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재협’) 퇴사자 5명이 더나은미래 기자들을 찾아왔다. 이날 더나은미래는 재협 내부에서 일어난 갑질 의혹과 직원들의 줄퇴사, 기부금품 부정 사용 의혹 등을 보도했다. 퇴사자들에게 연락이 온 건 재협이 ‘기사로 나온 내용은 모두 허위’라는 취지의 설명자료를 내놓은 직후였다. 퇴사자들을 만난 시각은 저녁 8시. 이들은 “김정희 사무총장의 부당한 업무지시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퇴사했다”면서 “재협이 홈페이지에 올린 거짓 해명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추가 증언을 위해 경북 구미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만남은 3시간 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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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모이게 된 이유는?
퇴사자A=재협에서 내놓은 설명자료를 보고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자들을 무능한 인간으로 매도해왔으면서 설명자료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둔 것처럼 열거했더라. 재협의 거짓 해명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퇴사자B=마치 공무원으로 재취업하기 위해서 퇴사한 것처럼 설명된 사람이 바로 나다. 나이 오십이 다 됐는데 월급 깎아가며 9급 공무원 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겠나? 사무총장 때문에 하도 스트레스받으니까 와이프가 그냥 그만두고 나오라고 하더라. 퇴사 이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재취업했는데, 그걸 퇴사 이유로 적어놓은 걸 보고 황당했다.
퇴사자C=직원들 줄퇴사가 사무총장과 관련 없다고? 소가 웃을 일이다. 설명자료에는 회장에게 모든 인사권이 있다며 슬쩍 빠져나가더라. 내가 퇴사할 때 사무총장이 부들부들 떨면서 ‘내가 싫어서 그만두는 거냐’면서 소리쳤다. 직원들이 단기간에 나가면 조직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나간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 아니냐. 그냥 잊고 지내려고 했는데, 잘못한 사람은 벌 받지 않고 엄한 사람들만 고통받더라. 이렇게라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더나은미래는 지난 4월부터 재협의 전현직 관계자 8명을 차례로 만났고, 제보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서류와 녹음파일을 받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재협은 23일 설명자료를 통해 더나은미래 보도를 ‘징계를 앞두고 있는 직원의 제보인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해당 직원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재협이 설명자료에서 한 직원의 사생활을 폭로했는데.
퇴사자A=설명자료에 언급된 인물과 십수 년을 같이 근무했다. 무뚝뚝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는 인정한다. 20년 가까이 재협에 근무하면서 헌신적으로 자원봉사 사업을 키워왔고, 누구보다 협회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식으로 개인사를 들추면서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를 인신공격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퇴사자D=사무총장이 아끼는 모 팀장은 음주운전으로 1년간 운전을 못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땐 문제 삼지 않고 잘만 덮고 가더라. 미워하는 사람은 문제를 만들어서라도 내보내려 하는 거다.
―재협 해명에서 바로 잡을 부분이 있나?
퇴사자C=현장으로 가야 할 기부금으로 공기청정기를 사놓고 ‘정상적인 물품 구입’이라고 표현한 것에 어이가 없었다. 해명을 보면 ‘모집경비’로 공기청정기를 사는 데 문제가 없다고돼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모집경비는 말그대로 기부금을 모집하기 위해 현수막을 제작하거나 거리에 천막치고 모금할 때 드는 비용이다. 또 현장으로 물품을 보낼 때 발생하는 운송비, 인건비, 출장비처럼 불가피한 비용을 처리할 때만 쓴다. 재협의 회계를 담당했던 내가 보증한다. 과거엔 재난기부금 모집경비로 사무실 물품을 산 적이 없었고, 그러면 안 된다.
