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별 인터뷰] 이일하 굿네이버스 이사장
30년 전 토종 NGO 굿네이버스 설립
아동학대 예방 사업 국내 최초 진행
작년 코로나로 모금 시장 ‘양극화’
큰 단체가 작은 단체의 성장 도와
비영리 생태계 힘 기르는 게 꿈
“여섯 살 남자 아이가 거기 있었어요.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습니다. 계모에게 학대를 당한 작은 몸이 멍으로 뒤덮여 성한 곳이 없었어요.”
이일하(74) 굿네이버스 이사장은 20년도 더 된 일을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일명 ‘정훈이(가명) 사건’. 우리나라 아동학대 실태를 세상에 알린 비극적인 사건이다.
1998년 2월, 방송사 시사 프로 PD가 굿네이버스 사무실에 찾아와 아동학대 사례를 구한다며 협조를 요청했다. 당시만 해도 아동학대라는 단어조차 낯선 시절이었다. 부모가 자녀를 때려도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훈육 정도로 생각하는 게 예사였다. 1996년 NGO(비영리민간단체) 최초로 ‘신고 시스템’을 갖춘 아동학대상담센터를 개설해 운영하던 굿네이버스는 PD에게 역으로 제안을 했다. 상담 중인 아이들의 사례를 방송으로 내보내는 건 부적절하니, 방송 자막으로 신고 번호를 띄우고 제보를 받아보자고 했다.
효과가 있었다. 자막이 나간 뒤 곧바로 여러 건의 제보가 접수됐다. 가장 위급해 보이는 곳으로 굿네이버스 아동학대 담당자와 방송사 PD, 촬영기자, 경찰 등이 함께 출동했다. 그곳에 정훈이가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아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더 잔혹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보를 받았을 때 분명히 그 집에 남매가 있다고 했는데, 누나가 없는 거예요. 모른다고 잡아떼던 부모가 추궁에 못 이겨 결국 실토를 했습니다. 학대 과정에서 아이가 사망해 마당에 묻었다고 하더군요. 마당을 파서 시신을 확인하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파장이 대단했죠.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여사가 아동학대 캠페인에 나설 정도였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2000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됐고, 학대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설립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지난달 22일 영등포에 있는 굿네이버스 사옥에서 이일하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그는 토종 NGO인 굿네이버스의 설립자로, NGO들의 연대체인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21년 새해를 앞두고 만난 그에게 막연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코로나 시대, NGO의 존재 이유는 무엇입니까?”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들려준 이야기가 정훈이 사건이었다.
“정부도 관심 갖지 않던 시절에 학대받는 아이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이고,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정부와 공무원들을 설득했습니다. 우리 NGO들은 이런 일을 합니다. 팬데믹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도 NGO는 멈추면 안 됩니다.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우리가 할 일은 더 많아집니다.”
NGO의 돈
―NGO들에게 지난 2020년은 어떤 한 해였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부익부 빈익빈’이죠. 대형 단체들은 코로나 특별모금 등으로 모금액이 더 늘었고, 작은 단체들은 후원금이 반 토막 나면서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소위 ‘메이저’로 불리는 큰 단체로 기부금이 집중되면서 모금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이죠.”
―메이저라고 하면 어느 정도 규모입니까.
“연간 300억원 이상을 모금하는 단체를 흔히 메이저라고 부릅니다. 굿네이버스를 비롯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월드비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한적십자사, 한국컴패션,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밀알복지재단 등 10개 정도가 있어요.”
―그 외 단체들은 어떤 상황인가요.
“우리나라 NGO 숫자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등록된 건 수십만개라고 하는데, 교회나 사찰만 해도 10만개에 달하고 각종 동호회도 비영리단체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중에 제대로 NGO 일을 하는 곳을 가려내는 게 쉽지 않아요. 어쨌든 연간 예산이 3억원 넘는 NGO가 전체의 1%에 불과하다는 건 사실입니다. 나머지 99%는 돈이 별로 없는 단체들이죠.”
―NGO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이유가 뭘까요.
“메이저들은 돈이 있으니 가용 범위 내에서 TV 광고도 하고 신문 광고도 합니다.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집콕’하면서 TV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잖아요. 광고 보고 연락해서 후원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늘었어요. 메이저 단체들의 경우 개인 후원자 수가 전년보다 2~5% 정도 늘어날 걸로 예상되고 있어요. 반면 작은 단체들은 광고비를 쓸 수가 없으니 개인 후원자 확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업 기부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요.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기부금이거든요. 코로나로 어려워진 기업들이 기부금을 줄이면서 작은 단체들이 타격을 입은 겁니다. 직원 급여도 못 줄 정도로 어려운 곳이 많다고 들었어요.”
―굿네이버스는 모금액이 늘었겠네요.
“결산 전이지만 지난해 1700억원 정도 모금했습니다. 전년(1682억원)보다 늘었죠. 그런데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작은 단체들이 걱정돼서요?
“전년도 모금액의 30%도 채우지 못한 NGO들이 수두룩합니다. 현장에서 사업을 수행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사업이 중단되면 단체로부터 도움을 받던 사람들이 당장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겁니다.”
NGO의 일
―굿네이버스도 처음에는 작은 단체였죠.
