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 개막식에서 에서 정부가 사회적경제 육성에 기여한 유공자에게 국민훈장(1점), 국민포장(4점), 대통령 표창(12점), 국무총리 표창(18점) 등 총 35점의 포상과 표창을 수여했다. 이날 수상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협동조합,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중간지원조직 등 각 분야 대표 수상자에게 직접 시상했다. 문 대통령은 격려사를 통해 “수상자 모두가 취약계층 지원과 사회적경제 발전에 큰 기여했다”며 “나보다 우리를, 소유보다 나눔을 실천한 사회적경제인 모두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이날 사회적경제 관계자들은 대규모 포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개막식을 지켜보던 한 관계자는 “사회적경제를 두고 ‘공산주의하자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듣던 게 불과 얼마 전”이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서훈을 받은 수상자들은 의료, 마을 공동체 활성화, 소셜벤처, 소수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번 서훈 수상자 가운데 주목할 만한 네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최고 상훈 ‘국민훈장 동백장’, 국내 첫 의료사회적협동조합에
가장 큰 상인 국민훈장 동백장은 이인동 안성의료사회적협동조합(안성의료사협) 원장에게 돌아갔다. 이 원장은 안성의료사협을 1994년 설립 당시부터 이끌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안성의료사협은 1994년 연세대 의대생들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생협으로, 2014년 의료생활협동조합에서 의료사회적협동조합으로 명칭을 바꿨다. 설립 당시 250여 명의 조합원과 1억2000만 원의 출자금으로 문을 연 안성의료사협은 현재 6300명이 넘는 조합원과 10억4000여만 원에 달하는 출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조합원당 가족 수를 고려하면 경기 안성시 인구의 8%가 의료사협을 통해 의료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생애주기에 맞춘 조합원 평생 돌봄’을 내세우는 의료사협은 문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커뮤니티케어와도 접점이 크다. 의사 등 의료 전문가가 아닌 마을 주민이 의료사협의 중심으로 활동하며, 단순 진료·처방이 아니라 마을에 필요한 ‘돌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자 관리, 요가·명상·운동 등 신체·정신관리 프로그램은 물론 건강 자조모임, 건강교육모임도 운영한다. 현재 안성의료사협도 커뮤니티케어 도입에 발맞춰 지상 8층 규모의 ‘포괄케어 허브센터’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주간보호센터, 방문요양 등 돌봄서비스 제공기관과 자조 모임 등 건강 관련 주민 소모임을 결합시켜 지역 통합돌봄의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는 게 안성의료사협의 포부다.
‘함께 잘 사는 지역사회’ 만든 마을기업 역할 인정
국민포장을 받은 쌍지뜰전통식품은 전남 순천시 상사면에 위치한 매출 6억원 규모의 마을기업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쇠퇴해가는 지역을 살려낸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포장을 받았다. 쌍지뜰전통식품은 2010년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된 뒤 방치된 ‘쌍지분교’ 부지를 친환경 과자공장과 아동 대상 체험교육장으로 리모델링해 2012년 문을 열었다. 유명 관광지인 순천만이 차로 15분 거리에 있어 순천만을 찾은 가족 단위 관광객을 대상으로 친환경 요리 체험장 등을 운영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최근에는 쌀과 들깨 등을 활용한 친환경 과자 판매량도 올라가고 있다. 들깨와 쌀을 활용하는 이유는 마을 어르신들이 재배하기 쉬운 작물이기 때문이다. 김해옥 쌍지뜰전통식품 대표는 “소비자들에겐 친환경 먹거리와 재미있는 관광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과자 판매와 관광 프로그램 운영으로 지역 일자리를 만들며 계속해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마을도 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지역을 살려낸 곳이다. 승곡리 체험마을의 시작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산물 개방의 직격탄을 맞은 농민들이 자구책을 마련하면서도 좋은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겠다는 원칙을 지켜내려 생협을 꾸린 것이 계기가 됐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잇는다는 생협의 정신대로 고객을 농장에 초대해 농민들이 직접 먹거리와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이에 활동 규모를 키워 지역공동체에 활력을 더하자는데 뜻을 모인 주민들이 2008년부터 법인을 만들고 ‘승곡체험마을’ 운영을 시작했다. 공동체 활성화라는 가치에 대한 주민 이해도가 탄탄한데다 친환경 먹거리 체험이나 농촌 숙박 등 프로그램에 대한 방문객 반응도 좋아 정부나 지자체가 꼽는 ‘우수 농촌 활성화 사례’에 빠지지 않고 손꼽힐 정도로 성장했다.
