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5일(목)

[사회혁신발언대] 임상시험 담당자로서 환자와 공감한다는 것

김지선 한국에자이 의학부 임상시험 담당자

회사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기업철학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회사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며 일하는 직장인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회사 에자이는 모든 직원이 기업철학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며 일하는 곳이다.

에자이의 기업철학인 hhc(human health care)는 환자와 그 가족을 헬스케어의 중심으로 보고,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이를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 약 1만 명의 에자이 직원들이 이 철학을 바탕으로 환자와 가족의 관점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본사에는 hhc 활동을 지원하는 전담 부서가, 한국에자이에는 기업사회혁신 부서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나는 2년 6개월 전, 에자이 의학부 임상 담당자로 입사했다. 임상시험 기획과 운영을 통해 신약 개발을 돕는 업무를 맡아왔다. 입사 초기에는 hhc 철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환자를 중심으로 약을 개발하는 건 제약회사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저 내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러던 중,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 부서에서 글로벌 임상시험에 참여한 혈액암 환자와의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의외로 임상시험 담당자로서 환자와 직접 마주할 기회는 거의 없다. 나 역시 임상 업무를 시작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이 인터뷰는 hhc 철학의 의미를 몸소 체감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사전에 준비한 질문은 임상시험과 관련된 실무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임상시험 과정에서 겪은 불편함은 무엇이었는지?”, “제약회사가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이었다. 그러나 환자가 암 진단부터 치료, 임상시험 참여에 이르기까지 겪은 감정과 상황을 들으면서 내가 준비한 질문들이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임상시험에 참여하기 위해 환자들은 동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 동의서는 임상시험의 목적, 부작용, 혈액 샘플 채취 등 다양한 정보를 포함해 종종 수십 장에 이른다. 인터뷰를 통해 이 과정이 환자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정보 전달 방식을 보다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다. 다행히 에자이는 이를 이미 인지하고 글로벌 환자동의서 양식을 간소화한 바 있다.

환자와의 만남은 단순히 내가 환자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환자가 경험한 어려움을 듣고 공감하며, 나의 업무가 그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전 직장을 퇴사하고 1년간 일을 쉬었던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혈액암 환자들의 상황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당시 느꼈던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불안을 되새기며 환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내가 정말 환자의 관점에서 업무를 수행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전에도 업무에 자부심이 있었지만, hhc 활동 이후 내 책임감과 사고의 폭이 더 넓어졌다. 이제는 업무를 진행할 때마다 환자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다.

에자이는 직원들이 hhc 철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환자와 가족, 나아가 모든 사람이 자기답게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hhc 철학은 단순히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에자이는 정관에 기업철학이 기업이윤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명시해두고 있다.

환자 중심의 철학을 가진 회사에서 일하며, 나는 매일 감사함을 느낀다. 에자이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hhc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지선 한국에자이 의학부 임상시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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