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인남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 대표
“그래, 고생 좀 해줘. 어떻게든 돈을 보내야 하니까 몸 조심하고….”
지난 10일, 서울 이화동 해외주민운동연대(KOCO·이하 ‘코코’) 사무실에서는 조용한 첩보 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군부 쿠데타에 맞서 싸우는 미얀마 현지 관계자들과 감시망을 피해 연락을 이어오며 현지 상황을 듣고, 한국에서 힘을 보탤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이날 만난 강인남 코코 대표에겐 미얀마 상황에 밝은 한국인과 현지인들의 연락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코코는 지난달 9일부터 한국에서 미얀마를 위한 모금을 시작했고, 매주 현지 주민과 유튜브로 인터뷰도 진행한다. 지금까지 모인 돈은 약 7200만원이다.
강 대표는 “돈은 모았지만 들키지 않고 안전히 돈을 전해줄 방법을 찾는 것도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안전모, 고글, 물, 마스크 등 시민들을 위한 물품 구매 비용을 대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지만 누구든 시위대에게 돈을 전달하다 발각되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군부가 자금의 흐름을 막기 위해 현지 화폐인 ‘짯’의 인출 금액을 하루 50만짯(약 5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어서 돈을 송금해줘도 뽑아 쓰기 어렵다. 강 대표는 “시민들은 군부 타도를 위해 위험한 상황에서도 모든 걸 걸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며 “비슷한 경험을 가진 한국 시민사회가 이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얀마 군부, 아이·여자·노인 무차별 폭력
강 대표는 30여 년간 국내외 빈민 운동에 앞장서왔다. 미얀마와는 지난 2008년부터 15년 가까이 이주민과 현지 마을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며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왔다.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신망이 두텁지만 대중에게는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평범한 주민들이 지역의 빈곤이나 교육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는 ‘주민 조직’을 원칙으로 삼아 일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언론 인터뷰에 응한 건 미얀마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한국 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다.
강 대표가 전해준 미얀마 상황은 엄혹하고 참담했다. 그는 “쿠데타 정부가 일부러 재소자들을 2만명 이상 풀어줬는데, 이들을 이용해 시위대를 잡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범죄자들에게 시위대로 의심 가는 사람을 때리라고 지시하고, 맞은 사람이 반격하면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잡아들입니다. 아이, 여자, 노인 할 것 없이 보이는 대로 최루탄이나 실탄을 쏘아 대서 모두가 ‘오늘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길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시위대를 잡아들이기 위한 도청과 감시도 심해지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전화를 걸면 받는 쪽은 한참 대답을 하지 않는다”며 “장소를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 계속 자리를 이동하며 대화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한번은 시위대끼리 활동 물품을 전달해주기 위해 장소를 정해 만나기로 했는데, 한쪽이 군부의 추적을 받게 되면서 몇 시간이나 같은 자리를 빙빙 돌다가 제3자를 통해 겨우 물건을 전달해주는 일도 있었어요. 길을 터주는 척 한 곳에 몰아놓고 무자비하게 때리고 잡아가기도 합니다.”
정의를 위해 들고일어난 가난하고 힘없는 시민들
강 대표는 “무엇보다 국제 인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국내 국제개발협력 단체가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시민사회 단체가 수차례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다는 공동 성명을 내고 모금 활동을 진행하고 있지만, 국제개발협력 단체는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각 단체가 이름을 걸고 시위를 지지하거나 관계자들을 도왔다가 활동이 막힐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자신들이 목표로 삼은 인권과 평화가 말살되는 상황에서 자기 사업을 지키려고 발 빼는 국제개발협력 단체들을 보면 속이 상해 미칠 노릇”이라며 가슴을 쳤다.
그는 “지금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던진 이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 가장 힘없고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보통 사람들과 청년들이 맨몸으로 무장한 군인들에게 맞서고 있다”면서 이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처음에는 물품 구매 비용을 대려고 모금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생계도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으면 ‘한국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최소한의 비용만 이야기해요. 시위의 주축이 된 청년들은 ‘두렵지만 멈출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10대였을 때 민주정권으로 바뀌면서 자유의 소중함을 느꼈기 때문에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순 없다는 거죠.”
강 대표는 “12일 서울 한남동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서린동 서울유엔인권사무소까지 약 7㎞ 거리를 오체투지로 이동하는 시위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얀마 시민들의 투쟁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노력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들은 쿠데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원칙에 뿌리를 둔 사회질서를 만들어 나갈 겁니다. 그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한국이 도울 일이 많을 겁니다. 이들의 노력에 어떻게 참여하는지가 한국 시민사회의 품격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겠지요.”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