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서 ESG(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적) 성과에 대한 각종 평가결과가 공개되고, 해당 분야의 시상식도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년간 ESG 경영이 경제계뿐 아니라 공공과 비영리에서도 주요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ESG는 더 이상 새롭거나 낯설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지나친 관심으로 약간의 부작용도 있었던 듯하다. 예를 들면 ESG 경영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ESG 경영을 도입하면서 혼란을 겪는 조직도 있었고, 환경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ESG’를 접두어처럼 붙여 사용하며 ESG에 대한 본질을 흐리고 대중에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유엔글로벌콤팩트와 함께 ESG를 개념화하고 실제화했던 금융기관들은 현재 ESG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ESG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블랙록과 뱅가드 등 주요 자산운용사는 환경과 사회 이슈, 즉 ESG와 같은 주주제안에 대한 지지를 수년째 줄이고 있다. 실제로 블랙록은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환경과 사회 관련 제안 중 4%에 해당하는 20건만 지지했고, 뱅가드는 단 한 건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면 투자자의 ESG에 대한 관심은 왜 식었을까? 아니, 실제로 식지는 않았지만 마치 식은 것처럼 보일까? 그 이유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발간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로 리뷰(Harvard Business Law Review)에 게재된 펜실베니아대학교 로스쿨 총장이자 교수인 리사 페어팩스가 쓴 ESG 관련 논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리사 페어팩스 교수는 우리 사회가 ‘ESG의 목적과 의도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잘못된 ESG가 아무런 여과 없이 전파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ESG 요소를 고려하고 이를 투자의 기준으로 삼으려던 투자자는 더 이상 사회가 만들어낸 가짜 ESG에 손을 들어줄 수 없고, 지지하지 않는 상황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블랙록의 스튜어드십 책임자는 주주총회에 올라온 ESG 이슈들을 거부하며 “지나치게 규범적이고 경제적으로 가치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 문장을 다소 가볍게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ESG의 중요한 핵심 철학이 이 짧은 문장에 담겨 있기 때문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규범적이고 경제적으로 가치가 없는 ESG는 왜 생기는 것일까?
리사 페어팩스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ESG를 오해하고 잘못 해석하는 이유가 거버넌스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시에 ESG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거버넌스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거버넌스란 권력 행사를 통제하고 지시하기 위한 내부 견제와 균형 시스템 구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거버넌스는 책임과 관련이 있는 용어로, 우수한 거버넌스는 적절한 감독과 책임을 보장하는 목표와 타깃, 정책, 관행 및 절차의 생성과 구현이 포함되어 있다.
ESG는 2004년 ‘Who Cares Wins: Connecting Financial Markets to a Changing World’라는 보고서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 보고서는 첫 페이지부터 G(거버넌스)가 ESG의 필수 구성요소임을 분명히 밝히며, 기업 거버넌스에서 모범 사례를 구현하는 것이 환경 및 사회문제와 관련된 권장 사항을 성공적으로 구현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당시 유엔에서 일하며 금융기관과 함께 이 보고서를 만든 폴 클레멘츠-헌트는, 참여자들 사이에 거버넌스가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이 있어서, 처음에는 ESG가 아닌 ‘GES’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음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E’와 ‘S’에 대한 항목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한 요소임에 반해, ‘G’, 거버넌스 항목은 주주와 기업에 도움이 되는 항목이므로 거버넌스는 ESG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의견이 있고, ESG의 광범위한 목표에 거버넌스는 관련이 없다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특히 ESG가 적용 대상이 아닌 규모가 작은 기업이나 공공과 비영리 등 다양한 조직에서 사용하게 되면서, 이들 조직에는 이사회와 주주 등의 거버넌스 항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보니 이러한 의견은 점점 더 많아지기도 했다.
리사 페어팩스 교수는 ESG에서 거버넌스를 떼어내거나 거버넌스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는 ESG를 잘 모르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ESG가 생겨난 이유를 다음 세 개의 문장으로 요약했다.
첫째, ESG는 항상 재무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도록 의도된 것이다. 둘째, ESG는 항상 주주 및 주주가치와 연결되도록 설계되었다. 마지막으로, ESG의 창시자들은 ‘G(거버넌스)’를 환경 및 사회적 문제의 성공적인 진전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ESG가 더 나은 환경과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대단한 무엇인가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ESG는 철저히 금융시장과 투자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설계된 개념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ESG 전문가도 많고 각종 행사와 교육, 도서가 넘쳐나고 있다. 잠시 시간을 내어 검색사이트에 몇 개의 키워드만 넣어보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하지만 당초 ESG의 목적과 의도와 다르게, 누군가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가짜 ESG 사업이나 행사, 교육 등도 상당수 포함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SG 경영에 관해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조직이 있다면, 2000년대 초반, ESG를 만든 사람들이 강조하고자 했던 당초의 목적과 의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주요 참고 논문
– Fairfax, Lisa M. “The OG: Unmasking Why Governance Is the Most Important Component of ESG.” Harvard Business Law Review. 14 (2024): 153.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필자 소개 공공기관인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사업본부장으로, 사회적경제 방식을 통해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사업을 총괄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환경공학과 경영학, 국제학을 공부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공급망관리와 지속가능경영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에는 한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ESG, 지속가능경영, CSR, 창업과 같은 과목을 가르쳤고, 지속가능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민간기업 및 공공기관의 자문, 교육, 컨설팅과 국제표준 심사 등의 업무를 해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