에이즈 감염인 사회 복귀 이끌어낸 협동조합
국무총리 표창 수상자로 선정된 사회적협동조합 레드리본도 눈길을 끈다.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에이즈 감염인들이 만든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 레드리본은 협동조합 설립 후 에이즈 감염인들이 직접 바리스타나 서버로 활동하는 카페 ‘빅핸즈’를 열고 판매와 에이즈 인식개선 활동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김지영 이사장은 에이즈 감염인들을 돕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에이즈 감염인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활동을 계획했다. 에이즈 감염인을 위한 쉼터가 있어도 입퇴소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 돈을 벌고 일하면서 자연스레 사회에 복귀하는 모델을 찾다 2013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현재 17명의 조합원과 20여 명의 자원활동가들은 대구에서 카페 ‘빅핸즈’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대구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감염임과 그 가족들이 자립과 사회 복귀의 의지를 다지러 찾아온다. 아이의 손을 잡고 일부러 방문하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있을 정도다. 레드리본이 꿈꾸는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사는 세상’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소셜벤처도 사회적경제의 ‘큰 기둥’
대통령표창을 받은 김재현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와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소셜벤처 육성 분야 전문가다. 임팩트스퀘어는 소셜벤처 육성·지원 전문기관으로, 크레비스파트너스는 임팩트 투자 기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두 기업 모두 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벤처를 지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임팩트 투자에 대한 혜택을 벤처 투자만큼 늘려달라”는 주장을 해 오며 임팩트 투자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해 왔다. 크래비스파트너스는 2004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임팩트 투자 전문회사로, 렌딧(금융), 프렌트립(여가) 등 굵직한 소셜벤처에 투자해 왔다. 이들의 수상으로 ‘성수동파’로 불리며 자활기업·여성기업 등 ‘전통적 사회적경제’ 분야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소셜벤처와 임팩트 투자 분야도 사회적경제의 큰 기둥으로 입지를 다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아래는 ‘사회적경제 활성화 유공’ 서훈 수상자 및 단체 전체 명단
▲국민훈장 동백장=이인동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
▲국민포장=김해옥 농업회사법인 쌍지뜰전통식품 대표, 손병완 초록건설 대표이사, 오미예 사회적경제 씨앗재단 이사장, 이은애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대통령 표창=박미정 광주간병인협동조합 이사장, 하재찬 사람과경제 상임이사,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 권지훈 사회적협동조합 마을과복지연구소 이사장, 조완형 농업회사법인한살림축산식품 상임이사, 이은경 여민동락영농조합법인 대표, 김재현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 사회적협동조합창원도우누리, 승곡리체험마을 영농조합법인, 이정일 다우환경 대표, 부산돌봄사회서비스센터, 이지무브
▲국무총리 표창= 한기수 화성시발효식품협동조합 대표, 김기범 케이앤아츠 대표, 윤재필 아마존(아름다운마을이존재하는곳) 대표, 송의현 사회적협동조합 살림 실장, 남영희 참좋은두레생협 이사장, 사단법인 마을을잇는사람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주가연 경기도따복공동체지원센터 매니저, 꿈더하기 사회적협동조합, 합굿마을문화생산자협동조합,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공공디자인이즘, 영농조합법인홍천명품한과, 영월군돌봄사회서비스센터, 충북주거복지센터 사회적협동조합, 싸리비, 사회적협동조합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사회적협동조합 살림
[대전=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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