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파키스탄에서 이어진 코이카 인도적 지원
주민들의 삶을 지탱하고 공동체 회복의 기반을 만들다
이스라엘 공습 때 머리에 파편을 맞아 쓰러졌던 팔레스타인 청년 아흐마드 아베드(19)는 한때 밥을 혼자 먹는 것조차 힘들었다. 22일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에도 팔다리가 마비되고 시력을 잃어 계단을 오르거나 세수를 하는 일상마저 버거웠다. 그러나 쿼바티아 재활치료센터에서 물리·작업치료와 심리상담을 받으며 그는 다시 혼자 식사하고, 계단을 오르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 그는 “이제는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다시 웃을 수 있다”고 전했다.

아흐마드씨가 몸과 마음을 회복한 재활치료센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과 세계보건기구(WHO)가 2021년부터 추진해온 협력 사업의 성과다. 올해 4월 라말라와 쿼바티아에 문을 연 이 센터는 기존 공공병원을 리모델링해 물리·작업·언어치료와 심리상담을 통합 제공한다. VR 기반 보행훈련 시스템과 3D 인지재활 장비 등 최신 시설을 갖춰, 분쟁으로 삶이 무너진 주민들에게 단순한 치료를 넘어 ‘일상 회복의 거점’이 되고 있다.
국제 평화의 날(9월 21일)을 맞아, 코이카가 팔레스타인과 파키스탄 등 분쟁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인도주의 지원 현장을 짚어봤다. 코이카의 핵심 접근은 국제기구와 시민사회 등 다양한 파트너와 손잡고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일상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니세프와 협력해 2021년부터 ‘서안지구 통합 교육환경 개선사업’을 추진하며, 장기간 분쟁으로 피해를 지역사회의 유치원과 초·중등학교 시설을 개선했다. 또 현지 NGO인 ‘사와(Sawa)’와 함께 분쟁 피해 주민들에게 심리 상담을 제공해 공동체가 다시 설 수 있도록 지원한다.
김민종 코이카 팔레스타인 사무소장은 “분쟁과 난민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과제”라며 “코이카는 단기 구호를 넘어 주민들이 스스로 회복력을 가질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파키스탄 난민촌, ‘깨끗한 물’이 만든 변화
2021년 탈레반 집권 이후 파키스탄 북서부 다르가이 난민촌으로 피신한 아프간 난민 사미 울라 씨 가족의 가장 큰 고민은 물이었다. 어린 딸들이 매일 몇 시간을 걸어 오염된 물을 길어와야 했고, 주민들은 잦은 질병에 시달렸다. 그는 “그때는 매일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변화는 코이카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급수 시설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사미 씨는 “이제는 물 걱정 없이 지냅니다. 딸들도 먼 길을 가지 않아도 돼 공부할 시간이 생겼다”고 전했다. 깨끗한 물이 공급되자 아이들은 다시 책상에 앉았고, 마을에는 작은 정원이 들어섰다. 코이카는 14곳의 수원지를 조사해 8곳에 급수 시설을 세웠다. 대형 시설 두 곳만 지으려던 계획을 바꿔 작은 시설을 여러 곳으로 나눈 덕분에 더 많은 가정이 고르게 혜택을 받았다.
◇ 안전한 병원, 학교로 돌아간 아이들…뿌리에 ‘공동체’를 세우다
코이카는 또 난민 아동들이 배움을 이어가도록 교육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중등 여학생 3300여 명에게 교통비를 지원하자, 재학 유지율은 93%까지 올랐다. 조혼을 막는 효과도 있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1700여 명의 아동에게는 ‘가정 기반 대안 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며, 교사 연수와 태블릿PC 보급으로 디지털 교육 환경을 확충했다. 학교 8곳의 시설 개보수도 진행됐다.
보건 환경도 달라졌다. 카이베르파크툰크와주와 발루치스탄주의 공공 의료기관 16곳에는 의료 장비와 태양광 발전 시스템이 설치돼 전력이 불안정한 지역에서도 진료가 이어졌다. 퀘타의 신장비뇨기병원에는 산소 발생 장치가 들어섰고, 모자보건센터 6곳은 보수 공사를 거쳐 24시간 분만실과 구급차를 갖춘 임산부·신생아 보호 거점이 됐다. 2024년 한 해 동안만 14만 명이 기초 진료를, 15만 명이 결핵 검진을 받았다.
코이카는 인도적 지원이 뿌리내리려면 주민 스스로가 주체가 돼야 한다고 본다. 난민과 기관을 잇는 ‘커뮤니티 봉사자’ 제도를 운영해 현장의 요구를 직접 듣고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성소수자·장애인을 위한 NGO 연계, 성폭력 위험 요소 조사도 병행해 소외되는 목소리가 없도록 하고 있다.
라갑채 코이카 분쟁취약지원팀장은 “분쟁 취약 지역을 지원할 때는 단순한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개발과 평화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세 가지 요소가 맞물려야 지원 효과가 오래가고 지역사회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코이카가 내세우는 ‘인도적 지원-개발-평화 연계(HDP 넥서스)’ 원칙이다.
라 팀장은 또 “분쟁 취약 지역 지원은 인도적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안전과도 직결된다”며 “앞으로 국제기구와 국내외 파트너들과 협력해 지역사회의 자립 기반을 강화하고, 갈등 예방과 기후·식량 위기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맞춤형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