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화)

[메타버스와 사회혁신] 아바타와 페르소나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중·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종종 컴퓨터 게임을 즐기곤 했었다. 내신 시험이나 모의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부리나케 PC방으로 달려가 가상세계에서의 특별한 조우를 즐기곤 했었다. 그곳에서는 특수부대의 유능한 스나이퍼가 되기도 했고, 멋진 도끼를 휘두르는 바바리안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대규모 우주함대를 지휘하는 외계종족의 사령관이 될 수도 있었다. 가상세계는 늘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했지만, 온종일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생의 주머니 사정도 그러했지만, 다시 학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감이 더 컸다. 그래서 매번 PC 사용 시간을 미리 결제하는 선불제를 끊고는 했다. 약속된 시간에 도달하면 컴퓨터 시스템은 1초의 오차 없이 차단됐다.

현실로 돌아올 시간. 정신을 추스르고, 등가방을 챙겨 그곳을 나설 때마다 나는 모종의 부적응을 잠시간 겪었던 것 같다. 다시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현실도 그러했지만, 조금 더 나아가자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는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에 불과하단 정체성의 자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여러 학생 중 한명 일뿐이라는 자각이, 오히려 나를 강력하게 가상세계에 매료되게끔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곳에서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나’를 잊고, 내가 바라는 ‘누군가’로 살아 볼 수 있었다.

대학 진학 이후 게임에 대한 욕구는 크지 않았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이리도 다양하고 짜릿했기에 굳이 게임이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이때부터는 가상의 나 자신을 살게 하는 게임보다, 나의 실제 삶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소셜미디어(Social Media)’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특히 대학 3학년을 마치고 떠난 배낭여행에서 세계 방방곡곡에서 촬영했던 사진들을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는 것은 당시 큰 즐거움이었다. 실로 이국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은 왠지 모르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소셜미디어에 공개되는 것들은 취사선택된 이미지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 또한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누군가’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가상공간일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이야기할 때면 페르소나가 함께 논의되는 이유이다.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서 누군가 당시의 게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지체 없이 ‘울티마 온라인’이라고 답할 것 같다. 플레이어들에게 거의 100%의 자유도를 선사했던 이 게임은 미션과 룰이란게 따로 없는 MMORPG 게임이었다. 멋진 칼잡이 기사가 되었다가, 광부 혹은 목수도 되는 등.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길드원들을 모집하여 전쟁을 일으키거나 몬스터를 공략하고, 보물도 찾으러 나서고, 돈을 많이 벌면 집이나 성도 지을 수 있는 완전히 열린 세상이었다. 그때 ‘Knight(기사)’라는 아이디의 캐릭터를 열심히 성장시켜서, 약한 유저를 괴롭히는 이들을 응징하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유대를 맺고 훌륭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아이디처럼 기사도가 있는 존재이고 싶었다. 물론 더 악랄한 플레이어들한테 괴롭힘이나 죽임을 당하기 일쑤이기도 했지만, 그들처럼 권모술수를 쓰기보다는 훌륭한 평판의 플레이어로 알려지길 원했던 것 같다.

최근 가족들과 함께 영화 ‘한산(2022)’을 감상했다. 철저한 고증과 박진감 있는 전쟁 씬(scene),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을 넘나들며 훌륭한 연출력이 돋보인 영화였다. 그날 밤, 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꿈을 꾸었다. 거대한 성벽 앞에서 말을 타고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피해 다니며 언월도(偃月刀)를 휘둘렀다. 잠에서 깨고 보니 팔이 욱신거리고 아팠다. 항상 생생한 꿈을 꾸고 깨어난 날이면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글귀가 떠오르곤 한다. 장주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장주 꿈을 꾼 것인가. 이 생에서 내게 선물로 주어진 육체가 언젠가 명을 다하고 나더라도 나의 의식과 기억, 상상력은 어딘가에 보존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세계의 한계를 넘나드는 꿈속의 경험이 더 진실은 아닐까.

나의 취향에 따라 아바타라는 가상의 육신을 덧입을 수 있는 세상, 나의 페르소나를 자유롭게 취사선택 할 수 있는 가상공간, 다가올 ‘메타버스’ 산업이 약속하는 미래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가 보이고 싶은 방식대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상세계가 곧 실현될 것 같다. 왜 인류는 이런 시공간을 꿈꾸고 만들고 싶어하는 것일까. 나이 듦과 죽음의 생물학적 한계, 출생의 시기와 계층에 따라 주어지는 사회적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누군가’로 살아보고 싶은, 다른 ‘누군가’로 기억되고 싶은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캐릭터 산업에도 새로운 모멘텀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는 내가 평소에 좋아했던 히어로 캐릭터로도, 로봇 전사로, 귀여운 곰돌이로도 살아볼 수 있다. 캐릭터의 사용권, 2차 저작권이 자유롭게 취사선택 할 수 있도록 배분될 것이다. 여러 ‘PFP(Profile Picture) NFT’ 프로젝트들이 그것의 첫 단추를 끼우고 있다. 그렇다면 사후의 기억은 어찌 될까. 내가 선택했던 아바타와 페르소나의 데이터도 함께 보존될지 무척 궁금하다.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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