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출생 시 1000달러 계좌 개설, 주식 투자로 자산 형성 유도
민간·기업 매칭 기부 이어지지만 “저소득층은 추가 납입 어려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인 ‘트럼프 계좌(Trump Accounts)’를 둘러싸고 억만장자와 대기업의 기부 참여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신생아 명의의 투자 계좌를 만들고 민간 자금을 결합해 자산 형성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저소득층의 실질적 자산 격차를 줄이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동시에 제기된다.

트럼프 계좌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7월 서명한 세제·지출 법안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에 따라 도입됐다. 2025년 1월 1일부터 2028년 12월 31일 사이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 아동을 대상으로 미 재무부가 아동 명의의 투자 계좌를 개설하고, 1인당 1000달러(약 144만원)의 시드머니를 지급한다.
해당 자금은 미국 주식시장 전반의 흐름을 따르는 저비용 인덱스 펀드에 투자된다. 만 18세 이후 교육비나 주택 구입, 창업 자금 등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가족이나 고용주는 연간 최대 5000달러(약 717만원)까지 추가 납입이 가능하다. 계좌 개설과 정부 시드머니 지급은 2026년 7월 4일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 억만장자·기업, 잇단 매칭 기부 약속
정부 주도의 계좌 설계에 민간 부호와 기업들이 호응하고 나섰다. 지난 2일(현지 시각) 델테크놀로지스 창업자 마이클 델과 아내 수전 델은 10세 이하 아동 2500만 명의 트럼프 계좌에 총 62억5000만 달러(약 8조96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부금은 중위 가구소득 15만 달러 이하 지역에 거주하는 아동을 대상으로, 정부가 지급하는 시드머니에 더해 적립된다. 델 부부는 백악관 행사에서 “단순한 계좌를 넘어 희망과 기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업자 레이 달리오도 동참했다. 달리오는 아내 바버라 달리오와 함께 지난 17일(현지 시각) 코네티컷주 저소득 지역에 거주하는 10세 미만 아동 약 30만 명에게 각각 250달러씩, 최소 7500만 달러(약 1076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어린 시절 주식시장에 노출된 경험이 내 삶을 바꿨다”며 “이 계좌가 아이들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기업 차원의 참여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자사 직원 자녀의 트럼프 계좌에 대해 정부가 지급하는 1000달러와 동일한 금액을 매칭해 적립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자, 마스터카드, 우버, 뱅크오브뉴욕멜론(BNY) 등이 직원 자녀 계좌에 대한 후원이나 매칭 기여를 검토하거나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계좌는 금융업계에서는 새로운 사업 기회로도 주목받는다. 계좌 운용과 수탁을 민간 금융사가 맡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투자회사협회(ICI)는 재무부에 서한을 보내 단일 사업자 지정이 아닌 경쟁적인 수탁·관리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수천만 개에 달할 수 있는 신규 투자 계좌가 생길 가능성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정책을 ‘주주 경제(shareholder economy)’의 출발점으로 설명한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더 많은 미국인이 자산 가치 상승에 참여하도록 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조지프 라보르냐 재무부 고문도 로이터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자산이 불어나는 과정을 직접 보며 복리의 효과를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추가 납입 여력 없으면 효과 제한적”
그러나 비판적 시선도 적지 않다. 컬럼비아대 사회복지대학원의 제인 월드포글 교수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저소득 가정은 추가 납입 여력이 부족해 계좌의 성장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할 수 있다”며 “정기적인 정부 기여 없이 불평등 완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책 설계 자체가 자산 격차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학자 닐 마호니와 애덤 쇼는 타임지 기고에서 “연간 최대 납입이 가능한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사이의 자산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확대된다”며 “부유할수록 더 큰 세제 혜택을 받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진보 성향 매체 트루스아웃은 이 제도를 ‘부유층을 위한 또 하나의 세금 회피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사회안전망 축소의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트럼프 계좌를 사회보장제도 민영화로 가는 ‘뒷문(backdoor)’에 비유했다가 논란을 빚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후 백악관은 “기존 제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여를 덧붙이는 보완적 장치”라고 해명했지만, 민주당은 “민영화 의도를 드러낸 발언”이라며 반발했다.
한편 대규모 민간 기부가 정책과 맞물려 확산되면서, 미국 사회에서는 기부와 정치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기부자조언기금(DAF)이다. 2024년 기준 미국 내 DAF 자산 규모는 약 3260억 달러(약 468조원)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DAF를 통한 기부금 가운데 약 6%가 로비나 정치 캠페인과 연계된 자선단체로 흘러간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민간 기부가 공공 정책과 결합하는 이러한 방식이 실제로 누구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향후 중요한 검증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