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비건’은 안단테로…조용히 확산하는 ‘비거니즘’ 문화

비건 카페에서 선보이는 디저트와 음료는 모두 채식재료로 만들어진다. ⓒ박창현 사진작가

서울 종로구 익선동 골목길. 한옥 기와 사이로 난 길모퉁이 빵집에 들어서면, 형형색색의 타르트가 눈에 띈다. 산딸기 타르트, 단호박 모찌 타르트, 블루베리 타르트⋯. 그 옆에는 레드벨벳 케이크와 앙버터 스콘도 보인다. 이곳에서 파는 모든 디저트와 음료는 ‘비건(vegan, 완전한 채식)’이다. 벽 한편엔 ‘맛있는 비건’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올해 초, 문을 연 ‘앞으로의빵집’에는 평일 낮에도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붐빈다. 박윤아(26) 대표는 “친환경적인 삶은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환경·윤리 중시하는 밀레니얼 소비문화 잡아라”

국내에서 비건을 테마로 한 창업이 늘기 시작했다. 환경과 윤리를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식문화를 잡기위해 시장이 움직인 셈이다. 한국채식연합은 국내 채식인구를 약 100만~1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는 “국내 동향을 분석해 봤을 때 10년 전과 비교해서 채식 인구가 두 배 정도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건은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최근 미국 대체육 브랜드 ‘비욘드 미트’가 한국에 입성했고, 롯데푸드도 지난 4월 대체육 브랜드 ‘엔네이처 제로미트’를 내놨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AT커니는 대체육 시장이 오는 2040년 전 세계 육류 소비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최근 비건 빵집을 낸 박윤아씨 역시 한국에서 비건 상품이 늘어나는 걸 보고 상업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건강한 먹거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비거니즘(veganism)의 주체는 단연 밀레니얼 세대다. 비거니즘은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식습관에 그치지 않고, 가죽제품이나 오리털을 이용한 의류와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 등을 피하는 윤리적 소비를 뜻한다. 가치소비와 윤리적소비를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을 중심으로 비거니즘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평소 비건 카페를 자주 찾는다는 박하연(33)씨는 “비건 문화를 처음 접하고, 마치 유행을 즐기듯 동참했다”며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다는 점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부터 비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채윤(22)씨는 “채식한다고 말했을 때 주변에서 의아해하는 사람이 확실히 줄어들었다”며 “함께 식사 자리를 할 때 채식 옵션을 고려해주는 때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변화의 움직임은 대학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국내 주요 대학에서는 ‘비건 동아리’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학생들은 봄축제에서 비건 문화 전파를 위해 부스를 열고 활동한다. 비건 레시피를 공유하는 ‘원데이 클래스’도 인기다. 박윤아씨는 “레시피를 확보하기 위해 클래스를 찾았을 때 비건 식당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자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에서 비건 카페 ‘앞으로의빵집’을 운영하는 박윤아 대표. ⓒ박창현 사진작가

비건 사업은 블루오션⋯비건 창업 컨설팅도 활성화

비건 관련 사업에 관심을 갖는 창업자들도 늘고 있다. 박윤아씨는 “비건 비즈니스를 해보겠다며 찾아오는 후배들이 대여섯 명이 넘는다”며 “장사를 하면서 수요가 많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최대한 조언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비건 인증’을 해주는 곳도 생겼다. 지난해 설립된 한국비건인증원은 비건 관련 사업자를 대상으로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고, 교육·컨설팅 사업도 벌이고 있다. 한국비건인증원은 공유주방 ‘위쿡’에 입주한 식당들이 비건 메뉴를 개발할 때 조언을 해주고 있다. 공유주방은 누구나 필요한 만큼의 주방과 설비를 빌려 음식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최근에는 위쿡에 입주한 중식 밀키트 브랜드 ‘쉐프홈’가 ‘파유(파기름)’를 상품화하면서 한국비건인증원으로부터 인증을 받았다.

비건을 겨냥한 창업 컨설팅도 활성화하고 있다. 비건생활연구소는 지난 3월 ‘비건 스타트업 강연회’를 열고 비건이거나 비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비건 비즈니스 현황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비건 창업 상담을 요청하는 문의도 크게 늘었다. 비건생활연구소는 “향후 교육사업과 함께 창업·프랜차이즈 설립 등 비건 비즈니스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재민 청년기자(청세담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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