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서울·인천이면 세계에 통한다” 한국에 둥지 짓는 국제기구들

떠오르는 기부강국 한국, 강력한 IT 인프라까지 갖춰
서울·인천 국제기구 현황

한국인은 세계로 나가고, 세계는 한국으로 들어온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 이어 지난달에는 소재향(52·여)씨가 국제금융기구 세계은행(World Bank·WB)에서 공채 출신 한국인으론 최초로 국장급 간부가 됐다. 외교부에 따르면, 유엔본부·아태경제사회위원회(ESCAP)·세계식량계획(WFP) 등 59개 국제기구에 총 480명의 한국인이 진출해 있다. 한편 세계는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국제회의(300명 이상·5개국 이상·외국인이 40% 이상 참석, 3일 이상 일정이 이루어지는 회의) 개최 건수가 2001년 134건에 불과하던 한국은 2012년엔 569건으로, 싱가포르·일본·미국·벨기에에 이어 세계 5위를 달성했다. 2013년 12월에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과 세계은행 한국사무소를 인천 송도에 유치, 유럽·미주 지역에 집중된 국제기구 사무국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보인다. 더나은미래는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국제기구 현황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그래픽=김현지 기자
그래픽=김현지 기자

◇IOM·UNHCR 역할 커지고, WHO 문 닫고…

2007년, 국제이주기구(이하 IOM) 서울사무소는 한국대표부로 지위가 승격됐다. 10년간 한국 내 이주자 수가 급격히 많아졌기 때문이다. 2000년 6459건이었던 국제결혼은 2011년 19만5000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박미형 IOM 한국대표부 소장은 “이주민을 교육하고 정부와 함께 사회통합 캠페인을 벌이거나, 동남아 성(性)관광 반대 등 이주민 여성 강제 성매매 애드보커시(Advocacy) 활동을 한다”고 했다. 지난해 ‘난민법(난민신청자 절차적 권리 보장·난민인정자 처우 개선 등)’이 통과되면서 유엔난민기구(이하 UNHCR) 한국대표부와 함께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졌다. UNHCR이 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면, IOM은 난민이 사회에 재정착하도록 돕는다. 2013년 한국 정부는 UNHCR 연간사업에 273만달러를 기탁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에 추가로 320만달러를 기탁했다. 2014년부터 2016년 말까지 UNHCR의 ‘아프간 난민·국내 피난민의 귀환 및 재통합 지원 사업’에 1800만달러를 추가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반면 세계보건기구(이하 WHO) 한국사무소는 2012년 9월, 설립 47년 만에 폐쇄됐다. 한국이 수혜 국가에서 지원 국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WHO는 그동안 국내 기생충 박멸, 결핵·한센병 퇴치, 천연두·홍역 예방 백신 개발에 앞장섰고 보건의료 인력 양성을 위해 유학 장학금을 지원했던 국제기구다. 2009년 11월, 유엔개발계획(이하 UNDP) 서울사무소도 같은 이유로 폐쇄됐다. 대신 UNDP 서울 정책사무소로 재개소,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바뀐 경험을 전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유엔세계식량계획(이하 WFP)도 지난 1984년 한국을 떠난 뒤에, 2005년 출장소 개념으로 서울에 사무소를 다시 열었고 2011년에는 ‘한국이 다른 나라를 돕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며 서울대에 한국사무소 둥지를 틀었다.

◇도시 간 협력기구, 국제기구 주요 주체로 등장해

정부 간 기구뿐만 아니라, 도시 간 협력기구도 뜨고 있다. 서울시에서 국제기구 전용 건물로 운영 중인 ‘서울글로벌센터'(서울시 종로구 소재)에 입주한 5개 국제기구 중 인간정주관리를 위한 지방정부망 본부(이하 CITYNET·시티넷), 지속가능성을위한세계지방정부 동아시아본부(이하 ICLEI·이클레이), 세계도시전자정부협의체 본부(이하 WeGo) 3곳이 도시 간 협력기구다. 이클레이는 84개국, 1000여개 자치단체가 가입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환경기구로, 지역의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도시의 녹색성장을 돕는 활동을 한다. 손봉희 이클레이 프로젝트 담당관은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고, 도시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70%에 달한다”면서 “국가 간에는 목표치를 제시하고 변화를 측정하기가 어려운 반면, 소도시에서는 지원의 성과들이 뚜렷하다”고 했다. 도시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이유다.

