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설립된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이하 ‘소풍’)는 국내 최초의 임팩트투자사다. 소셜벤처가 우리 사회에 확산하기 시작한 때부터 생태계를 이끌어온 셈이다. 지금은 D3(디쓰리)쥬빌리, 옐로우독 등 다양한 임팩트투자사가 생겨났지만, 창업 초기 단계 소셜벤처 전문 액셀러레이터는 소풍이 유일하다.
지난달 소풍이 발표한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리포트’에는 10년간 소풍의 경험이 모두 담겼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임팩트 측정 방식을 통해 내놓은 이 리포트는 ▲소풍의 피투자사 임팩트 측정 결과 ▲소풍의 임팩트 측정 결과 ▲임팩트 담론 분석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매뉴얼 등으로 구성됐다. 2018년 5월 리포트 제작에 돌입해 지난해 12월에 마무리됐으니 1년 반이나 걸렸다. 지난 6일 서울 성수동 카우앤독에서 한상엽(37) 소풍 대표와 연구를 총괄한 이은선(38)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10년간의 소셜 임팩트 분석한 리포트 펴내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리포트’를 펴낸 이유부터 듣고 싶다.
한상엽(이하 ‘한’): 소풍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10년 차가 된 소풍이 생태계에 의미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무엇보다 소풍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소셜벤처 생태계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은선 교수와 함께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리포트를 기획하게 됐다.
이은선(이하 ‘이’): 나도 비슷했다. ‘보은’의 마음이랄까. 석·박사 학위 모두를 사회적기업 연구로 받은 연구자는 내가 국내 최초다. 당시 선행 연구가 부족해 전국의 현장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연구를 해왔는데, 초보 연구자였던 나에게 기꺼이 시간과 경험을 나누어준 소셜벤처들에 대해 ‘마음의 빚’이 있었다. 교수가 되지마자 소풍에 “재능기부할테니 리포트를 내자”고 제안한 건 그 빚을 갚기 위해서다.
―리포트가 나오기까지 1년 반이나 걸렸는데.
이: 우선 지난 10년간의 임팩트를 제대로 정리해 보여주고 싶었다. 10년치 임팩트 관련 언론 보도, 웹사이트 게시물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논의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폈다. 임팩트 측정도 기존과 다르게 했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중심으로 임팩트 카테고리를 나누고, 소셜벤처와 협의해 개별 기업에 맞는 임팩트 측정 지표를 설정했다.
한: 소셜벤처 중심의 임팩트 측정이라는 점이 의미 있다. 소풍에 합류한 건 올해로 5년 차, 소셜벤처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15년이 됐다. 그동안 소셜벤처들은 다양한 사회적 임팩트를 만들어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임팩트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수동적으로 외부 기관에 의해 임팩트를 평가받는 게 아니라, 소셜벤처 스스로 자신들이 창출하려는 임팩트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임팩트 커뮤니케이션’이다. 소풍에 투자받지 않은 기업도 자신들의 임팩트를 측정해 외부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할 수 있도록 ‘템플릿’도 개발해 실었다. 현장의 소셜벤처나 사회적기업이 자신들의 임팩트를 직접 측정하고 드러내는 양식을 만들었는데, 이은선 교수가 이 작업에 특히 공을 들였다.
―기존에도 임팩트 측정 방식이 있다. 이들과 비교해 설명하자면?
이: 기존 임팩트 측정은 정부·기업 등 보상을 제공하는 기관 중심으로 진행됐다. 각자 만든 지표를 통해 소셜벤처나 사회적기업이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해 보상을 제공하는 식이다. 대표적인 게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만든 ‘사회적가치지표(SVI)’와 SK그룹이 만든 ‘사회성과인센티브(SPC)’다. 해당 기업이 창출하는 임팩트에 합당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개별 소셜벤처가 추구하는 임팩트보다는 측정 기관이 중요시하는 사회적가치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한계가 있다. SVI의 경우 일자리 창출 숫자, SPC는 현금 환산 여부가 중요하다. 그 외에 임팩트투자사나 소셜벤처가 자체 발간하는 서술 방식의 보고서도 있지만 이 경우 당사자들의 설명에 의존하다보니 무엇을 임팩트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 소풍의 이번 보고서는 두 가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술형 평가와 양적 평가를 함께 진행했다.
―소풍의 경우 ‘영업 비밀’이라 할수 있는 액셀러레이팅 매뉴얼까지 리포트를 통해 공개했다.
한: 소풍의 액셀러레이팅 매뉴얼은 영업 비밀이라기 보다는 ‘공공재’라고 생각한다. 소풍이 소셜벤처들과 함께 성장해왔으니까. 생태계에 기여하는 게 결국 소풍이 오래 살아남는 길이다.
생태계 발전 위해 ‘데이터 구축’ 필요해
―리포트를 쓰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발견이 있었다면.
한: 소풍이 액셀러레이팅한 기업의 33%가 피벗을 경험했다는 점을 데이터로 확인했다. 임팩트 빅데이터 분석에선 점점 ‘사회적기업’보다 ‘소셜벤처’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 자금 조달 과정에서도 지원보다는 ‘투자’의 언급이 늘어난다는 것도 유의미한 확인이었다.
이: 소풍이 투자한 46곳의 소셜벤처가 아주 다양한 임팩트를 낸다는 점이다. 또 서울시에 있는 인증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를 비교했을 때, SDGs 중 사회적기업에서 비교적 적은 임팩트 유형을 소셜벤처가 메우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대표적으로 건강과웰빙(SDGs 3번), 책임 있는 생산과 소비(SDGs 12번) 등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들었다.
이: 이런 리포트를 작성하려면 데이터가 중요하다. 시작하기 전에 한 대표님에게 데이터가 충분하냐고 물었더니 “풍성하다”며 자신만만해하더라. 그런데 막상 데이터를 받아보니 쓸 데이터가 없어서 못 하겠다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웃음). 소풍이 기록을 게을리한 게 아니라 소셜벤처 육성 과정에서 받는 자료들이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와 달라서다. 예를 들어 소풍은 개별 기업을 액셀러레이팅 하는 과정에서 자문 시간인 ‘오피스아워’를 운영하는데, 여기서 오간 내용들이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걸 연구 데이터로는 사용할 수 없다. 변수가 통제된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데이터를 잘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우리도 깜짝 놀랐다(웃음). 창업 초기 단계라 사업 모델을 바꾸는 ‘피벗’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일관된 데이터 수집이 어려웠다. 예를 들면 후불제 학습을 제공하는 ‘학생독립만세’의 경우는 창업 초기 후불제 과외 모델로 시작했는데 저희와 논의하면서 ‘과외만 제공하는 건 대학 진학엔 도움이 되지만, 학벌 중심 사회라는 우리 사회의 큰 문제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고 후불제 교육으로 사업 모델을 바꿨다. 이런 경우에 수집하던 데이터 자체가 달라진다. 교수님이 고생 많았다(웃음).
두 사람은 소셜벤처 생태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데이터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소셜벤처 네트워크인 임팩트얼라이언스도 ‘공동데이터 구축’을 올해 가장 중요한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소셜벤처, 임팩트투자사 등 임팩트 분야의 강점은 같은 분야에서 뛰는 사람들이 서로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로 본다는 것”이라며 “이를 살려 각자가 가진 데이터를 공동의 자산으로 나눠야 임팩트를 더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