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참사로 남지 않기 위해”…美 비영리는 9·11을 어떻게 이어왔나

직접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 늘며 ‘봉사’로 9·11 기억 이어
군인 지원부터 사회적 참사 대응·예술 프로그램까지 활동 넓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로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사 이후 피해자와 유가족을 지원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비영리단체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는 일부 단체들은 추모 방식을 바꾸고, 지원 대상을 넓히거나 새로운 사회적 미션으로 활동을 확장했다.

9·11 직후 설립된 비영리단체 가운데 상당수는 오래 활동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캠벨 빙엄턴대 교수가 당시 새로 만들어진 비영리 258곳을 분석한 결과, 155곳(60%)은 설립 후 2년 안에 운영을 중단한 것으로 추정됐다. 한편 25년이 흐르면서 9·11을 직접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도 늘었다. 현재 미국인의 약 3분의 1은 9·11 이후 태어났다. 미국 40개 이상 주에서는 학교에서 9·11을 가르치도록 권고하거나 의무화했다.

9·11 이후 설립된 미국 비영리단체들은 추모를 봉사로 연결하거나 지원 대상과 활동 영역을 넓히며 25년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9/11 데이’가 진행한 식사 포장 자원봉사 현장. /9/11 Day

이런 세대 변화 속에서 ‘9/11 데이(9/11 Day)’는 9·11을 기억하는 방식을 봉사와 연결해왔다. 2002년 9·11 당시 구조 활동 중 숨진 자원봉사 소방관 글렌 위누크의 형 제이 위누크와 친구 데이비드 페인이 시작한 단체로, 9월 11일을 선행을 실천하는 날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후 관련 법률이 통과되면서 2009년 이날은 ‘국가 봉사 및 추모의 날’로 공식 지정됐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 12월 7일에 대한 관심이 세대가 바뀌며 줄어드는 과정에도 주목했다. 페인 대표는 9·11 25주년을 맞아 관련 단체들의 변화를 조명한 미국 비영리 전문매체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와의 인터뷰에서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미래 세대가 함께하고 싶어 할 만한 무언가로 만들지 않으면 지키기 어렵다”며 “추모에만 집중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미래 세대와의 관련성이 점점 줄어들고, 결국 역사책 속 교훈이 된다”고 강조했다. 9/11 데이는 2016년 뉴욕에서 노인과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위한 첫 식사 포장 행사를 시작했고, 올해 25주년에는 미국 50개 도시에서 5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2000만 끼의 식사를 포장할 계획이다.

◇ 소방관에서 군인까지, 또 다른 참사로

지원 대상을 넓히거나, 축적한 지원 경험을 다른 참사에 적용하는 단체도 있다. ‘터널 투 타워스 재단(Tunnel to Towers Foundation)’은 9·11 당시 세계무역센터로 향하다 숨진 뉴욕 소방관 스티븐 실러를 기리며 시작됐다. 설립 초기에는 소방관과 최초 대응 인력을 주로 지원했지만, 2009년 전쟁에서 사지를 잃고 귀환한 참전군인의 주택 건설을 지원한 것을 계기로 군인과 그 가족까지 사업 대상을 넓혔다.

현재는 중상을 입은 참전군인과 최초 대응 인력, 현역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유가족 등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 부담이 없는 주택을 지원한다. 지금까지 제공했거나 건설 중인 주택은 약 1700채다. 사업 확대와 함께 모금액도 2014년 730만 달러(약 98억 원)에서 2024년 5억3950만 달러(약 7262억 원)로 약 74배 늘었다. 지원 범위가 넓어진 뒤에도 9·11과의 연결은 유지하고 있다. 올해는 당시 숨진 뉴욕 소방관 343명을 기려 343채의 주택을 지원한다.

한편 ‘보이스 센터 포 리질리언스(Voices Center for Resilience·VOICES)’는 9·11 직후 유가족들이 정확한 정보와 필요한 지원을 찾도록 돕는 데서 출발해 다른 대형 참사 피해 공동체로 활동을 넓혔다. 2012년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6명이 숨진 샌디훅 초등학교 총격을 비롯해 오클라호마시티 폭탄테러, 찰스턴 교회 총격, 파크랜드 고교 총격 등 테러·총격 참사 피해 지역을 지원해왔다. 단체 이름도 2020년 ‘보이스 오브 셉템버 11(Voices of September 11th)’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VOICES는 참사 직후에 그치지 않고 9·11 유가족과 생존자, 대응 인력을 대상으로 1대1 상담과 외부 서비스 연계, 대면·온라인 지원그룹, 사별·정신건강 지원 등을 이어왔다. 이러한 방식은 다른 참사 피해 공동체에도 적용하고 있다. 메리 페쳇 VOICES 창립자 겸 사무총장은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와의 인터뷰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은 정부의 시간표가 아니라 그들의 시간표에 맞춰 정보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싱 포 호프는 9·11 직후 소방관과 유가족을 위한 음악 활동에서 출발해 학교·병원·공공공간 등으로 예술 프로그램을 넓혔다. 사진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싱 포 호프 피아노’. /Sing for Hope

◇ 소방서 앞에서 시작된 노래, 예술 프로그램이 되다

9·11에서 시작된 음악 활동은 25년 동안 학교와 병원, 공공공간을 아우르는 예술 프로그램으로 확장됐다. ‘싱 포 호프(Sing for Hope)’는 당시 줄리아드 음대 학생이던 모니카 유누스와 카밀 자모라가 9·11 직후 학교 인근 소방서에서 생존한 소방관과 유가족을 위해 노래한 데서 출발했다. 이후 학교와 병원 등으로 활동을 넓혔고, 2006년 비영리단체로 법인화했다.

현재까지 병원과 학교, 노인시설, 난민캠프, 공공공간 등 세계 각지에서 200만명 이상에게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대표 사업인 ‘싱 포 호프 피아노(Sing for Hope Pianos)’는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피아노 700대 이상을 공공장소에 설치한 뒤 학교와 병원, 지역사회 시설 등으로 옮겨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싱 포 호프는 현재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조직의 출발점을 9·11로 설명하고 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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