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왜 정책은 실패하는가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사회과학 가운데에서도 정책학은 비교적 젊은 학문이다. 전미정치학회(APSA·1903), 전미경제학회(AEA·1885), 전미심리학회(APA·1892), 전미사회학회(ASA·1905)는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발족했다. 이에 비해 정책학의 발전은 훨씬 더 늦다. 기존 사회과학을 토대로 정책학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시기는 20세기 후반이다. UC 버클리와 듀크대는 각각 1969년과 1971년에 정책대학원을 신설했고, 같은 시기 하버드와 미시간대 행정대학원도 명칭을 정책대학원으로 바꾸며 연구와 교육의 초점을 정책으로 옮겼다. 정책학을 대표하는 학회인 정책분석관리학회(APPAM)가 설립된 것은 이보다 더 뒤인 1978년이었다.

정책학은 정책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기 때문에, 특정 학문의 이론적 발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른 사회과학 분야와는 태생부터 달랐다. 정책학의 발전에는 대학뿐 아니라 포드 재단, 슬론 재단 같은 민간 재단, 랜드 연구소와 같은 정책 연구소가 깊숙이 관여했다.

일례로 정책학회의 설립에 큰 영향을 미친 기관 중 하나가 매스매티카(Mathematica Inc.)다. 한국에서는 수학 프로그램 ‘매스매티카’를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서 말하는 매스매티카는 1968년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설립된 정책 연구소다. 오늘날 이곳에는 2000명에 가까운 인력이 근무하며, 미국 전역의 공공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평가한다.

정책분석관리학회가 40세 미만의 유망한 정책학자에게 수여하는 ‘데이비드 커쇼상(David N. Kershaw Award)’은 1979년 37세의 나이로 암으로 세상을 떠난 매스매티카 정책연구소 사장의 이름에서 따온 상이다. 1983년 이 상의 첫 수상자인 조셉 뉴하우스는 당시 랜드 연구소 연구원이었고, 이후 하버드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보건경제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 “왜 정책은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는가”

정책학계의 실용적 분위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 2025년 11월, 나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정책분석관리학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여러 대학 연구자뿐 아니라 캘리포니아주 사회복지부(CDSS), 워싱턴DC의 싱크탱크 어반연구소(Urban Institute), 미국과학자협회(FAS) 실무진들이 함께했다. 연구자와 정책 실무자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는 이런 학회를 찾기는 쉽지 않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정책학이 탄생한 이유는 역설적이다. 성공한 정책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는 현대 연방정부의 기틀을 닦은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그 이후 가장 많은 주요 정책을 통과시킨 대통령은 린든 B. 존슨(LBJ)이다. 1960년대 중후반 그가 재임하며 제정된 법안만 보더라도, 1964년 민권법과 경제기회법, 투표권법, 1965년 메디케어·메디케이드 도입, 초중등·고등교육법, 교통부·주택도시개발부 신설, 1968년 공정주택법까지 그 목록은 길다.

그러나 이 많은 정책이 기대한 목표를 달성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책 의도를 실제 결과로 연결하는 과정을 ‘정책 집행’이라 부른다.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학자가 UC 버클리 정치학 교수이자 같은 대학 골드만스쿨 초대 학장을 지낸 애런 윌다브스키(1930~1993)다. 그는 존슨 행정부의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1970년대 ‘오클랜드 프로젝트’를 조직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캘리포니아대 출판사는 여섯 권의 학술서를 출판했고, 그중 두 번째 책이 윌다브스키와 제자 제프리 프레스먼(MIT 교수)이 공저한 『집행(Implementation)』이다.

1973년 출간된 이 책은 연방정부의 소수 인종 고용 프로그램이 왜 막대한 예산에도 목표의 3분의 1조차 달성하지 못했는지를 분석했다. 원인은 단순했다. 워싱턴이 정책 집행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여러 기관과 이해관계자가 얽힌 현실에서 조정은 쉽지 않았고, 정책 목표와 결과의 괴리는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법안 통과와 예산 투입만으로 정책 성공은 보장되지 않았다.

