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북스의 ‘282’는 나뭇잎을 가리키는 ‘이파리’에서 따왔어요. 저는 사람들이 숲에서 많은 치유와 쉼을 얻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숲을 이루기 위해선 나뭇잎 하나하나가 모여야 하잖아요. 282북스가 나무의 큰 줄기를 세워두면, 사람들이 가진 이야기는 나뭇잎이 돼요. 282북스의 역할은 숲을 조성하고 공간을 제공해주면서 사람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거죠.”
282북스는 조금 특별한 출판사다. 단순히 글을 모아 책을 내는 게 아니라, 예술활동을 통해 사회에서 목소리가 작은 소수자를 사회 안으로 끄집어내고, 이 내용을 책에 담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 선유동 소셜캠퍼스온 영등포점에서 만난 강미선 대표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출판에 참여한 사람들이 치유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했다.
출판으로 사람들의 마음 치유한다
282북스는 출판사이지만 출판만 하지는 않는다. 치유 활동 당사자와 함께 연기·그림 등 치유 활동을 진행하고 나서야 이 내용을 담은 책이 출판된다. 출판은 활동의 결과 보고서가 되는 셈이다. 한 프로젝트에 쏟는 시간만 평균 6개월. 강 대표가 가장 주목하는 주제는 ‘혐오와 차별’이다. 그는 “예술 활동을 통해 당사자의 마음을 녹여내고, 이를 드러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게 목표”라고 했다.
대표 프로젝트로는 지난해 서울시 후원으로 진행한 ‘도시의 문장들; 귀천’ 등 프로젝트가 있다. 도시의문장들은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내용을 알리기 위해 감정노동자가 직접 참여하는 낭독 공연을 진행했다. 직업 특성상 스트레스가 많은 감정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강 대표는 “자신의 속마음을 담은 연극을 통해 많은 감정노동자가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졌다’고 반응하는 걸 보며 이야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강 대표는 “올해는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청년 사회 혁신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플레이더월드’, 암 경험자 자존감 회복을 위한 ‘암 어
모델’ 등 참여자의 폭이 넓어졌다.
“청년 세대, 암 경험자 비교적 덜 주목받은 사람들을 새롭게 조명해 긍정적 이미지를 드러내려고 해요. 암 경험자를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환자 같은 모습이 아니라 질병을 이겨낸 긍정적이고 활기찬 이미지로 보여주면서, 투병 생활과 암 경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으로 주눅이든 당사자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거죠.”
참가자들이 치유 경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과정도 섬세하게 구상했다. 음악·연극 등 치유 활동 분야가 정해질 때마다 해당 분야 전문가, 치유 전문가를 참여시킨다. 참가자 개인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포함해서 한 프로젝트 참여 인원은 최대 15명으로 제한한다. 강 대표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환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돼서 스스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스스로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면 더 깊은 치유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 이파리 맺히는 나무 꿈꾼다
강 대표는 스스로를 “글쓰기가 주는 치유의 힘으로 살아난 사람”이라고 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절, 독서와 글쓰기로 마음을 다잡았기 때문이다. “너무 지쳐서 아무 것도 할 힘이 없었어요. 글조차도 ‘어떤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 ‘아무 거나 쓰자, 읽자’ 하는 식으로 했죠. 돈도 없고, 뭐든지 시작할 용기도 없었을 때였는데 아무것도 붙잡지 않으면 더 무너질 것 같아서요. 닥치는 대로 읽고 쓰는 일을 거듭하니 어느 순간부터 치유되는 걸 느꼈습니다.” 강 대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내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면 어느새 새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며 “더 많은 사람과 이 경험을 나누기 위해 1인 출판사 282북스를 설립했다”고 했다.
강 대표는 “가장 걱정되는 것은 참가자들을 향한 대중의 편견어린 시선”이라고 했다. 참여자 대부분이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라, 프로젝트로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냈을 때 차별적인 시선을 느끼며 다시 움츠러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시 대중의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상처받는 걸 볼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면서 “이런 시선에 함께 맞서는 것까지가 282북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82북스는 이번 예비사회적기업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가능하면 사회적기업 인증까지 받아 더욱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치유를 위한 활동을 할 계획이다. 아직 판매량이 크진 않지만, 사업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펀딩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사람들이 치유 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걸 느낍니다.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치유 과정을 응원하려는 사람들도 많죠.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강 대표는 당분간 282북스의 활동을 알리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펀딩과 일반 출판, 영상 콘텐츠 배포 등 다양한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단순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활동에 참여해 직접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예요. 이런 이야기들이 주목받으면, 다른 이유로 세상의 차별에 몸을 웅크리는 사람들도 용기가 나지 않을까요? 더 많은 이야기의 잎들이 열리는 공간으로 성장하는게 저희 목표입니다.”
송채원 청년기자(청세담1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