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2일
[공변이 사는 法] “사회적경제 조직 위한 ‘법률적 판’ 깔아주는 일이 제 사명이죠”
[공변이 사는 法] “사회적경제 조직 위한 ‘법률적 판’ 깔아주는 일이 제 사명이죠”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print

기업 사내 변호사서 공익변호사 길로
현재 사회적경제 조직 법률지원 전담

사회적기업 구성원도 법률 이해 필요
협동조합 정체성에 맞는 법 만들어야

김용진 변호사는 공익적 가치가 선명하면서 업력은 짧고 자본도 적은 사회적경제 조직을 우선적으로 지원한다. 그는 “선한 의지로 활동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법률적 보디가드’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공익변호사도 용기가 필요하다. 법률적 구제가 어려운 의뢰인이 몰리는 데다 인력 부족으로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많다.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사람에게 손길을 내밀 수는 없다. 21일 서울 서대문구 두루 사무실에서 만난 김용진(36) 변호사는 깡마른 체격에 눈 밑 다크서클이 짙었다. 그는 대기업 사내 변호사로 일하다 사직서를 내고 지난 2015년 공익사단법인 두루에 합류했다. 법무법인 지평이 공익 법률 활동을 목적으로 두루를 설립한 이듬해다. 김 변호사는 “처음엔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웃었다.

구성원들 법률적 이해 있으면 비용·시간 줄일 수 있어

“두루 초창기에는 전문 분야랄 것 없이 영역을 넘나드는 일을 많이 했어요. 사내변으로는 절대 맡을 일 없었던 난민 사건을 수행했을 때 공익변호사 일이 녹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종교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파키스탄 사람들이었는데,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구타를 당하고 그 일이 지역 일간지에 실리기도 했는데 난민 입증에 결국 실패했거든요. 난민 분야는 여전히 증명 책임의 문턱이 높습니다.”

김 변호사는 몇 해간 다양한 공익 분야를 경험했고, 지금은 사회적경제 조직 법률 지원을 전담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협동조합 등이 ‘사회적경제’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이지만 조직의 성격을 따져보면 정말 다르고 발생하는 법률 이슈도 제각각”이라고 했다.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가 겪는 법률 문제는 일반적인 영리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표권 분쟁이나 노무·세무 이슈 등은 모든 기업에 해당하니까요. 다만 소셜벤처 같은 경우,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사업 모델이 많다 보니 법률상 따져볼 일이 있죠. 사회적가치를 실현하는 사업이지만 고용 형태가 모호하다거나 임대 사업이긴 한데 특이한 방식 탓에 위법 행위로 분류되는 경우도 꽤 됩니다.”

그는 사업 모델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법률 리스크를 줄이도록 돕는다. 그런 점에서 법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표와 구성원들이 법률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으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15년 교육 때만 하더라도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 박찬재 두손컴퍼니 대표가 참석했었는데 지금은 수십억원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됐다”며 “소셜벤처의 근거지인 서울 성수동을 중심으로 꾸준히 법률 교육을 진행하는 이유”라고 했다.

“법인을 대상으로 조언한다고 하면 다소 딱딱하게 진행될 것 같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설립 단계에서는 법인 형태를 선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대표의 생각을 뿌리부터 캐내야 해요. 사업 구조는 물론 대표가 생각하는 지배 구조까지 고려해야 나중에 큰 탈이 없습니다.”

난민이나 장애인 사건은 특정 의뢰인을 직접 지원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사회적경제 조직을 지원하는 건 법률적으로 판을 깔아주는 것에 가깝다. 김 변호사는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더 많은 사람이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업무에 힘쓰는 게 주어진 사명(使命)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협동조합 성장 돕는 전문 법조인 더 필요해

김용진 변호사는 특히 협동조합에 애정이 많다. 지난해 한국법제연구원에서 위탁받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협동조합법제 개선 방안 연구’의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했고, 올해도 협동조합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협동조합은 그 자체로 공익적 가치가 상당하다”며 “출자 규모와 무관하게 1인 1표 원리로 의결하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조직이면서, 가입과 탈퇴 절차가 자유로운 개방적 조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 협동조합이 1만4000개 넘게 있다고 하는데, 현재 협동조합법제에는 결함이 많아요.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은 상법상 회사와 성격 자체가 다릅니다. 이 부분을 협동조합기본법에서 달리 규정해야 하는데, 현행법을 보면 일반협동조합을 회사와 마찬가지로 취급하고 있어요. 협동조합기본법이 상법 규정의 상당 부분을 빌려쓰기 때문이죠. 협동조합이 정체성에 맞는 조직을 갖추고 활동하기 위해서 하루빨리 바로 잡아야 할 부분입니다.”

김 변호사는 국내 협동조합의 성장을 위해서는 전문 법조인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위기에 강한 조직이에요. 지난 2013년 스페인 몬드라곤의 파고르전자가 파산했는데 조합원 수천명 중 단 한 명도 해고되질 않았아요. 그룹 내 다른 협동조합으로 재배치하는 방식으로요. 경쟁이 아니라 연대를 통해서 해결한 것이죠. 만약 대기업 계열사 하나가 문 닫으면 다른 계열사에서 노동자를 받아줄까요? 한국에는 더 많은 협동조합이 뿌리 내려야 하고, 이를 도울 수 있는 전문가들도 필요해요.”

김용진 변호사의 첫 직장은 현대카드다. 법무팀에서 사내 변호사로 일했다. 학창 시절 꿈꿨던 변호사가 됐지만 퇴근 때면 공허함이 몰려왔다. 진로를 고민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 보니 길이 보였다. 그는 학창 시절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가계마저 휘청거리면서 법조인을 꿈꾸게 됐다. “한 교실에서 같은 교복을 입고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왜 나는 이렇게 힘들까’ 하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불평등’이라는 단어에 꽂혀 버린 거죠. 그래서 법을 알면 고민이 정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막상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생각을 잊어버렸던 거예요.”

김 변호사는 사직서를 내기 전으로 되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했다. “좋아하지 않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둘 다 해본 입장에서 경제적인 가치는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고민해보면 신기하게도 답이 보입니다. 반드시 공익일 필요는 없겠지만 신념이나 성정과 맞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게 행복하게 사는 일 아닐까요.”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