◇ 정책은 과학이면서 동시에 디자인이다

윌다브스키가 던진 질문, ‘집행의 난제’는 지금도 정책학의 핵심이다.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왜 의도한 결과와 실제 결과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가. 이를 이해하려면 정책의 의도와 실행 과정, 결과를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정책학은 이를 위해 경제학·통계학·정치학·심리학 등 다양한 사회과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흡수해 왔다. 특히 비용·편익 분석을 중심으로 한 경제학의 영향이 컸다. 내가 소속된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정책학과를 포함해 많은 정책학 프로그램에서 교수진 상당수가 경제학자인 이유다. 최근에는 데이터 과학과 인공지능까지 포괄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정책 연구자들은 대학, 정부, 재단, 비영리단체, 싱크탱크 등 다양한 영역에 흩어져 있지만, 공유하는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공공 정책을 분석하지 않고는 공공 조직을 이해할 수 없고, 객관적 평가 없이는 정책 집행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계다. 근본적으로 설계가 잘못된 정책은 집행이 잘될 수 없다. 정책도 하나의 서비스다. 설명서가 수십 장에 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제품은 사용될 수 없다. 지나치게 복잡한 정책 역시 실패하기 쉽다. 한국의 정부 프로그램을 떠올려 보자. 제도를 설명하기 위해 웹사이트에 수십 장의 스크린숏을 붙이거나 유튜브 영상까지 제공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디자인이 잘못됐다는 신호다.

전문가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논의한다고 해서 이런 접근성의 실패를 막을 수는 없다. 혁신위원회는 혁신을 이끌지 못한다.

정책 개선을 위해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책 ‘설계자’가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정책 ‘사용자’보다 더 잘 안다고 믿는 것은 과신이다. 누구도 복잡한 정책 문제의 모든 면을 알 수 없다. 설계자의 시각과 사용자의 경험은 다르다. 이 차이를 이해하고 좁히지 못하면 정책은 원리적으로는 옳아도 사용하기 어려운 제도로 남는다. 과학에서는 성공했지만, 디자인에서는 실패한 정책이다.

이 간극을 좁히는 책임은 국가에 있다. 세금으로 재정을 마련하고 공권력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정책 설계를 개선하려면 설계자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사용자 관점에서 정책 문제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정책은 과학이면서 동시에 디자인이다. 소비자의 경험을 무시한 채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듯, 시민의 경험을 배제한 채 좋은 정책을 만들 수는 없다. 좋은 정책은 좋은 과학이면서 동시에 좋은 디자인이어야 한다.

정책학이 처음 태동했을 때의 목표는 사회과학 연구와 정책 현장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었다. 이제 그 과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대학과 현장의 간극을 넘어서, 정책 엘리트와 시민 사이의 거리까지 좁혀야 한다. 정책이 전제하는 ‘가정’과 시민이 경험하는 ‘현실’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과학으로 출발한 정책학이 인간 중심 디자인의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정책을 사용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의 불편과 고통이 데이터가 되고, 정책 분석과 평가의 기준이 되며, 설계의 출발점이 될 때 비로소 좋은 정책이 나온다.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정책은 그때 만들어진다.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필자 소개

학계와 실무를 모두 경험한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입니다. 2026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UNC Chapel Hill) 공공 정책학과에서 교수로 가르칩니다. 이전에는 미국의 대표적 시빅 테크 단체인 코드 포 아메리카(Code for America)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하며, 미국 정부와 협력해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 서비스를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외에도 하버드대, 존스홉킨스대, 미시간대의 공공 리더십, 시민사회, 정책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연구자와 실무자가 함께 모여 데이터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공익을 위한 데이터 라운드테이블(Data for Good Roundtables)’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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