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화)

“국회 속 세금 도둑 잡는 날… 특활비 영수증 전시회 열 것”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비영리단체 설립 10개월 만에 국회 특활비 사실상 폐지 성과

꼭꼭 숨은 돈을 쫓는 남자. 하승수(50)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영수증을 남기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국회 특수활동비 등 이른바 ‘깜깜이 예산’을 파헤친다. 국회 특수활동비는 교섭 단체, 위원회, 의원 외교 등을 지원하기 위해 해마다 60억원 규모로 편성된다. 하승수 대표는 뜻있는 비영리 활동가들과 함께 비영리단체 ‘세금도둑잡아라’를 설립했다. 활동 10개월 만인 지난달 16일, 국회는 62억원 규모의 특활비를 내년 10억원으로 대폭 낮추며 ‘사실상 폐지’를 선언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국민권익위원회, 대법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공정거래위원회, 방위사업청 등 다섯 기관은 특활비 전면 폐지를 결정했다.

지난 10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승수 대표. ⓒ최항석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특활비·정책개발비·특정업무경비… 줄줄 새는 세금

“이번에 국회 예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저도 몰랐던 항목을 여럿 발견했어요. 처음에는 특활비와 업무추진비만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입법 및 정책개발비’라는 것도 있고 ‘정책자료집 발간 및 발송비’ ‘특정업무경비’라는 항목도 있어요. 국민에게는 생소한 눈먼 돈이죠. 이렇게 알게 모르게 집행된 예산이 500억원 정도 됩니다. 이걸 제대로 썼는지 확인해보자는 거죠.”

지난 10일 마주한 하승수 대표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국회를 상대로 ‘정보공개소송’을 벌이고 있다. 현재 맡은 소송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국회 특활비와 업무추진비 및 국회의장단의 해외출장비’와 ‘정책자료집 발간·인쇄비 및 특정업무경비’는 모두 1심에서 승소, 이달 항소심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는 피감 기관 예산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온 국회의원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미 승소를 확정한 소송도 있다.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증빙서류 공개소송’의 경우 2만 쪽에 이르는 자료를 열람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사본을 복제하고 있다. 그의 감시 레이더에 포착된 은밀한 세금은 ▲특정업무경비(179억원) ▲업무추진비(103억원) ▲입법 및 정책개발비(86억원) ▲특수활동비(63억원) ▲정책 자료 발간 및 발송비(46억원) ▲예비금(13억원) 등이다.

특활비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월, 대법원은 18대와 19대 국회 특활비 내역 공개를 확정 판결한 바 있다. 판례가 마련됐지만, 현 20대 국회는 특활비 내역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는 “정보공개소송은 공개 요구 서류의 생산 기간을 지정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면 다시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승수 대표는 “국회 특활비 폐지 선언은 투명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일 뿐,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말했다. ⓒ최항석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 “세금 도둑 잡는 날, 영수증 모아 전시회 열 것”

하승수 대표는 변호사다.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보다 법률을 잘 아는 시민활동가로 청춘을 보냈다. 시민활동에 발을 들인 건 22년 전. 우연한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96년이니까 사법연수원 1학년 때죠. 그때 ‘사법연수’라는 잡지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인터뷰를 하나 맡았어요. 선배 중에 특이한 일을 하시는 분이 있다고 해서요. 지금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였죠.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고 계셨는데, 당시에는 시민단체라는 게 흔치 않았죠. 그때 변호사님이 제안하더라고요. 주말에 좀 나와서 도와 달라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본격적으로 시민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1998년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이 시행된 해다. “국회 특활비가 도입된 게 1994년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문제 제기할 방법이 마땅찮았습니다. 그러다 마침 정보공개법이 생겼어요. 행정부 견제를 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죠.”

이후 하승수 대표는 정보공개법을 활용한 예산 감시와 더불어 사회 개혁 활동을 꾸준히 벌였다. 참여연대에서 납세자운동팀장으로 정부의 조세정책을 감시했고,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은 비영리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초대 소장을 맡기도 했다.

그의 타깃은 오로지 ‘국회’다. 하승수 대표는 “깜깜이 예산을 투명하게 하려면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 ‘키(key)’를 쥔 곳이 바로 국회”라며 “특권 없고 투명한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송 끝에 얻어낸 예산 증빙서류들을 차곡차곡 모아 정리하고 있습니다. 광화문광장이나 시청광장처럼 많은 사람이 올 수 있는 공간에서 ‘특활비 영수증 전시’를 열어볼까 해요.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이 제대로 심판할 수 있도록 말이죠!”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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