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에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주술적 능력이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신에 대항한 인간의 주체적 자아가 형성되면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특별한 리더십보다 엘리트 대중과 교감하는 합리적 지도력이 중요해졌다.
근대 유럽인들은 수학과 과학적 지성을 앞세워 자신의 존엄성을 찾아갔다. 당시 지식인들은 인간이 신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이유를 인간의 이성(理性)에서 찾았다. 이성은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과 동의어였다. 서양의 이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원한 기하학(geometry)이 그 뿌리다.
기하학은 경작지의 면적 측량에서 출발해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에서 한 차원 높은 추상적 고등수학으로 발전했다. 합리와 추상적 논리를 중요한 가치로 여긴 당시 그리스 철학자들은 새로운 학문에 열광했고 모두 기하학의 마니아가 됐다.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는 이 고등수학을 기반으로 세상을 수로 설명하는 수리적 세계관을 세웠다. 서양의 수리적 전통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꽃을 피운 후 서양철학 2000년을 지배하는 이성적 사고의 원형이 됐다. 이러한 수학적 전통을 감안하면 근대 인문학자들이 인간을 자연계의 어떤 종과도 차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여긴 이유가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때문이라는 설명은 당연했다. 바로 이 수학적 이성 때문에 인간은 신으로부터 독립할 충분한 자격이 있고 신만큼 존엄하다고 생각했다.
수학에 바탕을 둔 근대의 합리적 인문주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를 명백히 드러냈다. 인간이 수학적 사유 능력을 가진 존재라서 존귀한 것이라면 수학 교육의 세례를 받지 못한 대다수의 평범한 인간은 어떤가? 평민과 노예, 여성 그리고 아프리카의 흑인, 봉건사회의 압제에 신음하던 동시대 아시아인들의 존엄성은 어찌할 것인가?
근대 지식인들의 인문주의 리더십은 자연을 철저히 수탈하고 환경을 파괴했다. 유색인종 등 여타 인류에 대해 반인륜적 억압과 착취도 일상화했다. 근대의 리더십은 끝없는 인종차별, 자연 착취와 과잉생산의 단계를 거쳐 세계 1·2차 대전을 통해 수천만명의 생명을 뺏으며 파국을 맞았다.
인류는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무력 충돌로 무고한 민간인이 살상당하는 잔인한 현장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세계 교역시스템의 붕괴로 자원과 생필품 가격이 급등해 수많은 인류가 굶주리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갈등, 한반도의 북핵 위기 등 국제 정치적 갈등은 물론 지구온난화와 오존층파괴, 종다양성 파괴로 대변되는 글로벌 환경재앙과 세계적 대형산불, 신종 바이러스 팬더믹, 원자핵 방사능 누출 등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해와 재난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우리의 행성 지구가 서양의 수학적 합리주의에 보내는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로 읽히나 우리는 아직 이 탐욕의 문명을 제어할 의지도 해법도 도출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류는 지난 30만 년을 거치며 위기의 순간마다 슬기로운 해결책을 찾아 극복했다. 이번에도 역시 축복의 해결책이 준비돼 있다. 바로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이다.
근대 인문주의적 사고는 인간이 이성이라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존엄하다고 생각한 반면,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은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존엄하다”라고 믿는 사상이다. 전쟁 중의 적군이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고 믿는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이야말로 호모사피엔스 역사가 만들어낸 숭고한 인류 정신문화다. 이러한 인도주의 정신은 현대에 와서 더욱 심화, 발전하면서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지구상의 모든 생물 그리고 지구 그 자체도 존엄하다는 현대 인도주의 정신으로 발전했다. 자연과 그 안에 사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종 모두가 같은 값으로 존엄하다는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이야말로 근대 합리주의 사상이 배태한 작금의 시대적 난제를 해결할 사상적 힘이다. ‘멸종할 때까지 경쟁하라’라는 자연 선택적 합리주의 리더십 대신 ‘상호 존중하면서 공생하라’라는 적십자 인도주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대다. 적십자 인도주의 리더십은 문명사적 패러다임을 전환시켜 인류가 온 우주와 조화를 이루게 해줄, 인류의 앞날을 밝힐 마지막 등대일지 모른다.
윤성호 대한적십자사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