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4일(목)

커피 찌꺼기에 인생을 건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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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찌꺼기

“수많은 카페에서 매일 배출되는 커피 찌꺼기는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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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찌꺼기의 ‘재활용’에 관심을 쏟았던 임병걸씨는 2013년 커피 찌꺼기 점토 회사인 ‘커피큐브’를 창업했다

2008년 어느 여름 날, 강남의 한 카페 앞을 지나던 임병걸(38)씨. 20㎏ 포대에 가득 담긴 ‘커피 찌꺼기’를 보고 궁금증이 생겼다. ‘카페에서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 해 생활 쓰레기로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는 41만t(2014년 기준),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은 7만톤이 넘는다. 

임씨는 이날부터 커피 찌꺼기와 동거를 시작했다. 대기업 영업직이었던 임씨는 퇴근 후엔 인근 카페에서 커피 찌꺼기를 수거해 방 안에서 말렸고, 주말엔 친구가 근무하는 제약회사 연구실 한쪽을 빌려 말린 찌꺼기 재활용 실험까지 했다. 밤 10시만 되면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온다고 가족에게 핀잔도 들었다. 

◇ 커피 만들고 남은 찌꺼기 식품첨가물 등 넣어 점토로 부엉이 공예품 ‘씨울’ 제작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임씨는 3년간의 연구 끝에 커피 찌꺼기에 식품첨가물 13종과 물을 넣고 말려 뭉친 커피 점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식품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커피 찌꺼기를 단단하게 굳힐 수 있는 첨가물을 만든 것. 오로지 혼자 힘으로, 3년간 커피 찌꺼기와 사투를 벌인 결과다. 2011년엔 커피 점토 분말 국내외 특허까지 취득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2012년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회’에서 최우수 수상작으로 뽑히면서 사회적 가치까지 인정받았다. 2013년 6월에는 8년간 근무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큐브’를 창업, 커피 찌꺼기에 인생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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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점토를 활용한 부엉이 모양의 공예품 ‘씨울’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착한 기술’이 만나 사업은 순풍을 탔다. 임씨는 커피 큐브를 활용한 부엉이 모양의 공예품인 ‘씨울(c-OWL)’을 만들어 강릉커피축제나 환경행사 등에 소개했다. 제품은 엄마·선생님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아토피인 아이를 둔 한 엄마는 찰흙 대신 커피 점토를 쓸 수 있어 고맙다고 했다. 커피 점토는 첨가물까지 100% 식품이기 때문에 먹어도 해가 없기 때문. 부엉이 모양을 찍어내는 몰드와 커피점토 분말, 설명서를 세트로 구성해,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정규수업에도 친환경 교구로 납품하기 시작했다.

사업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아이들이 만든 커피 점토 공예품이 3일만 지나도 곰팡이가 생겼다. 6개월 동안 고민을 하던 임씨는 ‘곰팡이가 스는 이유’에 주목했다. 곰팡이가 생긴다는 것은 주위 습도가 높다는 뜻. 즉,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는 일종의 ‘위험 신호’였다. 

팸플릿에 ‘곰팡이가 피면 주위 환기를 시켜주세요’ ‘세균에 감염될 수 있으니 깨끗이 손을 씻으세요’ 등의 주의사항을 적어 아이들이 손쉽게 주위 환경과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체크용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위기를 또 다른 기회를 바꾼 것이다(단, 전문가의 손길로 ‘공장’에서 딱딱하게 건조된 완제품의 경우, 정말 습한 곳이 아니면 곰팡이가 슬지는 않는다). 

