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을 앞두고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다녀왔다. 이번 출장은 평소와 달리 10명이 함께하는 동행 일정이었다. 미스크의 혼합금융팀을 비롯해 대기업 ESG팀,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월드비전의 전문가들이 한 팀을 이뤘다. 인도네시아 환경부 차관과의 미팅이 예정되어 있어, 출장단은 전통 의상인 바틱까지 준비하며 한껏 기대감을 높였다.
이번 출장은 ‘KOICA IBS-ESG 이니셔니브’ 공모 사업을 혼합금융 기반으로 제안한 국내 대기업과 미스크의 프로젝트가 타당한지 사전 검토하는 자리였다.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이란 개발 재원을 민간 투자와 결합해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달성을 촉진하는 방식이다. KOICA 현지 사무소를 비롯해 개발도상국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 ‘카프리아 벤처스(Capria Ventures)’,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임팩트 액셀러레이터이자 오랜 친구인 ‘인스텔라(Instellar)’, 소셜벤처 육성사업을 운영하는 ‘파이자(Pijar) 재단’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논의를 진행했다.
◇ 서로 다른 렌즈로 본 혼합금융
가장 뜨거웠던 시간은 외부 미팅이 끝난 뒤 매일 저녁 이어진 3시간의 토론이었다. 대기업 ESG팀은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평가를 통해 자사 ESG 과제를 도출하고, 그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셜벤처를 발굴해 투자하는 ‘임팩트 펀드’를 결성할 예정이다. 이들은 소셜벤처 팀들이 개발도상국에서도 동일한 임팩트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개발협력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민간 기업이 왜 굳이 ‘펀드 투자’라는 방식으로 이윤을 목표로 하지 않는 기업 활동을 하는지?”, “투자할 팀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전 임팩트 지표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지?” 특히, 블라인드 펀드(Blind Fund)의 특성상 투자 대상 기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젝트 성과(outcome)를 어떻게 예측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처럼 투자와 개발협력, 각자의 렌즈는 달랐다.
이미 2016년부터 혼합금융 사업을 담당해 온 입장에서, 이렇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토론이 거듭될수록, 서로의 시각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출장 중에 가져간 책이 떠올랐다. ‘볼트와 너트’라는 책 속 한 문장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빛이 렌즈를 통과할 때 빛의 파장에 따라 굴절되는 정도가 달라서 적색광은 청색광과 약간 다르게 휘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볼록렌즈를 통과한 광선은 이론상 한점으로 모여야 하지만, 실제로는 렌즈 중앙에 가까운 곳과 먼 곳에서 빛이 휘어지는 방식이 미세하게 다르다… 하지만 렌즈 2개를 결합하면 수차가 상쇄되면서 더 선명하고 질 좋은 상을 볼 수 있었다.” – 볼트와 너트 중에서
◇ 투자는 흐릿한 렌즈를 믿는 것
명확하지 않은 대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하나의 렌즈가 아니라, 서로 다른 렌즈를 조합해야 한다. 출장단이 거듭된 토론 속에서 찾고자 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혼합금융을 하나의 동일한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같은 단어를 각자가 다르게 이해하고, 성과와 지표, 투자라는 개념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과정 자체가 필요했다. 각자의 차이를 확인하고, 서로 겹쳐 보며, 흐릿했던 상을 조금씩 더 선명하게 만들어가는 것. 결국, 우리가 만들고 있던 것은 하나의 단일 렌즈가 아닌 ‘복합 렌즈’였다.
혼합금융은 아직 실험 단계다. 이 모델이 기존 개발협력 방식과 가장 다른 점은, 민간 재원의 ‘투자’ 관점이 결합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투자는 본래 ‘흐릿한 렌즈를 통해 가능성을 먼저 믿어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혼합금융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임팩트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기대치를 맞추는 과정이다. 소셜벤처들이 만들어낼 변화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 이해관계자들이 그 변화를 ‘상상(imagine)’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것이 미스크의 역할일 것이다.
이번 출장을 마치며, 이런 고민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2주 뒤, 인도로 떠나는 2차 출장에서 또 다른 ‘렌즈’가 추가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박정호 MYSC 부대표 겸 CSO
필자 소개 MYSC에서 임팩트 투자와 글로벌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특히 임팩트테크,기술기반의 소셜벤처,에 투자하고 동남아에서 임팩트를 확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ODA재원을 제공하는 혼합금융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하는 콜렉티브 임팩트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임팩트를 확대하는 일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