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백수’는 사회문제라고요? 그렇게 보는 시선이 문제입니다”

직장에 다니지도 않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닌 청년을 ‘니트(NEET)’족 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청년실업률 증가와 함께 사회에 참여할 의지까지 잃어버린 상태가 되기 쉽다. 니트족은 ‘히키코모리(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사람)’ 증가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드러난 일본에 많다고 알려졌지만, 통계를 보면 국내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지난 2019년 OECD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청년 니트족 비율은 18.4%로 9.4%를 기록한 일본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상황이다.

기존 시민사회에서도 하자센터 등을 중심으로 니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해 왔지만, 새로이 뛰어드는 시민단체는 많지 않았다. 취업을 원하는 구직 상태의 청년과 달리 니트 청년은 사회 활동 자체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아,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 성과를 증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성과를 입증해 추가 지원을 받아야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비영리단체로선 니트 문제 해결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활동 분야는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호기롭게 니트 문제 해결에 뛰어든 신생 단체가 있다. 지난 2019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니트생활자’다. 지난달 11일 용산구 서계동 니트컴퍼니 서울역점에서 박은미(37) 니트생활자 공동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성신, 박은미(오른쪽)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니트생활자 제공

하루에 푸시업 30번이 ‘업무’…청년이 모인 가짜 회사

니트컴퍼니는 말 그대로 니트들이 다니는 회사다. 정식으로 직원을 고용해 임금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박 대표는 “니트컴퍼니가 입사자들에게 주는 건 소속감”이라고 설명했다. 입사자들은 100일간 가짜 회사의 직원이 돼서 평일 9시~6시 사이에 출퇴근 인증을 하고, 스스로 입사지원서에 하기로 써낸 일을 진행한다.

“니트 직원들이 하는 일은 다양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면 돼요. 일주일에 6일 북한산 둘레길 걷기, 하루에 팔굽혀펴기 30번씩 3세트 하기를 하는 식이죠. 매일 업무 일지도 적어내고, 일주일에 한 번은 모여 업무 경과를 공유하는 미팅도 합니다. 매일 출퇴근을 보고하니 서로 참여를 독려하게 되죠. 소속이 없어 불안해하며 우울함에 빠져 있던 청년들이 약속한 출근 기간이 끝날 때가 되면 ‘활력을 찾았다’고 말할 정도로 변합니다.”

개인 프로젝트 외에 소속감을 주기 위한 팀별 활동도 진행한다. 적성에 따라 홍보팀, 인사팀 등으로 나누어 홍보팀은 입사자들의 프로필 사진 촬영을 담당하고, 인사팀은 사내 복지 차원의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식이다. 필수 참여 과정도 있다. ▲권리야 놀자(노동권) ▲저도 꼰대인가요?(커뮤니케이션) ▲나다운게 뭔데?(동기부여 방식 진단) 등 자신을 들여다보고 사회 적응을 돕는 7개 과정으로 구성된 워크숍이다.

니트컴퍼니엔 매 기수당 10명 안팎의 니트 청년이 입사하는데, 이미 200명이 넘는 청년을 배출했다. 박 대표는 “소속감을 주고, 자신이 세운 사소한 목표를 이루도록 응원하는 것만으로 니트 청년들은 큰 힘을 받는다”고 했다. “입사자 면담을 했다가 깜짝 놀란 적이 많아요. 여기선 아주 밝은 입사자였는데, 니트컴퍼니에 입사하기 불과 얼마 전까지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었다거나 전 회사에서 상처받고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살던 사람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니트로 사는 기간을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주고 이들을 환영해주는 것만으로 청년들이 크게 변하는 걸 보고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들의 경험을 기록한 ‘백수들의 재발견’이라는 전시를 열기도 했다. ‘무업’ 상태에 놓인 백수 청년들의 삶을 가치 없는 것으로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기 위해서다. “니트 청년 자신과 일반 대중 모두가 니트 상태를 부정적으로만 보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며 사회적 근육을 단련하는 기간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니트컴퍼니에 입사한 청년의 모습. /니트생활자 제공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무업(無業) 기간, 사회 문제로만 봐선 안 돼

니트컴퍼니 설립 계기는 니트생활자를 운영하는 박은미 대표 자신에게 있었다. 그는 30대 중반까지 총 6번이나 퇴사를 했다. 스스로 ‘나에게 맞는 일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사회 부적응자로 보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주눅들어갔다. “이런 고민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저 같은 사람이 많은 거에요(웃음). 그래서 비슷한 상황이 사람들하고 ‘백수가 되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함께해 보자’며 사람들을 모았죠. 혼자 하면 시선이 두렵지만, 같이 하면 용기가 나니까요.”

지난해 2월 처음으로 한양 도성 걷기 미술관 관람하기 등 그동안 미뤄뒀던 일들을 벌였다. 이들은 참여한 사람들이 ‘이런 곳이 정말 필요했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지난 5월 정식으로 사단법인 등록을 하고 단체를 설립했다.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반도 안 됐지만 니트컴퍼니는 성과를 내고 있다. 니트컴퍼니가 진행한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입사자들의 심리 상태가 크게 좋아졌다. ▲구직에 대한 적극적인 준비 ▲나는 성실하다 ▲하루하루를 기대한다 항목에 ‘그렇다’라고 대답한 입사자가 각각 12%, 14%, 19% 상승했다. 삶의 만족도를 10점으로 표시해달라는 문항에 가장 낮은 등급에 표시한 참여자가 입사 전 22%나 됐는데, 입사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12%로 떨어졌다. 박 대표는 규칙적인 삶의 패턴과 자신이 정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는 경험이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이런 경험을 통해 “니트 청년을 대하는 법이 달라져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했다. 직업훈련을 하거나 돈을 벌어야만 의미 있는 활동으로 생각하고, 니트 청년들에게 ‘시간낭비하지 말고 돈을 벌거나 취업 준비를 하라’고 다그치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로 인해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새로운 삶을 꿈꾸기 위해 잠시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거든요. 이들을 ‘문제’로 봐서는 이들이 사회로 나오는 시간만 늦어질 뿐입니다. ‘모든 시간이 가치 있다’고 말해주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자’고 독려해주면 이들의 사회 복귀가 훨씬 빨라집니다. 저희가 만든 가짜 회사가 더 많은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으로 든든하게 서는 게 꿈입니다.”

이슬기 청년기자(청세담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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