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매달 한 번씩 참여하는 ‘사회적경제언론인포럼’이라는 공부모임이 있습니다. 시작은 작년 초쯤 사회적기업을 취재해온 ‘이로운넷’ 선배와 통화하면서 “출입처도 없는 외로운 기자들끼리 한번 모여보자”며 뭉친 게 계기였습니다. 매달 한 분씩 모셔서 사회적기업·협동조합 분야 이야기도 듣고, 토론도 합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한겨레경제연구소가 함께하는 따뜻한 모습에 참석자 몇몇은 놀라기도 합니다. 이번 달에 만난 인물은 아쇼카의 이혜영 대표였습니다.
아쇼카는 사회 혁신 기업가(소셜 앙터프리너)를 지원하는 비영리 조직인데, 30여년 동안 88개국에서 아쇼카펠로 3000여명을 선정해 지원해왔습니다. 올해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아동 인권 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Kailash Satyarthi)씨는 무려 21년 전에 아쇼카펠로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아쇼카펠로로 선정되면, 아쇼카는 생계비(1년 평균 5000만원)를 3년 동안 지원하는데, 3개월에 한 번씩 생활비만 입금할 뿐 영수증을 전혀 요구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혜영 대표는 “3000명 중 96%가 자기 조직을 성장시켰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국 같으면 영수증 붙이느라 정신없거나, 누구 ‘백그라운드’로 이 사람 지원했느냐는 식의 공격이 들어올 것”이라고 씁쓸히 웃었습니다. 신뢰 자산이 참 무섭습니다.
아쇼카를 본뜬 재단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에코잉그린(Echoing Green) 재단은 창립한 지 3년 이내의 스타트업 사회적기업가를 지원하고, 스콜(Skoll) 재단은 사회적기업가들을 발굴할 뿐 아니라 네트워크 확산에 주력합니다. 인터내셔널 브릿지스 투 저스티스(International Bridges to Justice)라는 비영리단체는 커가는 단계별로 에코잉그린-아쇼카-스콜의 지원을 모두 받았습니다. 이혜영 대표는 “한국에선 마치 사회적기업가가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거나, 비즈니스 모델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며 “사회적기업가들은 영리와 비영리에 상관없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지난 30년간 세계적으로 통용되어온 의미”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박유현 인폴루션제로 대표, 김종기 청예단 명예이사장(시니어 펠로), 명성진 세상을 품은 아이들 대표, 정혜신 공감인 박사 등 5명이 지금까지 펠로로 선정됐습니다.
재밌는 것은 아쇼카가 재단법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쇼카는 30년 동안 수많은 기업의 지원을 받아 아쇼카펠로를 지원할 기금을 마련해 왔습니다. ‘맨땅에 헤딩’입니다. 우리는 “과연 한국에서 가능할까”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작년 3월, 아쇼카가 한국에 창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대해상과 현대백화점 두 기업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삼 두 기업이 대단해 보입니다.
아쇼카 글로벌 본부와 협력하는 기업 중 베링거 인겔하임이라는 제약 회사가 있는데, 지난 3년 동안 150억원을 투자해 보건 의료 분야 아쇼카펠로 57명을 선정했습니다. 두 곳은 파트너십을 할지 말지 1년 동안 논의했다고 합니다. 이혜영 대표는 “아쇼카를 통해 베링거 인겔하임은 사회혁신기업가 57명을 만나고, 이들을 통해 새로운 고객 600만명에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개인과 기업이 생태계로 모이고 이들이 다시 모여 팀이 되는 식으로, 세계는 ‘팀 오브 팀스(team of teams) 모델’로 움직이면서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빨리 내 것만 고집하는 ‘우물 안 개구리’ 모델을 벗어나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