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은 못 넘지만… 현지 인력 키워 도움의 손길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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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시대, 진화하는 제3섹터] ①국제개발협력

“냐루타라마 지역 어때요? 주민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와 그 가족인데, 부모가 오랫동안 일을 못해 영양실조 상태인 아이들이 많아요.”(그레이스)

“분배는 지역 공무원에게 도움받으면 좋겠네요. 제가 연락할게요.”(시프리엔)

지난 6일(현지 시각)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있는 소셜벤처 ‘키자미테이블’에서는 열띤 토론이 열렸다. 키자미테이블은 식당을 운영하며 지역 청년을 고용하는 소셜벤처다. 이날 직원들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현지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논의했다. 회의는 ‘언택트(untact·비대면)’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평소라면 엄소희, 류현정 공동대표와 현지 직원들이 둘러앉아 의견을 나눴겠지만, 지난 2월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인 직원은 모두 귀국한 상황이다.

키자미테이블은 화상회의를 중심으로 한 언택트 소통을 사내에 도입했다. 엄소희 대표는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에 빠진 직원들을 다독이고 현장 상황도 파악할 겸 언택트 회의를 도입했는데, 오히려 직원들의 자율성과 사기가 오르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현지 직원들은 결정 권한이 있는 일까지도 대표에게 물어보곤 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현지 직원들은 이날 회의에서 지역 선정, 식자재 수급법, 분배 과정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도적으로 내놨다.

①한 활동가가 코이카가 배포한 개발 협력 관련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다. ②국경없는의사회는 지난달 24일 온라인상에서 위성 지도를 확인하며 구호 지도를 그리는 온라인 자원봉사활동 ‘매파톤’을 진행했다. ③아름다운커피 르완다 사업장에서 조합원들이 커피 열매를 골라내고 있다. /코이카, 국경없는의사회, 아름다운커피
“현지 직원들에게 주도권을 주자” 언택트 개발 협력의 핵심

국제개발협력에도 언택트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재 NGO, 소셜벤처,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등 국제개발협력 기관들은 코로나19로 국가 간 왕래는 물론 개도국 내 이동까지 어려워지면서 사업 대부분이 ‘올스톱’됐다. 이들은 기존 사업을 비대면으로 꾸려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방식의 개발 협력 모델 구상에 돌입했다.기존 국제개발협력사업은 공여국 기관 직원들이 현장 조사, 사업 설계, 평가 등 프로젝트의 주요 의사결정 권한 대부분을 행사했다. 효율성은 높지만, 재난 상황에서 관리자들의 발이 묶이면 프로젝트가 멈춰서는 단점이 있다.최근 국제개발협력 기관들은 그간 보조적 역할을 맡아온 현지 주민이나 직원에게 권한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중단한 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미얀마 사무소에 의료 책임자 파견이 어려워지면서 보조 역할을 하던 미얀마인 의사를 임시 소장직에 임명했다. 현지 직원도 추가 채용했다. 김태영 국경없는의사회 미얀마사무소 활동가는 “최근 들어 현지인 직원의 조직 내 입지가 커졌다”며 “당장 업무 효율성만 따지면 사업에 능숙한 외국인 직원이 유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현지 직원의 역량을 키우는 게 지역사회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공정무역을 통한 개발협력을 하는 사회적기업 아름다운커피는 ‘농장 조합원-현지 직원-한국인 직원’으로 이어지는 ‘3자 언택트 소통’을 통해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나무를 키워가고 있다. 현재 한국 본사에서 근무 중인 권민지 르완다 센터장은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조합원이 현지 직원에게 전화로 상황을 공유하고, 다시 현지 직원은 메일로 한국 사무소에 진행 상황을 공유해준다”며 “매일 의사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커피 품질 관리나 납품 일정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코이카도 대응에 나섰다. 코이카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지난 3월, 전 세계 42국에서 활동하던 ‘월드프렌즈코리아’ 해외봉사단 1405명을 전원 귀국 조치했다. 해외봉사단은 코이카 각국 사무소나 협력 NGO에서 활동하며 국내 국제개발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코이카 측은 “자국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현지 인력을 키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코이카 내부에 생겼다”며 “올해 말부터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시범적으로 ‘현지 봉사단’을 꾸리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제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감염병처럼 번지는 ‘혐오’ 막아라… 세계시민교육 강조

최근 ‘세계시민교육’은 개도국 현장에 직접 가지 않는 새로운 국제개발협력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가장 먼저 나선 곳은 아름다운커피다. 아름다운커피는 지난 2월 온라인 세계시민교육·공정무역교육 키트 ‘체인지 유어 초콜릿’을 출시했다.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사무처장은 “온라인 개학과 대면 캠페인 감소로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찾는 교사와 단체가 늘어 반응이 좋다”고 했다.

코이카도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했던 세계시민교육을 확대할 계획이다. 송진호 코이카 기획이사는 “지금껏 많은 나라가 지구촌 발전을 위해 큰돈을 썼지만, 전 세계적 위기가 닥치니 모든 나라가 국경을 봉쇄하고 이주민을 배척했다”며 “이를 지켜보며 ‘혐오와 차별을 거부하는 지구 시민 육성’도 코이카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이카는 지난달부터 전국 국립 청소년수련시설을 세계시민교육센터로 리모델링해 강사 육성·온라인 콘텐츠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이르면 오는 9월 시설이 완공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기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쌓여온 문제를 해결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현지 상황을 가장 잘 아는 현지 단체와 활동가들의 의견이 신속하게 반영되는 의사 결정 구조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부분 정부 기금과 매칭해 활동하는 국제개발협력 기관이 활동 내용을 변경하려면 정부나 코이카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개발협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발전대안 피다’의 한재광 대표는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전 지구적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시민사회와 정부가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사업 내용 변경 등에 관한 의사 소통을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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