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분의 삶, 홀로 선 나<3>
“직장 선택에도 돌봄이 기준…필요한 지원 정보 찾기도 어려워”
영케어러(가족돌봄청년)의 가족 돌봄은 특정한 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식사나 병원 동행 같은 신체적 지원뿐 아니라 생활비를 부담하거나 정서적으로 곁을 지키는 일도 포함된다. 진로와 관계, 생활 전반의 선택에도 영향을 준다. <더나은미래>는 청년기부터 가족을 돌본 20~40대 당사자 세 사람을 만나 돌봄이 이들의 삶에 남긴 영향을 들었다.

◇ 돌봄, 진로의 기준을 바꾸다
“야근을 하지 않는 곳이었으면 좋겠는데, 찾기가 쉽지 않네요.”
취업을 준비 중인 영케어러 김서윤(29·가명) 씨가 직장을 구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조건은 ‘집과의 거리’와 ‘야근 여부’다. 김 씨는 “월급이 많지 않아도, 부업 수준의 일이더라도 집에 빨리 돌아갈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2018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했다. 2020년 아버지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난 데 이어, 2024년에는 어머니마저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으면서 두 부모를 동시에 돌보는 이중 간병을 맡게 됐다.
학원에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는 지금도 돌봄은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다. 아버지의 식사를 챙기고 병원에 동행하는 일상에 더해, 집을 비울 때도 비상 상황에 대비해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실제로 아버지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해 응급실로 달려가는 일이 반복됐다.
자신의 삶을 ‘24시간 대기 구조대원’에 비유한 김 씨는 “항상 예민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감정을 소모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며 “다른 분야에 호기심을 갖거나 취미를 즐길 여유와 의욕마저 사라졌다”고 말했다.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해 복지 제도를 알아봤지만, 정작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는 드물었다. 지자체의 병원 동행 서비스는 보호자가 직장에 재직 중인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어, 김 씨처럼 학원 수강이나 면접 등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주거 문제 역시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했다. 이사를 위해 LH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주거지원 조건을 확인했지만, 치매나 장기요양 대상 가족을 돌보는 청년에게 제공되는 별도의 가산점 항목은 없었다. 김 씨는 “20대에 가족을 돌보는 청년 상당수는 경제적 기반이 약하다”며 “주거비나 공과금처럼 일상에 직접 닿는 실질적 지원이 마련돼야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 뒤늦게 깨달은 ‘영케어러’
이진경(40·가명) 씨는 10대 시절부터 시작된 가족 돌봄을 오랫동안 ‘자식이 마땅히 해야 할 일’로만 여겼다. 알코올 의존과 정서적 어려움을 겪던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20대부터는 직접 생활비를 부담했지만 스스로를 ‘돌봄자’라고 인식하지는 못했다. 목욕 보조처럼 눈에 보이는 신체적 간병만을 돌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혼자니까 당연히 내가 곁을 지켜야 한다”고 믿으며 버텼다.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어머니의 인지·신체 기능이 급격히 악화했고, 초로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제야 조기현 N인분 대표의 저서와 심리상담을 접하며 자신이 영케어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삶의 궤적은 이미 돌봄을 중심으로 전환된 뒤였다. 해외 근무라는 오랜 꿈을 포기했고, 어머니의 병원 일정에 맞출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결혼 후에도 배우자가 생겼다는 느낌보다 “돌봄을 함께 짊어질 동반자가 생긴 기분”이었다고 돌이켰다.
필요한 정보를 어디서 얻어야 하는지도 문제였다. 돌봄자를 위한 심리상담이나 초로기 치매 관련 제도 정보 상당수는 공식 기관보다 가족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됐다. 이 씨는 “20대 초반에는 엄마가 술에 의존하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해도 어디에 물어봐야 하는지조차 몰랐다”며 “경제적인 지원을 떠나서 우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어머니는 요양시설에 입소해 있지만, 이 씨는 10~20대에 축적된 돌봄의 경험이 이후의 불안과 우울증으로 이어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금도 상담을 통해 당시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 돌보는 청년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강영란(35) 씨는 현재 청년들의 진로를 상담하고 강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료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비영리단체 ‘나돌봄연구소’를 설립하고, 청년의 ‘자기돌봄’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활동 기반에는 자신의 돌봄 경험이 자리한다. 스무 살 무렵 아버지를 여읜 뒤,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의 주돌봄자가 됐다. 사회복지사로 일할 당시에는 부여된 돌봄휴직을 모두 사용했음에도 돌봄 상황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사직서를 냈다.
이후 고립·은둔청년 등을 상담할 때 강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건넨다. “처음에는 단순 직업상담사로 바라보던 청년들이 내 경험을 들려주면 ‘나도 그렇다’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고 했다.
강 씨가 현장에서 만난 영케어러들은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돌봄 부담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직장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웠고, 경제적 빈곤에 가족 간 갈등과 고립감이 더해졌다. 친인척이 존재함에도 돌봄을 방관할 때 당사자가 받는 정서적 상처는 더욱 깊었다.
강 씨는 “위기에 처한 청년들에게는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실제 상황에서 손을 내밀어 줄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며 “가족이나 이웃, 학교의 교사뿐 아니라 비슷한 과정을 먼저 통과한 당사자 선배들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제언했다.
강 씨가 영케어러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가치는 ‘자기돌봄’이다. 그 역시 한동안 가족의 상황을 외부에 알리지 못한 채 고립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주변 어른들의 정서적 지지와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밖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치며 회복의 기틀을 마련했다.
강 씨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스스로가 마땅히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