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가 제안한 한-아프리카 협력 의제…K-보건 ODA·청년교류 확대

[현장] 한-아프리카 외교장관회의 앞두고 시민사회 정책제안서 전달
시민사회, 말라리아 대응 보건협력·재한 아프리카 청년 지원·문화교류 확대 제안

“한-아프리카 관계 역시 전통적인 경제 및 개발 협력을 넘어 한 차원 더 도약해야 할 시점입니다. 시민사회 간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최동환 아프리카인사이트 이사장은 지난 2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시민사회 정책제안서 전달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오는 6월 1일 열리는 한-아프리카 외교장관회의를 앞두고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국제보건·말라리아 퇴치와 인적·문화 교류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 정책 제안이 외교부에 전달됐다.

6월 1일 열리는 한-아프리카 외교장관회의를 앞두고 2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시민사회 정책제안서 전달식이 진행됐다. /채예빈 기자

이날 보건 분야에서는 말라리아 사망의 95%가 발생하는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한국의 보건 ODA와 바이오 기업 기술력, 시민사회 현장 네트워크를 결합한 장기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희정 국제보건애드보커시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주춤했던 말라리아 유병률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온도 상승으로 말라리아 전염 지역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며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말라리아 퇴치를 가능하게 할 백신과 치료제, 진단 기술을 모두 갖췄고 한국 역시 관련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글로벌 보건 리더십 강화 흐름에 발맞춰 정부·기업·시민사회가 함께하는 아프리카 말라리아 퇴치 협력 모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국제보건애드보커시는 1760여 개 글로벌 기관의 뜻을 모아 ▲저개발국 대상 조기진단·치료 연계형 ODA 사업 ▲AI 기반 디지털 진단 기술 및 현지 의료인 교육 확대 ▲미국·영국·국제기구와 연계한 글로벌 보건 협력 강화 ▲아프리카연합(AU) 산하 말라리아 대응기구(ALMA)와의 협력 확대 등을 주요 과제로 제안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도 목소리를 냈다. 2017년부터 아프리카에 말라리아 치료제를 공급해온 신풍제약 유제만 대표는 “기존 약에 내성이 생기면서 새 치료제가 필요하지만 환자 대부분이 저개발 지역에 몰려 있어 시장 논리만으로는 공급 확대가 어렵다”며 “신풍제약이 개발한 새 치료제 ‘피라맥스’ 역시 경제적 문제로 충분히 보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 사업 등을 통해 치료제 공급 기회를 열어준다면 한국 기술력을 알리고 ODA의 의미도 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제만 신풍제약 대표가 2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시민사회 정책제안서 전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채예빈 기자

체외진단 의료기기 기업 래피젠은 외교부 ODA 사업과 연계해 아프리카 국가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 참여, 현지 의료인 대상 진단기술 교육, 현지 생산 기반 구축 등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 “관계의 핵심은 한국에 있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시민사회는 단순 지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협력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건 협력뿐 아니라 사람 중심의 교류 기반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2만2000명의 아프리카 유학생과 청년, 커뮤니티를 장기적인 한-아프리카 관계를 잇는 핵심 연결 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허성용 아프리카인사이트 대표는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젊고 빠르게 성장하는 대륙 중 하나다”라며 “향후 수십 년 동안 정부 관료와 학자, 기업가, 문화 창작자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더 많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원과 시장에 닿는 것이 경제 협력이라면 사람의 마음과 미래에 닿는 길은 문화와 경험에 가깝다”며 “아프리카 청년 인재들이 한국에서 좋은 경험을 쌓고 본국에 돌아간 이후에도 한국과 연결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프리카인사이트는 14개국 출신 31개 기관·76명의 개인과 함께 ▲재한 아프리카 유학생과 청년, 커뮤니티에 대한 비자·장학 프로그램 지원 확대 ▲정부와 시민사회, 아프리카 커뮤니티가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협의체 구축 ▲서울아프리카페스티벌 등 민간 문화교류 플랫폼에 대한 장기 지원 등을 제안했다.

르완다 출신 방송인 마롱고 모세는 “한국에서는 아프리카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일부 자극적인 뉴스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며 “직접 만나고 교류하는 경험이 늘어나면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정의혜 외교부 차관보가 2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시민사회 정책제안서 전달식에서 한-아프리카 보건·인적교류 협력 방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채예빈 기자

정의혜 외교부 차관보는 정책 제안을 듣고 “아프리카 외교에서 ODA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같은 ODA라도 어떻게 효과성을 높일지가 항상 고민”이라며 “좋은 기술과 제품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더 잘 활용해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퇴치를 지원할 수 있을지 보건 분야에서도 중점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인적교류 제안과 관련해서는 “주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는 미래 세대이자 아프리카 각 지역을 잇는 중요한 접점”이라며 “단기간 성과를 넘어 장기적인 투자라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아프리카 외교장관회의의 성공적인 개최와 한-아프리카 관계의 실질적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사회 현장의 목소리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짚었다.

외교부는 이날 접수된 정책 제안을 향후 한-아프리카 외교장관회의와 대아프리카 외교 정책 추진 과정에 반영해 나갈 계획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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