83개 도시 회원이 가입한 시티넷은 교통·수도 등 도시문제 해결을 미션으로 한다. 일본 요코하마에 있던 사무국이 2013년 서울시로 이전, 지난해 서울 총회에는 117개 도시(기관)에서 289명이 참석했다. 지난 3월 13일부터 15일까지는 네팔 카트만두에서 공무원과 프로그래머 103명이 모여, 도시문제가 무엇인지 논의하고 해결 방법을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형태로 구현하는 ‘시티앱(CityApp)’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지난 5일, 서울시는 2020년까지 국제기구를 총 50개 유치하겠다는 ‘국제기구 유치 활성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UN 기준으로 국제기구 주재원 1명의 1년간 소비지출 효과는 약 1억3000만원. 국제회의 시 참가 외국인 수는 평균 210명, 1인당 지출액은 2585달러에 이른다. 인천시도 지난달 말, 국제기구 전담팀을 신설했다. 유엔지속가능발전연구소(UNOSD), 유엔 아시아태평양 정보통신교육원(UN-APCICT), 유엔재해경감 국제전략(ISDR) 동북아사무소 등 13곳의 국제기구가 유치됐지만 시너지 창출이 미흡하다는 지적에서다. 인천시 국제기구팀 관계자는 “송도에 G-Tower가 생겨 많은 국제기구를 유치한 만큼, 시민들과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국제기구, 한국이 반가운 이유는?

국제기구들은 한국을 ‘떠오르는 기부자’로 보고 있다. 대내적으로 국제개발·ODA(공적개발원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1997년, UNDP 주도하에 설립된 국제백신연구소(이하 IVI)는 대한민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다.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개발 및 보급하고 있고, IVI가 개발한 콜레라 백신을 접종한 인원의 수는 44만명에 이른다. 한국, 스웨덴 정부,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의 기금이 예산의 큰 몫을 차지한다. LG전자·기아자동차 등의 대기업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주요 파트너다. 데보라 홍 IVI 커뮤니케이션·홍보부서장은 “한국의 과학 연구 인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도 국제적인 사회공헌을 늘려나가고 있어 큰 이점이 있다”고 했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APCEIU)도 교원 연수사업 외에, 한국정부와 협력해 ‘글로벌 시민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강력한 IT 인프라 또한 한국의 강점이다. 지난 2005년 한국에 설립된 최초의 유엔사무국 산하기관인 유엔거버넌스센터(이하 UNPOG)의 현재 집중과제는 ‘전자정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 윤창록 UNPOG 역량개발팀장은 “전자정부는 효율성과 투명성에서 각광받는 시스템”이라면서 “한국은 전자정부 시스템 구축 수준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만큼, 개발도상국에 전수할 역량이 많다”고 했다. 2010년 서울시 주도로 창립한 WeGo도 중국 칭다오시, 베트남 다낭시 등 70여개 회원 도시의 전자정부 구현을 중점적으로 돕는 기구다. 2011년부터 세계은행(WB)과 협약을 맺어 30만달러 규모의 ‘전자정부자가진단프로그램’을 개발, 회원 도시에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녹색성장기구(이하 GGGI)는 개발도상국의 녹색성장을 돕기 위해 2010년 6월 한국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국제기구다. 첫해 에티오피아·브라질·인도네시아 3개국 사업에 불과했던 녹색성장 전파 사업(태양광·풍력발전 등 대체에너지 기술투자)은 현재 캄보디아·베트남·카자흐스탄 등 20개 개발도상국으로 확대됐다. 전 세계 120명 직원 중 90명이 서울사무소에 있다. 김효은 GGGI 대외협력국장은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원래 선진국이었던 영국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이 더 반갑다”면서 “녹색성장이 한국 브랜드와 섞여 훨씬 더 호소력이 있다”고 했다. 국제기구가 한국을 반기는 이유 중 하나다. 오는 28일 또 하나의 국제기구인 세계자연기금(WWF) 사무소도 서울에 문을 연다. 한국은 과연 아시아의 국제기구 허브가 될 수 있을까, 그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김경하 기자

주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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