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ESG 경영 포럼에서 한 교수가 캐롤(A. B. Carroll) 박사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론을 소개하며 ‘CSR 피라미드’ 모형을 설명다. 그는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 위치한 ‘경제적 책임’을 가장 중요한 기업의 책임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CSR 피라미드’를 오해한 대표적 사례다.
캐롤의 CSR 피라미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자선적 책임의 네 범주로 나눈 개념이다. 1991년 발표된 논문 ‘CSR 피라미드: 조직 이해관계자들의 도덕적 관리를 향해’에서 제시된 이 모형은, 이후 경영학과 사회책임 논의에서 교과서처럼 인용됐다.
CSR 또는 ESG 경영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캐롤의 이름을 피해 가기 어렵다. 그는 1979년에 CSR의 네 가지 범주를 처음 제시했고, 1991년 ‘CSR 피라미드: 조직 이해관계자들의 도덕적 관리를 향해’라는 논문을 통해 해당 모형을 대중화시켰다. 이 논문은 CSR을 ▲경제적 책임(이익 창출) ▲법적 책임(법규 준수) ▲윤리적 책임(사회적 기대) ▲자선적 책임(좋은 기업 시민)으로 구분하며, 이후 수많은 교과서와 기업 전략 문서에서 활용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구조가 ‘피라미드’라는 이름과 형태 때문에 오독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경제적 책임이 피라미드 아래에 있으니 ‘가장 중요하다’는 해석이 일반화된 것이다. 특히 “기업은 무엇보다 이익을 내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주장이 피라미드 구조에 기대며 널리 퍼졌다.
하지만 캐롤 자신은 이런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2016년 ‘캐롤의 CSR 피라미드: 다시 보기(CSR Pyramid: Revisited)’라는 논문을 통해 오해를 직접 정정했다. 캐롤은 명확히 밝혔다. “CSR 피라미드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순차적, 위계적으로 이행하라는 뜻이 아니라, 네 가지 책임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통합적 틀입니다.”
캐롤은 그의 논문에서 다음 다섯 가지 핵심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첫째, 경제적 책임은 ‘기초’일 뿐 ‘최고 우선’이 아니다. 피라미드의 바닥에 경제적 책임을 둔 것은 기업 존속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지, 다른 책임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 경영 현장에서는 네 책임 간 상호 긴장과 조정이 요구된다고 캐롤은 강조했다.
둘째, 네 가지 사회적 책임은 수학 공식처럼 ‘동시’에 작동한다. 캐롤은 CSR을 ‘경제 + 법 + 윤리 + 자선 = 전체 CSR’로 수식화하며, 네 요소가 동시에 충족될 때 비로소 완전한 CSR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셋째, 윤리는 피라미드 전체를 관통한다. ‘윤리가 피라미드를 스며든다(Ethics Permeates the Pyramid)’는 표현은 캐롤의 철학을 집약한다. 법적, 경제적 활동에도 윤리적 기준이 필수적이며, 윤리는 단일 항목이 아니라 CSR 전반에 내재한 가치라는 것이다. 캐롤은 1979년과 1991년 그의 논문에서 윤리적 책임을 다른 사회적 책임 중 하나로 묘사했지만, 각각의 다른 책임 범주에도 윤리적 책임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넷째, 법적, 윤리적, 자선적 책임 활동이 수익성을 해친다는 가정이나 결론은 타당하지 않다. 기업이 경제적·법적·윤리적·자선적 책임을 동시에 수행하려 하면, 때때로 상충관계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캐롤은 ‘CSR 비즈니스 케이스’를 통해 사회적 활동이 오히려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법적·윤리적·자선적 목적을 위해 투입한 자원이 반드시 수익성을 해친다는 전통적 인식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다섯째, 네 가지 사회적 책임이 영향을 미치거나 받을 수 있는 이해관계자가 서로 다를 수 있다. 경제적 책임은 주주와 직원에게 가장 극적인 영향을 미치고, 법적 책임은 소유주뿐만 아니라 직원과 소비자에게도 중요하며, 윤리적 책임은 모든 이해관계자 그룹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자선적 책임은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등 사회적 책임별로 이해관계자가 다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CSR 분야의 권위자인 캐롤이 25년 만에 자신의 ‘CSR 피라미드’ 이론을 다시 설명한 데는 이유가 있다. 1991년 첫 발표 이후, 2016년 보완 논문까지 나온 지 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네 가지 책임 중 경제적 책임이 가장 중요하다는 옛날 이야기만하고 있다.
그러나 캐롤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네 가지 책임은 동시에, 통합적으로 실천돼야 한다는 것이다. ESG 시대에도 CSR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ESG 경영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CSR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 참고논문: Carroll, A.B. ‘Carroll’s pyramid of CSR: taking another look.’ International journal of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1, 3 (2016).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 소장
필자 소개 지속가능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하며 지속가능경영과 지속가능경제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위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 연구, 자문, 컨설팅, 국제표준 심사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환경공학과 경영학, 국제학을 공부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공급망관리와 CSR, 지속가능경영 관련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에는 한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ESG, 지속가능경영, CSR, 창업과 같은 과목을 가르쳤고, 공공기관인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초대 사업본부장으로 재직시에는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사업을 총괄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