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금)

[지역의 미래] 태양과 바람의 ‘기후 리더십’

오승훈 공익마케팅스쿨 대표

118년 만에 가장 긴 열대야를 지나더니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이 온 듯하다. 기후학자들은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폭염이 사람만 괴롭힌 것은 아니었다. 충남 서산에서는 축구장 900개 면적의 바지락이, 경남 통영에서는 굴 양식의 35%가 폐사했다. 부산 앞바다의 자연산 미역은 자취를 감추었고 의성, 충주, 보은, 예산의 사과는 화상을 입어 품위가 떨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책은 대증 처방에 머무르고 있다. 피해 농가에 특별위로금을 지급하고 외국 농산물을 들여와 밥상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한다. 감사원의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 보고서를 찾아봤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형식적인 대책만 갖고 있을 뿐, 기후변화 예측과 연계된 체계적이고 실효적인 계획을 찾기 힘들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지자체도 기후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다.

◇ 태양과 바람의 도시

1970년, 독일 주정부가 전력난 극복을 위해 프라이부르크시 외곽에 원전 건설을 발표했다. 주민과 시민단체는 격렬히 반대하며 태양광을 대안으로 제시했고 9년 후 프라이부르크에는 최초의 태양전지 패널이 설치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미국에서 일어난 심각한 원전 사고는 전 세계에 원자력의 위험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프라이부르크는 ‘태양의 도시’로 불린다. 도시 곳곳의 주택, 건물, 상점, 공공시설에는 틈틈이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는데, 총면적이 축구장 21개의 크기인 15만 m2에 달한다. 모든 신축 건물은 패시브하우스(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한 건축물)설계만 허용된다. 고성능 단열재와 창호, 열 회수 환기 시스템, 태양열에너지를 활용하지 않으면 건물을 지을 수 없다. 프라이부르크는 태양에너지 관련 직업과 사업체가 독일의 다른 도시에 비해 4배가 많다고 한다.

미델그룬덴 해상풍력단지. /플리

덴마크 코펜하겐은 ‘바람의 도시’다. 덴마크는 전체 전력 생산량의 57%가 풍력발전이며, 이중 약 40%가 지역 주민들이 참여한 협동조합에 의해 운영된다. 대표적인 시민참여 모델로 꼽히는 곳이 미델그룬덴 해상풍력단지다. 전체 지분의 50%를 8500여 명의 주민이 설립한 협동조합이 소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한 전력을 4만 가구 이상에 공급하고 있다. 동시에 해상풍력단지는 연간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아마게르 바케. /아마게르 바케 홈페이지 갈무리

코펜하겐의 또 다른 랜드마크, 아마게르 바케(Amager Bakke)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쓰레기 소각장이다. 옥상에는 덴마크 최대 규모의 스키 슬로프가 있고, 외벽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80m의 인공 암벽등반시설(climbing wall)이 있다. 이 소각장은 67만 명의 시민과 6만 8천 개의 사업체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수거해서 247 메가와트(MW)의 열에너지와 전기를 동시에 생산한다. 16만 가구에 난방을, 6만2000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용량이다.

◇ 기후경영의 리더십

기후경영은 책임과 의무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기회다. 도시의 모든 건물에 패시브하우스를 의무화하면 비즈니스의 기회가 생기고 기업이 모여들어 일자리가 생긴다. 재생에너지로 저렴하게 난방을 공급하면 가구소득의 여유가 생겨서 소비가 늘어난다. 해상 풍력 발전은 이국적인 관광지가 되고 주민과 마을에는 소득 창출의 기회가 생긴다. 신입생 모집이 어려운 지방 대학을 기후대학(Climate College)으로 전환해, 전 세계 석학들과 온라인으로 연결하고 기후 인재의 산실로 키울 수도 있다.

우리도 태양의 도시, 바람의 도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국의 연간 일조량은 2000시간 이상으로 프라이부르크의 1800시간보다 많다. 강원과 경북에는 코펜하겐 못지않은 바람과 바다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후경영 리더십이다. 태양과 바람이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오승훈 공익마케팅스쿨 대표

필자 소개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지역의 미래’를 탐구하는 오래된 마케터입니다. 현재 공익마케팅스쿨 대표이자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의 전문위원으로, 공익 마케팅 전략과 지역경제 정책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슬리퍼 신은 경제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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