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의 ‘공동체 정신’이 코로나 위기 이겨내는 열쇠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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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인숙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집행위원장

“누구도 해고하지 않겠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때, 쉽지 않은 약속을 한 이들이 있다. 대기업이나 ‘코로나 특수’를 잡은 온라인 상거래 업체가 아니다. 자체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4곳 중 3곳의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그 주인공이다. 자활 기업, 협동조합 등으로 이루어진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지난 3월 26일 코로나19 사회적경제 공동 대응 본부를 꾸리고, 가장 먼저 ‘고용 조정 제로’ 선언부터 내놨다. 이튿날부터는 자체 위기 대응 기금 마련에 나섰다. 3주간 진행된 펀딩에는 사회적경제 조직 237곳이 참여해 1억3000만원을 모았다.

이 과정을 이끈 안인숙(56)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선언에 동참해 달라’고 하면서도 ‘될까’ 하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우려는 감동으로 바뀌었다. “제 기대보다 훨씬 적극적이었어요. ‘사회적경제가 사람을 중시하는 경제 활동을 하자고 만든 건데 상황이 어렵다고 해고하면 되겠느냐’면서 동참 의사를 전했어요. 공동체 정신이 우리의 저력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난 안 위원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희망은 ‘공동체’와 ‘연결'”이라며 “재난 상황일수록 약자를 먼저 보살피는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안인숙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연대와 협력의 정신으로 지역사회를 지키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장기적인 사회적 안전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폐업 위기에도…’더 어려운 이웃 도와달라’ 힘 모은 사회적경제

안 위원장은 국내 사회적경제계의 ‘대모’다. 사회적경제가 막 싹트던 2000년부터 행복중심생협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행복중심생협 이사장을 거쳐 지난 2017부터는 전국 사회적경제 조직 66곳이 가입한 네트워크 단체인 연대회의에서 집행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전국의 사회적 경제 조직 연합체가 회원사인 연대회의는 주로 현장의 의견을 모아 사회적 경제 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을 한다. 지난 4·15 총선에서는 각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사회적 경제 관련 공약을 내걸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경제 매니페스토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20년간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활동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안 이사장이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청소나 돌봄 등 대면 업종이 많은 사회적 경제 기업 대부분이 영업 정지 상태에 빠졌어요. 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고용하는 곳이 많으니 ‘일자리를 잃으면 이들은 어쩌나’ 하고 걱정했죠. 그렇다고 기업에 무조건적 부담을 강요할 수도 없어 고민했지만, 내부적으로 ‘위기 극복도 사회적 경제답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고용 조정 제로’ 선언을 하고, 기금을 모아 선언에 동참하는 기업을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안 위원장은 “가장 힘든 곳이 가장 많이 도왔다”고 말했다. “기초 수급자를 고용하는 자활 기업 상황이 가장 안 좋아서 사장님들이 ‘폐업 위기인데 동참했다가 욕이나 먹지 않을지 솔직히 걱정된다’더니 결국엔 기부금도 가장 많이 냈습니다. 게다가 배분처를 논의할 땐 ‘이 돈이 더 어려운 사람에게 가도록 자활 기업은 배분 신청을 자제하자’고 먼저 말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사람이 만든 기적’ 아닐까요?” 함께한 사람들 이름을 하나씩 언급하던 안 위원장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안 위원장은 “사실 이런 경험은 사회적 경제 역사에는 흔하다”고 자랑했다. 지난 2016년 전국자활공제협동조합연합회가 시작한 의료비 공제 사업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사업인데, 매달 1000원을 내면 연간 30만원까지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시작 당시 많은 사람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거라고 했지만 결과는 달랐어요. 5년째 순항 중이죠. 참여자 대부분이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도움을 못 받게 될까 봐 함부로 돈을 못 타고, 쓰면 꼭 갚는다’고 말해요. 사회는 소외된 이웃에게 기회를 주고, 개인은 자립 의지를 가지고 다시 공동체를 돕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걸 사회적경제계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연결’과 ‘공동체’가 핵심

안 위원장은 코로나19 이후에도 ‘공동체’와 ‘연결’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고 내다봤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언택트(Untact·비대면)’가 강조되곤 있지만, 대량 실업과 장애인이나 노인 등 취약 계층이 재난 시기 가장 크게 고통받는 점을 고려하면 사람들이 서로 돌보는 ‘연대 정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줄 수 있을까요? 또 다른 재난이 오면 어떨까요? 오히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선 ‘멀어짐’이 아니라 사람 간 연결과 공동체 확대가 ‘사회의 회복’을 만드는 열쇠가 될 겁니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감염병이 잦아들고 나면 지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여러 사회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텐데, 이때 사회적경제 조직이 할 역할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 환경 오염, 주택 문제…. 이 문제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는데 사회적경제 조직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취약 계층은 모두 일자리를 잃고,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이쿱생협이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같은 자본을 가진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나서서 다른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돕는 것도 이런 것 때문입니다.” 아이쿱생협은 자체 출자한 재단을 통해 위기에 빠진 사회적경제 조직에 현금과 물품을 지원하고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대금을 선입금했고,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은 사회적경제 조직 대상 긴급 융자 프로그램을 내놨다.

안 위원장은 “돕는 과정에서도 사회적경제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짚은 사회적경제 원칙이란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평등하고 투명하게 의사 결정을 할 것’ 등이다. 대응본부는 펀딩으로 모인 돈 1억3000만원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한 돈 5억원을 합한 기금 총 6억3000만원을 이 기준에 따라 배분하고 있다. 만장일치로 가장 먼저 지원이 결정된 곳은 대구다. 대구 지역 사회적경제 조직 간 협의체인 대구사회가치연대 준비위원회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지역사회를 위해 써 달라’며 5000만원을 기부했다. 대응본부는 이들이 ‘사회적경제의 가치를 실천했다’며 1억원을 지원하고 회원사에 배분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고용 조정 제로 선언과 펀딩 참여도, 기업 상황 등을 기준으로 배분처와 금액을 논의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코로나19 전후의 사회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사람이 밀집해 살고 과노동이 일어나는 도시를 중심으로 재난이 퍼졌고,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먼저 희생됐죠. 코로나19는 환경 오염, 경제적 격차 등 이미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문제로 인해 일어나고 심화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과제도 다시 환경, 노동, 주거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는 게 아닐까요? 이 과제를 해내기 위해선 사회적경제가 언제나 말해오던, 연결과 공동체의 가치가 꼭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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