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변이 사는 法] ‘억울한 이주민 몇 명이라도 구제하자’… 7년째 무료 법률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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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이 사는 法] 고지운 변호사


무료 봉사로 이주민 현실적 문제 직면
공익법인 설립, 본격적으로 지원 나서

이주노동자에 ‘불법체류자’ 낙인 씁쓸
편견과 일부 사업주 횡포로 ‘이중고’
우리 사회의 이해와 도움 절실하죠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 감사와동행 사무실에서 만난 고지운 변호사. 그는 “결혼 이주여성의 가정폭력 사건을 여럿 맡으면서 이주아동을 위한 지원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이주민 관련 정책에 학대 피해 이주아동 보호도 반영될 수 있게 제도 개선 활동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우연한 사고였다. 사무실을 나서는 길에 양쪽 발목에서 종아리까지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병원에서는 아킬레스건염증이라고 했다. 격렬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담당 의사는 “증상이 두 발 모두에서 나타나는 건 드물다”며 “몸을 혹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생애 첫 휴가를 양발에 깁스한 채 침대에서 보냈다. 사연의 주인공은 올해로 7년째 이주노동자에게 무료 소송을 지원하는 고지운(42) 변호사다. 그는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에서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주 고객은 이주노동자, 가정폭력·성폭력 피해 이주여성, 이주아동 등이다. 평일과 휴일 구분 없이 동분서주하는 고 변호사를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가정폭력·성폭력 피해 이주여성, 이주아동, 이주노동자가 주고객

“원래는 의료법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로스쿨에서도 ‘생명윤리’를 전공했어요. 그런데 변호사가 되고 이주민 봉사단체에 참여하면서 인생 목표가 달라졌죠.”

고지운 변호사는 이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법률 상담을 시작한 2012년만 해도 이주민에게 큰 관심 없었다. 이주민들은 언어 문제만 극복하면 될 것이라는 착각이 머리를 지배할 때다. “현장에 나가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어요. 법제도상으로 체계는 갖추고 있는데, 사각지대가 너무 많았어요. 법을 몰라서, 사람에게 속아서, 공권력에 의해서 자칫 범법자가 될 사람이었어요. 외면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우연히 시작한 무료 봉사를 취업도 마다한 채 1년 넘게 이어갔다. 그러다 지난 2014년 3월 공익법인 감사와동행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이주민 지원에 나섰다. 지금은 고 변호사를 포함해 식구가 3명으로 늘었지만, 당시만 해도 1인 법률사무소였다. ‘억울한 사람 몇 명이라도 구제하자는 생각’만으로 전국의 이주민지원센터, 외국인노동센터 등에서 의뢰인을 찾아나섰다. 이주노동자들이 법률 지원을 받을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농촌 지역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주거환경이나 처우도 열악한 데다 성폭력 사건도 빈번하다”며 “체류 자격이 있는데도 사업주가 한국에서 내쫓아버린다고 하면 지레 겁을 먹고 침묵하는 일도 잦다”고 설명했다.

고지운 변호사는 올해로 7년째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에서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이주아동 등에 무료로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주노동자는 비자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시간을 다투는 경우가 많다. 자칫 체류 자격을 잃게 되면 강제 퇴거 당하기 때문이다. 고 변호사는 “산재 처리나 임금체불은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해고와 같이 사업장을 이탈하게 되는 경우 체류 자격도 함께 흔들리기 때문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이주노동자는 마음대로 이직할 수 없다. 폐업, 임금체불 등의 특별한 사유가 있거나 사업주의 허가를 받아내야 가능하다. 일부 사업주는 이를 악용해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

“한번은 사업주가 휴가를 요청한 이주노동자에게 계약해지 서류를 내밀어 사인하도록 한 사건이 있었어요. 평소 도움을 주던 노무사와도 전화 연결이 안 됐죠. 한국어를 모르는 이주노동자는 결국 사인을 했고, 얼마 후 출입국청 단속에 걸려 구금됐어요. 계약해지 신고를 하지 않으면 미등록체류자 신분이 되거든요.”

고 변호사는 이 사건을 맡아 법무부와 소송을 벌였고 승소했다. 그는 “전후 사정을 알고 나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우리 사회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오해가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많은 사람이 이주노동자를 두고 무조건 ‘불법체류자’로 낙인찍거나 한국에 눌러살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근로자격을 승인받아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보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상당해요. 고향의 애인과 전화하거나 펜팔 하는 젊은 친구도 많고요. 빨리 돈 벌어서 고향에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해요. 그러니까 일부 사업주의 폭언이나 폭행도 참아내며 일하는 겁니다.”

고 변호사도 원칙은 있다. 모든 이주노동자에게 법률지원을 하는 건 아니다. 그는 “정식으로 근로자격을 얻었는지가 중요하다”며 “관광비자로 입국해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걸 작정하고 장기 체류한 사람들에게는 빠른 출국을 권유한다”고 했다.

공익변호사 성공모델 만들고 싶어

뒤돌아보지 않고 7년간 앞만 보며 달려온 고 변호사에게도 고민은 있다. 바로 단체의 자립이다. 성공모델을 만들어 증명해야 새로운 공익단체들도 생겨나고, 후배들도 공익변호사가 되길 주저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다. 후원자 135명과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사무실 지원 덕으로 단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최근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익변호사 활동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어요. 한 후배가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냐’고 묻는데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공익변호사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누군가를 돕는 공익변호사가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고 변호사는 “공익활동 분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은 프로보노 활동이 상당히 전문화돼 있고, 로스쿨과 연계된 지원도 많은 편”이라며 “국내에서도 공익변호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소진되지 않는 선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익변호사 모델’을 개척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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