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즌: 아이의 선택] 후원 아동 피터 레아 살라마가 선택한 윤형열씨 이야기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알람 소리에 맞춰 출근 준비를 시작합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아침 기상은 도무지 적응되질 않습니다. 이불 속에서 “5분만 더”를 서너 번 외치다가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세면대로 향하죠.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서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매만집니다. 그러다 거울 한 귀퉁이를 보면서 입꼬리를 힘껏 올려 미소를 지어봅니다. 거울에는 케냐에 사는 꼬마, 피터의 사진이 꽂혀 있습니다. “그래, 피터가 내 도움을 기다리고 있어. 힘을 내야지.”
피터는 저의 후원 아동입니다. 지난겨울 형에게 도착한 편지 한 통이 우리 인연의 실마리가 됐습니다. 형이 후원하는 어린이가 정성껏 적어 형에게 보낸 편지였죠. 부러웠습니다. 돈을 보내는 게 끝이 아니라, 후원 아동과 편지로 소통할 수 있다니요. 형이 인연을 맺은 방식도 신기했습니다. 그 아이가 형을 후원자로 ‘선택’했다는 겁니다. 지금껏 선택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을 아이들에게 선택 경험을 준다는 취지라고 했죠.
“형, 나도 이거 할래!” 고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지금껏 누군가에게 선택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소소한 경품 이벤트에나 몇 번 당첨됐을까요? 이번만큼은 아주 신중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부터 골라야 했죠. 평소 무표정일 때면 차갑고 사나워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던 터라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진으로 몇 장 추렸습니다. 고심 끝에 선택한 건 제주도 여행에서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친절해 보이겠지?’ 약간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얼마 후 아프리카에서 편지와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저를 선택해준 특별한 소녀, 피터가 보낸 것이었죠. 편지를 열자마자 ‘풉!’ 웃음이 터졌습니다. “오빠 헤어스타일이 맘에 들어서 선택했어요!” 하하, 돈 쓴 보람이 있었습니다. 미용실에서 가르마 파마를 하고 여행을 갔거든요. 역시 어딜 가나 ‘스타일’이란 게 참 중요합니다. 피터 덕분에 한번 더 깨달았습니다. 편지에는 종이에 대고 그린 피터의 손 모양도 있었습니다. 작은 손바닥 그림에서 피터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구의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서로 존재도 몰랐던 우리가, 이 친구의 선택으로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됐다니. 마음 한쪽이 뜨겁게 울렁거렸습니다.
피터 후원을 시작하고 제 버킷리스트에는 몇 가지 항목이 추가됐습니다. 우선 미술 전공을 살려서 피터 얼굴을 화폭에 담아 선물할 생각입니다. 피터에게 꼭 맞는 예쁜 티셔츠도 한 장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피터를 만나러 케냐에 직접 가보고도 싶습니다. 지금은 머리를 짧게 잘라 넘긴 포마드 스타일인데, 그땐 다시 사진과 비슷한 가르마 파마를 하고 가야겠습니다. 사진과 다른 헤어스타일에 피터가 실망해서는 안 되니까요. 오늘은 피터에게 오늘 느낀 행복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한 장 보내야겠습니다. 제 밝은 기운을 전달받은 피터에게도 재밌고 웃음 나는 일이 가득해지길 바라면서요.
※후원 아동과 후원자가 주고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정리=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 월드비전의 ‘초즌(Chosen) 캠페인’은?
후원자가 아동을 선택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아동이 후원자의 사진을 보고 후원자를 고르는 해외 아동 후원 캠페인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월드비전 초즌 캠페인’을 입력한 뒤 홈페이지로 들어가 ‘후원하고 아이의 선택 받기’를 누르면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