“그럼요. 직원 8명으로 시작한 단체였으니까요. 우리나라가 UN에 가입한 1991년에 설립했으니 딱 30년 됐네요. 토종 NGO로서 국제무대에 진출하겠다는 게 애초 우리의 목표였어요. 로컬 NGO를 넘어 인터내셔널 NGO로 가겠다는 비전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단체를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썼나요.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회원’을 확보하는 전략을 썼어요. 회원을 모아 기관의 주인이 되게 하는 거죠. 법인을 설립하고 가장 먼저 했던 게 전국에 있는 2만명의 약사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이었어요. 사회복지 전문용어는 빼고 친근한 말로 솔직하게 지원을 요청했어요. ‘한국인이 만든 순수 민간단체에 한 달에 1만원씩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주면 구산동과 역촌동의 결핵환자를 돕는 사업을 하겠다’는 내용이었죠. 몇 명에게 답이 왔을까요? 무려 200명에게 답이 왔어요.”
―2만명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200명에게 응답이 오면 괜찮은 건가요?
“DM(홍보를 위한 우편물)에 대한 글로벌 평균 회신율은 0.3% 정도입니다. 200명이면 1%가 응답했으니 대단한 거죠. 이런 방식으로 첫해 6개월 만에 1800명의 회원을 모았고, 이듬해 5000명의 회원을 모았어요. 설립 초기에 힘들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이렇게 답해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쉬웠다는 뜻이 아니에요. 노력하고 도전한 만큼 반응이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이 훌륭했어요. 다른 도움은 없었어요. 굿네이버스는 순수한 시민운동으로 성장한 단체입니다.”
―해외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내전 지역 난민을 돕는 일부터 아이티 등 지진 피해 지역에 대한 긴급 구호 활동까지 다양하게 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점적으로 해온 건 해외 빈곤 아동들에 대한 교육 지원 사업이죠. 우리는 ‘교육이 빈곤을 퇴치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요. 빈곤 아동 교육 지원을 열심히 한 덕에 2007년에는 UN이 주는 새천년개발목표상(MDGs Award)을 수상했습니다. 이런 상이 우리 회원들에게는 보람이죠. 우리가 모은 돈으로 우리가 직접 사업을 해서 큰 상을 받았으니까요.”
―’우리가 모금해서 우리가 사업한다’는 말이 왠지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정훈이 사건 이후 20여 년간 굿네이버스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자체적으로 모금해서 쓴 돈이 같은 기간 정부가 아동학대 해결을 위해 내놓은 돈보다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아이들에 관한 예산은 웬만해선 늘어나지 않습니다. 선거권도 없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니까요. 예산을 달라고 싸우느니 그냥 우리가 모금해서 합니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직접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NGO 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인가요.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온 것은 언제나 NGO였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손발 역할을 하고 국제사회에 나가서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정부는 우리가 하는 일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NGO를 지원하고 육성하기보다는 오히려 규제하고 통제하려 들죠.”
―어떤 규제를 합니까.
“2015년 기점으로 모금 시장에서 신규 개인 후원자 수가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개인 후원이 이렇게 떨어지면 모금 시장이 기업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 정부는 NGO에 대한 기업의 지원을 막고 있어요. 기업이 주식의 5% 이상을 재단이나 법인에 기부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5%를 넘기면 상속·증여세를 부과하죠. 미국의 경우 20%까지, 일본은 50%까지 주식기부 면세를 받습니다. 해외 NGO들은 기업의 주식을 기부받아 거기서 나오는 배당금으로 사업을 합니다. 훨씬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죠. 이런 식으로 가야 NGO가 살아남을 수 있어요.”
NGO의 꿈
이일하 이사장은 “모금 시장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9년 한국자선단체협의회를 설립한 것도 NGO들이 서로 협력하며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공론화의 장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현재 한국자선단체협의회는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법안 발의, 정책 토론회 등 기부 관련 법 제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옹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메이저급 비영리단체의 경험과 노하우를 작은 단체들에 공유하는 워크숍과 컨설팅도 진행 중이다.
―큰 단체가 작은 단체를 지원하고 돕는 모습이군요.
“한 군데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 같이 무너지는 게 NGO 업계의 특성입니다. 지난해 정의기억연대 논란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면 그 영향력이 최소 6개월은 갈 겁니다. 신규 회원 숫자가 올라가다가 뚝 떨어지죠. 정보와 기술을 특정 NGO가 독점해선 안 됩니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으니,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마음으로 같이 고민하고 노력해야죠. 모금 노하우, 회원 서비스, 회계, 인사 관리 등 모든 것을 과감하게 나누고 공유해 작은 단체들이 따라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공익법인들을 총괄하는 ‘시민공익위원회’ 설치가 올해 비영리 업계의 화두입니다. 그건 어떻게 되고 있나요.
“처음 공익위원회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NGO를 규제하기 위해서 공익위원회를 둬야 한다’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정부에 설명도 하고 설득을 많이 했습니다. 영국의 ‘채리티 커미션(Charity Commission)’처럼 규제가 아니라 NGO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요. 호주에도 2012년 비영리단체를 총괄 관리하는 ‘ACNC’라는 기관이 생겼어요. 굉장히 잘된 케이스라 호주 ACNC 관계자들을 한국에 불러 국제세미나도 열었습니다. 법무부 사람들이 호주에 직접 다녀오기도 했어요. 이후 법무부에서 공청회를 준비했고 제가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시민공익위원회는 NGO 규제가 아니라 NGO 육성이 중심이 돼야 하고,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는 그렇게 하기로 됐었는데 이번에 법무부가 내놓은 안을 보니 또 규제 중심으로 만들어 놨더라고요 . 다시 잘 논의해봐야겠죠.”
국세청 공시에 따르면 연간 100억원 이상 모금하는 단체가 우리나라에 50개 정도 있다. 이일하 이사장은 “이걸 10년 안에 500개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작은 단체들을 중견 단체로 성장시켜 비영리 생태계의 힘을 기르는 것. 우리나라 NGO가 품고 가야 할 10년의 꿈이자, 이일하 이사장의 꿈이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