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20대 청년이 바꾸는 ‘커피의 미래’

[인터뷰] 아린다 카리나 렝갈리(Arinda Karina Renggli) ‘렝갈리 커피 컴퍼니’ 창업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부 아체주(州)의 고산지대. 이곳에는 약 36개 마을, 2000여 명의 농민이 소속된 커피 협동조합 ‘페르마타가요(Permata Gayo)’가 있다. 농민들이 직접 자본을 출자하고 운영하는 이 협동조합은 인도양 쓰나미와 아체 지역의 무력 분쟁 이후 파괴된 커피 농장을 재건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됐다. 

페르마타가요는 중간 유통단계를 생략하고 해외 바이어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가격 협상력을 확보했다. 농민들은 제값을 받고 안정적으로 커피를 판매할 수 있게 됐고, 이는 경제적 자립과 지역 복구로 이어졌다. 현재 이 협동조합은 매달 5~10 컨테이너, 약 100톤에서 200톤에 달하는 커피를 한국,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 “조합은 단순히 돈만 버는 조직이 아닙니다”

지난 9일 한국을 찾은 페르마타가요의 마케팅 매니저 아린다 카리나 렝갈리(Arinda Karina Renggli·25) 씨는 조합의 성과로 ‘커피 수출’보다 먼저 “구급차 5대”를 언급했다. 조합은 사업 수익으로 지역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구급차를 기증하고, HPV 백신 접종, 건강검진 장비 지원 등 보건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우리는 커피로 돈을 벌기만 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조합원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믿어요.”

지난 9일 페르마타가요의 마케팅 매니저이자 ‘렝갈리 커피 컴퍼니(Renggali Coffee Company)’ 설립자인 아린다 카리나 렝갈리(Arinda Karina Renggli) 씨가 더나은미래와의 인터뷰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커피

협동조합은 농민에게 농기구를 지원하고, 가지치기·재배법·가공법 등 농업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여성 조합원을 위한 재봉교실과 보육 공간도 마련해 일과 돌봄이 병행 가능한 환경을 조성했다.

조합 내부에는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청년위원회’도 존재한다. 페르마타가요와 함께 자매 협동조합인 ‘코코와가요’ 소속 청년 약 25명이 커피 시음 훈련, 워크숍, 재봉교실 등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렝갈리 씨는 그 한계를 절감했다. “위원회가 있어도 비즈니스를 기획하거나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는 아니었고, 급여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기엔 어려운 틀이었죠.”

이 같은 문제는 단순히 조직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커피 산업 전반이 겪는 농촌 고령화와 청년 이탈의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렝갈리 씨는 “기후변화로 수확 시기를 예측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청년 세대의 참여 없이는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기보다는, 기술과 새로운 관점으로 산업을 전환할 ‘청년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 인도네시아 커피 산업에도 ‘청년 혁신’ 필요해

그가 강조한 변화의 키워드는 ‘디지털 전환’이다. 커피의 생산지, 재배 방식, 유통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추적 가능성(traceability)’이 지속가능한 커피 산업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에서는 농가 일지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기록하도록 교육했지만, 기성세대 농민들에게 디지털 기기는 익숙하지 않았다. 현장에 기술을 정착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그 공백을 메울 주체는 결국 청년 세대였다.

페르마타가요의 마케팅 매니저이자 ‘렝갈리 커피 컴퍼니(Renggali Coffee Company)’ 설립자인 아린다 카리나 렝갈리(Arinda Karina Renggli) 씨가 수마트라에서 재배한 아름다운커피의 ‘수마트라의 선물’ 커피를 들고 있다. /아름다운커피

이러한 문제의식 끝에, 렝갈리 씨는 올해 ‘렝갈리 커피 컴퍼니(Renggali Coffee Company)’를 창업했다. 현재 함께 일하는 6명의 직원은 모두 20~3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이들은 유기농 인증, 여성 커피 인증을 받은 커피를 바탕으로, 지속가능성과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글로벌 거래처를 발굴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북미 최대 커피 박람회인 ‘2025 스페셜티 커피 엑스포’에 참가해 인도네시아 부스에서 직접 커피를 소개했다. 행사 후에는 한국으로 건너와 성수동 카페 거리 등을 돌며 디자인, 포장재, 가치 소비 트렌드를 직접 조사하고 아름다운커피 등 국내 커피 브랜드들과 미팅도 이어갔다.

“내년까지 매달 한 컨테이너씩 커피를 수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청년이 중심이 되는 커피 산업 모델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커피 한 잔에서 시작된 변화. 렝갈리 씨는 그 안에 지역공동체의 회복, 청년의 미래,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담아내고 있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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