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사태로 본 비영리단체의 과제는? 투명성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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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지난 19일 만난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비영리단체에 가장 중요한 건 윤리의식과 책무성”이라고 했다. ‘재정적 책무성’을 끌어올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비영리의 일차적 과제이며, 나아가 목적사업을 제대로 수행하는 ‘공익적 책무성’까지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정의연 기부금, 본질 꿰뚫기’. 황신애(47)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가 쓴 몇편의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20년 넘게 비영리 업계에 몸담은 ‘모금 전문가’로서 이번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를 냉정하게 분석한 글이다. 기부금을 받는 비영리단체가 돈 문제나 내부 고발로 언론의 도마에 오르는 일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벌어지는 문제지만, 최근 정의연 사태는 사안이 좀 더 복잡하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민감하고도 중요한 이슈를 다루는 단체가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와 틀어졌다는 것 자체로 파문이 일었다. 지난 7일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전(前) 정의연 이사장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열면서 문제가 터졌고, 윤 전 이사장이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라는 이슈가 더해져 정치적 공방으로 번졌다.

황신애 이사는 “복잡한 이슈들을 걷어내고 문제의 본질을 봐야 한다”고 썼다. 비영리단체의 구조적 어려움과 비영리 활동가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 기부금의 개념과 속성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언론이 잘못 짚은 포인트가 무엇인지, 정의연이 비난받아야 할 지점은 어딘지 정확히 짚어 알려준다. 지난 19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황신애 이사를 만났다.

―본질을 봐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불필요한 공방이 너무 많다. 비영리단체의 문제로만 정의연 사태를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비영리가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중요한 문제들이 얽혀 있다. 돈 문제, 소통과 리스크 관리에 관한 문제다. 다른 비영리단체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정확히 알아야 되풀이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언론에서 잘못 보도한 내용도 바로잡고 싶었다.”

―잘못 알려진 것 먼저 바로잡아 보자.

“정의연의 기부금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가지 않았다고 비난받는 부분이다. 비영리단체는 정관에 명시된 ‘목적사업’에 따라 움직인다. 만약 정의연의 정관에 적힌 목적사업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생계 지원’이었다면 현행법상 기부금의 85% 이상을 직접 지원과 간접 지원 방식으로 할머니들의 생계 지원에 써야 한다. 하지만 정의연의 목적사업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활동과 전시 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활동’이다. 할머니들과의 연대는 과정적으로 무척 중요한 부분이지만, 기부금이 할머니들에게 직접 쓰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의연을 비난할 수는 없다.”

―애초에 논점을 잘못 잡았다는 얘긴가.

“정의연에 기부금 문제를 제기하려면 ‘기부금이 할머니들에게 얼마나 쓰였느냐’가 아니라 ‘기부금 모집과 관리상에 부정한 점이 있었는지’ 따져보는 게 맞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기부금 모집이나 사용에서 정의연이 잘못한 게 있나.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정의연에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 비영리도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이 목적은 아니지만 굳이 돈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 다만 모금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공익’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게 영리 기업과 다른 점이다. 또 공익과 관련된 일이라고 해도 정관에 적힌 목적사업과 전혀 안 맞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도 꼭 써야겠다면 기부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나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정의연도 이 부분에서 지적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기부금은 여러모로 제약이 많은 돈인 것 같다.

“아주 어려운 돈이다. 비영리단체의 재정 원천은 크게 다섯 가지다. ▲정부 보조금 ▲기업 지원금 ▲사업 수익금 ▲자산 수익금 ▲기부금 등이다. 대부분의 비영리가 앞의 네 가지 가운데 한두 개 정도만 갖고 있다. 그 돈으로 충분치 않으니 개인이나 기업에 기부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기부금이라는 게 생각보다 복잡하다. 기부금을 받는 단체는 법적으로 자격(지정기부금단체)이 있어야 하며, 기부금의 목적과 용도는 정관에 명시된 공익사업(목적사업)과 같아야 한다. 단체가 기부금을 받게 되면 ‘증여’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래는 세금을 내야 하는데, 공익에 쓰인다는 이유로 나라에서 세금을 감면해준다. 정부가 기부금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이유다.”

―비영리에서 기부금 문제가 자꾸 터지는 이유가 뭘까.

“돈의 속성이 그렇다. 돈이 너무 많으면 해이해진다. 반대로 너무 없으면 영혼을 팔게 된다. 가난한 단체들의 경우에는 기부자가 ‘내가 돈을 줄 테니 원하는 사업을 해달라’고 요구하면 목적사업이 아닌데도 하게 된다. 단체의 본질과 정신을 망치는 일이다. 비영리단체는 원칙과 목적에 맞게 돈을 쓰고, 그걸 명확하게 기록해야 하며, 빈틈없이 보관해야 한다. 외부감사까지 받아놓는 게 좋다. 기부금에 관해서는 면죄부를 받을 방법이 없다.”

―단순 회계 실수라고 해도?

“물론이다. 비영리단체의 현실이 그렇게 가혹하다. 기부금을 받아내는 것도 어렵지만, 잘 써야 한다. 윤리적으로 돈을 쓰면서 사회적으로 ‘임팩트’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활동가의 일은 끝이 없다. 일의 양은 많은데 월급은 적다. 기부자들도 자신들이 낸 기부금이 활동가 인건비로 쓰이는 걸 원치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게 우리 사회가 비영리를 대하는 방식이다. 엄청난 책무성을 요구하지만 전문성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비영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겠다.

“비영리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비영리 생태계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나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 기부금 문제를 대하는 정의연의 태도를 보면서 투명성이나 책무성에 대한 개념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건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다. 교육이 필요하다.”

―정의연 사태의 발단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었다. 돈 문제를 떠나 ‘소통’에서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쩌면 그게 핵심일 수 있다. 짐작하건대, 처음에는 할머니들도 정의연의 목적사업이나 활동 방식에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기대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면서 입장 차가 생겼던 것 같다. 정의연의 활동 방식이나 기부금 사용에 대한 할머니의 오해가 깊어지는 동안에도 단체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 정도였다면 틈이 벌어질 대로 벌어진 것인데 단체가 몰랐을 리 없다. 할머니의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다.”

―정의연이 어떻게 대처했어야 했나.

“할머니들은 정의연의 활동가들이다. 정의연의 사업에 할머니들도 일종의 ‘지분’을 가진 셈이다. 그들의 의견을 정중하게 수렴했어야 했다.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고 무시하거나 억누르면 나중에 조직에 더 큰 리스크로 되돌아올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의연은 이해관계자 소통과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

현재 우리나라 공익법인 수는 약 3만5000개에 이른다. 법인 등록이 안 된 곳까지 합하면 비영리단체 수가 10만개를 넘어설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황신애 이사는 “온 국민의 관심이 정의연 사태에 쏠린 지금이 비영리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제대로 논의할 기회”라고 했다. 이번에도 적당히 넘어가면 비영리는 또다시 퇴보할 것이라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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