질문들, 정답이 있을까. 여기 “답이 있다”고 단언하는 이가 있다.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이자 ‘동물 해방론자’, 미국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꼽히는 피터 싱어(Peter Singer·70·사진) 교수다. ‘동물 해방’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실천윤리학’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등 그의 저서들은 묵직한 논쟁을 세상을 던졌다.
지난 10여 년간 그의 주장에 영감을 받아 실천에 옮긴 이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500억원에 달하는 사업 소득 전체를 기부하는 이가 나오는가 하면, 비영리단체 활동을 평가하는 기브웰(GiveWell) 같은 단체도 생겨났다. ‘더 많이 기부하기 위해, 더 많이 버는 직업을 택한다’는 이들도 나왔다. 점과 점이 이어져 한 흐름이 됐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는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 운동이다. 지난 3월,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된 피터 싱어의 최신작 ‘효율적 이타주의자'(원제 The Most Good You Can Do)에 그 흐름이 담겼다. ‘효율적 이타주의’란 무엇일까. 지난 12일, 그와 스카이프로 인터뷰했다.
◇남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눠라, 단 효율적으로!
지난 40여 년간 그의 논지는 한결같다. 하나, 도울 능력이 되면서도 타인을 돕지 않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연못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못 본 척 지나치는 셈이다. 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도움을 받는 이와의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이를 모른 척하는 것이나, 연못에 빠진 아이를 지나치는 것이나 똑같다. 셋, 우리에겐 ‘기부’로 타인의 삶을 더 낫게 만들 힘이 있다. 단 ‘잘’ 기부한다는 전제 아래.
―’효율적 이타주의자’란 어떤 이들을 일컫는가.
“본인이 가진 자산, 재능, 시간을 나누는 이들이다. 동시에 그것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서 최대한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 내려는 이들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이성과 실증 자료, 연구에 기반해 기부를 선택한다. 심금을 울린다거나 개인적인 애착이 있다는 이유로 기부하지 않는다. 가장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영역을 찾고, 그 안에서도 비용 대비 가장 큰 기대 수익을 올리는 기관을 찾는다.”
―대체로 어느 정도를 기부하나.
“많은 사람이 소득의 10%만 기부하기 시작해도 대부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주장해왔다. ‘효율적 이타주의자’ 대부분이 소득의 최소 10%, 많게는 50%까지도 기부한다. 10%보다 적은 수준을 기부하지만 차츰 늘려나갈 목표를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굉장히 잘 살거나, 큰 희생을 감내한다든가, 성인군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어느 정도 생활을 꾸려나갈 돈 이상은 큰 의미가 없고,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전해졌을 때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아는 이들이다.”
그는 본인의 기부액을 묻는 질문에 “대학원생 때는 연 소득의 10%를, 책을 쓸 당시에는 아내와 함께 연간 소득의 30%를 기부했으며 이제는 기부액이 소득의 40%를 넘어섰다”고 했다. “50%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모두가 10%를 기부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비영리단체의 효과성과는 별개로, 기부 자체에 회의적인 이들도 있다. 빈곤이나 불평등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 데 반해, 기부는 구조는 건드리지 않은 채 개인적인 시혜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시각이다.
“우리가 던져야 할 올바른 질문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빈곤의 근본 원인을 직접 해결해서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대환영이다. 그런데 우리가 다뤄야 할 빈곤의 근본 원인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자본주의 체제? 부패한 정부? 잘못된 정책과 제도? 어떤 것도 온전한 답이 아니다. 또 복잡한 원인 중 하나를 건드린다고 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설령 원인을 안다고 해도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부패한 정부를 갑자기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분명한 건 지구상에 고통받는 개인들이 있고, 다른 누군가는 삶에 필요한 것 이상의 부를 갖고 있다. 둘 사이에서 굉장히 민첩하고 효과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들도 존재한다. 곤경에 처한 이를 도울 방법과 여력이 있다면 해야 하고,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기부는 ‘있는 사람들의 일’로 치부된다. 여전히 많은 이가 ‘기부할 여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력이 없다’는 이는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경우다. 나는 각자 자신의 소비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본다.
많은 이가 대단한 것도 아닌데 작은 것에 습관적으로 돈을 쓴다. 행복이나 효용은 돈이나 소유물에 정비례하지 않는다. 내 삶에 큰 차이를 만들지 않는 금액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거나 시력을 찾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대단하지 않은가? 작게라도 일단 시작하면, 소비로는 채울 수 없는 충만함을 느낄 것이다. 물론 가진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이 기부해야 한다. 가령 1년에 100만달러(약 11억원)를 번다면, 소득의 10%를 기부한다고 해도 90만달러(약 10억원)가 남는다. 안락한 삶을 누리고도 다 쓸 수 없는 액수다. 나는 기부에도 세금과 같은 ‘누진세’ 개념을 도입해,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높은 비율을 기부해야 한다고 본다.”
☞ 피터 싱어(Peter Singer)
실천윤리학 분야의 거장. 美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에 선정하기도 했다. 옥스퍼드 대학, 뉴욕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등에서 강의하였고, 프린스턴대학교 생명윤리학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효율적 이타주의자 (원제 The Most Good You Can Do)
사회의 도덕기반과 윤리 이슈들을 다루는 예일대학교 캐슬 강연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으로, 세계적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사회운동 ‘효율적 이타주의’를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