퇴사자A=비품 구입은 미리 잡아놓은 연간 운영비 예산 내에서 집행해야 한다. 공기청정기를 산다면 그 돈으로 사는 게 맞다. 현장으로 가야 할 기부금에서 꺼내쓴다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
퇴사자들은 지난해 9월 재협에서 진행한 3억원 규모의 리모델링 사업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당시 사업을 담당했던 퇴사자 E씨는 “재협의 리모델링 사업을 수행한 S사는 사무총장이 소개한 업체였다”면서 “입찰공고를 내기 전부터 협회에 찾아와 공사 내용을 논의했고, 공고 뜨기 한 달 전에 이미 실측까지 마친 상태였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퇴사자E=지난해 4월 리모델링 업체 S사의 이사와 팀장이 사무실로 왔었다. 사무총장은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 분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때부터 S사 실무자와 이메일과 전화로 스무 차례 넘게 연락을 주고받았고 회의실을 몇 개로 만들지, 공간을 어떻게 잡을지 등 세세한 사항까지 논의했다. 업체 실무자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아직 남아 있다.
―비슷한 일들이 또 있었나?
퇴사자A=사내교육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강사 섭외를 하던 중이었는데 사무총장이 다가와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줬다. ‘이 사람한테도 연락해보라’면서. 전화를 걸었더니 첫 마디가 ‘아, 올케한테 얘기 들었다’였다. 결국 그분이 직원들의 생활예절교육 강사로 초빙됐다. 그런 식이다.
퇴사자C=국민 성금을 다루는 기관에서 지인에 친인척까지 계속 연루되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재협에서 용역업체 선정이나 발주를 할 때 직원과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사람을 선정한 적이 없었다. 모든 직원이 지키는 원칙이었다. 그런데 그걸 사무총장이 무너뜨린 거다.
퇴사자E=지금 근무하는 직원 중에도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많을 거다. 작년에 재협이 ‘위아자 나눔장터’에 참여했는데, 당시 기부 물품 판매 수익의 일부를 직원 개인 명의 계좌에 입금하기도 했다.
퇴사자B=법인 수익금을 개인 계좌에 넣는 것 자체가 위법 소지가 높다. 특히 계좌 주인은 이게 문제가 됐을 때 횡령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재협은 지난해 10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로 일대에서 열린 ‘위아자 나눔장터 2019’에 단체 판매자로 참여했다. 후원금 마련을 위해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포항시로부터 받은 이재민 구호 물품을 장터에 내놨고, 이날 총 96만4500원의 판매 수익을 얻었다. 퇴사자들은 “수익금 중 30만7500원은 나눔장터 주최 측에 현장 기부했고, 나머지 65만7000원은 지원팀 직원 개인 명의 계좌에 입금했다”고 했다.
재협 측에 확인한 결과, 나눔장터 수익금을 직원 명의 통장에 입금한 사실을 인정했다. 재협 측은 “당시 회계 담당 직원의 퇴사로 지원팀 직원 계좌에 임시로 보관한 것”이라고 답했다.
퇴사자B=재협은 뭐가 문제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눔장터 수익금을 입금한 개인 계좌가 이번에 더나은미래 기사로 지적한 ‘직원 주차비’ 입금 계좌와 동일하다. 협회 소유 건물 주차비를 법인 수익으로 잡지 않고 개인 계좌로 입금한 게 문제의 핵심인데, 재협이 낸 설명자료를 보면 그 얘긴 싹 빠졌다. 주차비 받는 걸 ‘전임 사무총장 때부터 해온 문화’라며 이상한 변명만 늘어놓고…. 주차비 청구는 2019년 2월 현 사무총장 지시로 시작됐다. 직원 단체 채팅방으로도 공지된 일이라 증거 자료도 남아 있다.
―재협 문제가 어떤 식으로 해결되길 바라나?
퇴사자C=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다. 8년 전 직원들이 연판장까지 돌려가면서까지 현 사무총장 선임을 막았는데, 끝내 그 자리에 오르면서 직원들을 잘라내기 시작한 거다. 재협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돼야 한다. 지금처럼 사무총장한테 줄 서고 내부 정치하는 그런 단체가 아니다.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바로 잡아야하지 않을까.
퇴사자D=오래 근무한 선배들은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이 정도면 그냥 없어지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퇴사자A=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재협의 사회적 역할이 분명히 있다. 물론 지금은 재협에 다녔다고 떳떳하게 말하기도 부끄럽다. 마치 내가 ‘도둑들’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더 망가지기 전에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