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방] 라떼를 끓이며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print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비영리 활동가 출신 ‘어른’을 만났다. 지금은 공공기관의 높은 자리에서 일하느라 말쑥한 정장 차림에 넥타이까지 매고 다니지만 조금만 대화를 해보면 빼도 박도 못하는 ‘현장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몸으로 때우고 싸워가며 속도감 있게 일하다가, 단계와 절차가 많은 큰 조직에서 일하려니 어려움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게 보였다. 저기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피’ 말이다.

한마디로 흙바닥에서 시작한 사람이다. 공익의 개념조차 흐릿하던 시절에 NGO 단체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일했다. 그때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며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느낌이 왔다. 라떼 이야기다.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런 종류의 무용담을 좋아하는 편이다. 유독 라떼를 잘 끓이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 선배 중에 특히 많다. 마치 구비문학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청중의 호응이 좋으면 양념이 살짝 뿌려지면서 더 스펙터클해지는 스토리. 자세를 고쳐 앉고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공정무역이라는 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 공정무역 커피를 들여온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의도는 훌륭했으나 초창기에는 일반 커피보다 가격도 비쌌고 맛도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서 장사가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커피 농부들을 떠올리며 아침에는 교회에 가서 커피 팔고, 오후에는 절에 가서 커피를 팔았다는 웃기면서도 짠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기부금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기업들을 찾아다녔던 추억도 꺼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돈이 드니까, 라고 그는 말했다. 비영리에서 수십 년 활동한 그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돈벌이’에 관한 이야기라니, 곱씹을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고군분투(孤軍奮鬪)’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외로운 군대가 힘에 벅찬 적군에 맞서 온 힘을 다해 싸우는 모습. 30년 넘게 비영리를 만들어온 ‘리더’들을 만나보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엄혹했던 시절, 온통 돌밭이던 비영리의 생태계를 두 손으로 갈아 이만큼 일궜다. 박봉을 받으면서도 워라밸 따윈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야기다. 감사하고 존경하지만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10주년을 맞은 공익미디어 ‘더나은미래’도 나름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공익의 한 귀퉁이를 지켜온 우리에게 누군가 말했다.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고. 노트북 앞에 앉으니 전에 없던 투지(鬪志)가 솟구친다. 요즘 유행하는 ‘따뜻한 핫 라떼’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쓴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blindletter@chosun.com]

관련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