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라캉(J.Lacan, 1901~1981)의 말이다. 오늘날 청춘들은 살이 찔까봐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취업에 방해될까봐 캠퍼스의 낭만을 유예한다.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진짜 자신은 소외된다.
여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당신도 괜찮다’고 말하는 잡지가 있다. 여성복 사이즈 66과 남성복 사이즈 100에서 이름을 딴 플러스사이즈 패션 독립잡지 ‘66100’이다. 잡지의 발행인은 2010년, 풀 피겨 패션위크 LA를 통해 데뷔한 대한민국 최초의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30)씨다. 그는 어쩌다 독립잡지를 발행하게 됐을까. 지난 7월8일, 방배동에 위치한 66100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패션모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대학에서 외식조리학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 관련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했는데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죠. 시름에 잠겨있는데, 텔레비전에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Onstyle 채널에서 방영하는 서바이벌 슈퍼모델 오디션 프로그램)’ 지원자 모집 공고가 나오더라고요. ‘당신이 다음 주인공입니다’ 라는 문구를 보는데, ‘나는 언제 (내 삶의) 주인공이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길로 원서를 제출했죠. 서류는 통과했는데 2차에서 떨어졌어요.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미국 LA에서 플러스사이즈 모델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LA로 날아갔어요. 그렇게 모델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독립잡지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미국에서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데뷔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일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내가 모델로서 쓸모가 없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죠. 누군가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델로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나온 게 66100 창간호(2014년 여름호)예요. 뉴욕에 가려고 모아둔 경비를 발행비로 썼죠. 잡지 구독료만으로는 유지가 어려워서, 작년부터 동명(同名)의 플러스사이즈 패션 쇼핑몰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66100은 어떤 잡지인가요?
“66100은 플러스사이즈 모델이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만든 잡지에요. 기존의 상업 패션 잡지엔 마른 모델만 나오잖아요. 모델이 플러스사이즈라고 해서 독자까지 플러스사이즈는 아니에요. 66100 독자 중엔 남자도 있고, 연령대가 높은 분들도 꽤 있어요. 독자 참여 프로젝트에 오는 분들을 살펴보면 뚱뚱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비율도 반반정도 되고요. 플러스사이즈 패션이 중심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수용’과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독자층이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66100은 ‘뚱뚱해도 아름답다’가 아니라 ‘뚱뚱하고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어요. 편집장으로서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아름다움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아름다움은 자신이 알고 있을 때 나온다는 사실이죠. 본인이 아름답다는 걸 모르는 사람을 일깨워주는 게 66100이 하려는 일들 중 하나예요.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독자들이 직접 66100의 모델로 나서는 ‘메이크오버(Makeover)’ 프로젝트가 있죠. 이전에는 자신에 대해 잘 모르다가, ‘내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 분들이 많아요. ‘상견례를 앞두고 있는데 뚱뚱해서 걱정’이라던 독자 한 분은 메이크오버에 참여한 후 자신감을 되찾았어요. 얼마 전 그 분으로부터 ‘곧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정말 뿌듯했어요.”
-여러 형태의 아름다움 중에서도 66100에는 유독 ‘섹시(Sexy)’하게 표현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 말을 많이 들어요(웃음). 처음부터 의도한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더라고요. 사실 뚱뚱한 사람은 귀여운 이미지로 많이 소비돼요. 그런데 ‘귀엽다’는 말은 (외모적으로) 정말 할 칭찬이 없을 때 쓰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뚱뚱한 사람도 섹시한 매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직접 66100의 메인모델로서 사진을 찍다보니 잡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섹시한 쪽으로 나간 것도 있는 것 같고요.
-66100은 어떤 면에서 ‘독립’ 잡지로 분류된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주류에서 생산하지 않고, 주류에서 소비하지 않는 것이 독립이라고 봐요. 한마디로 ‘돈이 안 된다’는 평가를 받는 게 독립이죠. 패션잡지만 봐도 죄다 44사이즈 모델만 써요. 그만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좁아지죠. 66100이 주류 상업 잡지의 빈틈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아, 독립잡지라고 해서 모두가 상업성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아요. 다만 돈 외의 다른 가치도 함께 추구하죠. 독립잡지 중에도 차별화를 잘 해서 ‘돈’과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경우도 많구요.”
-앞으로 66100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그때그때 닥친 일을 잘 하려고 해요. 사실 잡지 66100은 지난해 겨울호를 끝으로 발간을 멈춘 상태에요. 앞으로는 단행본 형식으로 출간해볼까 구상 중이죠. 외모다양성을 주제로 한 영화제도 기획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대해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아요.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답니다.”
김나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청세담 5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