◇지역자활센터와 연계해 배출한 재활용 전문가만 200명

지난해 12월까지 커피큐브는 1인 기업이었다. 홀로 이틀에 한 번꼴로 경기도 안양시 일대 스타벅스를 돌며 100㎏씩 커피 찌꺼기를 수거해왔고, 이를 말려 커피 점토를 만들었다. 공예품 생산은 전국 지역자활센터 30곳과 연계해 진행했다. 각 센터에서는 기계와 재료를 구매하고, 커피 큐브는 공정 과정 교육을 제공한다. 사업 첫해에는 부산, 세종, 전북 무안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예품 ‘씨울’ 생산공정을 일일이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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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큐브 홈페이지

임씨는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서 팔면 9000원을 버는데 ‘씨울’은 10개만 만들어도 된다”면서 “기술이 향상돼서 하루에 100개씩 만들면 젊은이들만큼 수익이 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한 이들은 3개월간의 교육과정을 거치면 커피 찌꺼기 재활용 전문강사로 나설 수 있고, 강사료도 100% 자신의 몫이다. 현재 방과후 학교나 문화센터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활용 전문가가 200명 정도다. 

부엉이 모양의 메모꽂이인 ‘씨울’ 뿐만 아니라 곰, 너구리, 고양이 등 다양한 모양의 디퓨저, 화분 등 신제품도 계속해서 개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공예품은 커피 전문점의 인테리어용으로 납품한다. 최근 인기 있는 상품은 ‘커피 화분’. 다육식물용 미니화분을 커피 찌꺼기로 만들었다.

카페 매장 내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판매까지 할 수 있어 카페 사장님들의 반응이 좋다. 현재 제휴 카페는 30곳, 올해 안에 100개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많이 팔릴수록, 지역자활센터 어르신들의 일자리도 늘어난다. 1인 기업이었던 커피큐브의 첫 해 매출은 2000만원, 다음해는 7000만원, 2015년 매출은 8000만원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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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찌꺼기로 만든 다육식물용 미니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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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큐브의 수공예품 제작은 모두 지역자활센터에서 담당한다(오른쪽)
 

◇해외로 뻗어나가는 커피 찌꺼기의 변신은 어디까지?

이제는 ‘동지’도 생겼다. 작년 12월 이후 전 직장 동료를 비롯해 3명이 커피큐브에 합류한 것. 사업 초창기부터 임씨의 아이디어를 지지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응원군’이다. 연봉의 5분의 1을 깎고도 합류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다들 재미있어해요. 비전이 명확한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아요. 어쨌든 커피 찌꺼기는 엄청나게 발생하고, 이를 처리하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환경 오염도 큰 문제가 되고요.” 미래를 봤다는 말이다.

만약 스타벅스에서 100%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해도, 커피 찌꺼기의 5% 수준 밖에 안된다. 현재 10만개에 달하는 카페에서 매일 발생하는 커피 찌꺼기의 양은 엄청나다. 임씨는 사회 문제에서 바로 시장을 발견했다. 커피 찌꺼기를 친환경적으로 업사이클링할 수 있는 ‘특허 기술’을 보유한 커피큐브의 성장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커피큐브의 기술력이 알려지면서,  해외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미국‧일본‧독일 등에서는 별도의 특허 출원 과정을 밟고 있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는 기술 이전 작업이 진행중이다. 커피큐브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다. 임씨는 “미국, 베트남, 호주, 중동 등 세계 곳곳에서 연락이 온다”면서 “커피 찌꺼기를 처리하는 것은 글로벌 이슈 중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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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점토로 만든 커피 곰 열쇠고리(커피큐브 제공)
 

임씨는 커피 찌꺼기 100% 재활용을 꿈꾼다. 그가 지난 한 달간 야심차게 준비한 것은 바로 ‘커피 벽돌’. 커피 찌꺼기를 고체화해, 이를 3kg짜리 단단한 벽돌로 만든 것이다. 오는 5월 15일, 16일, 22일, 23일 선유도 공원에서 열리는 ‘대학생건축과연합회(Union of Architecture University in Seoul, UAUS)’의 건축연합축제에서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이 커피 벽돌 1000장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선보일 예정이다.

“사실 이미 몇몇 카페에서는 커피 벽돌로 매장 인테리어를 꾸미고 싶다는 요청도 있어요. 매장마다 골치덩어리인 커피 찌꺼기를 친환경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커피 찌꺼기를 100% 재활용할 수 있게 되면, 다음은 녹차 찌꺼기. 그 다음은 바나나 껍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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