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쇼카 퇴사자 9명 만나 보니
“브랜드가 워낙 좋다보니 돈도, 열정 넘치는 청년들도 온다. 그런데 지금의 조직 구조에선 건강하게 성장하기가 힘들다. 들어간 돈도 제대로 쓰이기 어렵다.”
지난 2월 말, 비영리·소셜섹터 내 몇몇 종사자로부터 더나은미래로 제보가 들어왔다. 아쇼카 한국 내부가 시끄럽다는 것. ‘조직 이슈’를 앓는 건 한두 곳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쇼카’는 비영리·소셜섹터 영역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1978년 빌 드레이튼이 설립한 아쇼카는 40여 년간 사회적기업가를 지원한 글로벌 비영리 조직이다. 2013년 한국에서의 데뷔도 큰 주목을 받았다. 현대해상과 현대백화점이 창립 파트너로 총 30억원을 보탰고, 2016년에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으로부터 1만주씩 3년, 약 30억원의 ‘통 큰’ 기부도 받았다. 올해로 5년차 신생 조직의 업력과 규모 대비 큰 액수의 기부금이다. 현재 아쇼카에 근무하는 직원도 총 9명으로, 10인 미만의 작은 조직이다(인턴 제외).
그러나 지난 2016년 중순부터 지금까지 13명의 직원들이 아쇼카를 떠났다. 아쇼카 내부에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더나은미래는 두 달에 걸쳐 아쇼카를 그만둔 퇴사자 9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애정하고 선망했던 아쇼카, 이대로는 안된다”면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더나은미래는 퇴사자 9명의 이야기를 종합해 아쇼카 한국의 내부 구조를 짚었다.
◇’아쇼카 핏(fit)’, 6개월 단기계약?
아쇼카 내부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2016년. 김범수 의장이 기부한 카카오 주식 1만주가 들어오면서부터다. 새롭게 들어온 8억원은 기부자의 요청에 따라 ‘교육 분야’에 써야했다. 이전과는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했고, 인력도 충원해야 했다. 급작스레 규모가 커진 만큼 대표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내부에선 여러가지 갈등이 불거졌다. ‘채용 방식’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아쇼카의 채용 절차는 복잡하다. 사단법인 아쇼카 한국로부터 월급을 받지만 정규직이 되려면 글로벌 본부의 채용 절차를 거쳐야 한다. 평균 6개월도 넘게 걸린다고 한다. ‘아쇼카 핏(fit)’을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다.
문제는 글로벌의 복잡한 절차를 이유로, ‘단기 계약’을 남발했다는 것. 정규직은 글로벌 절차를 밟아야 하다보니, 일단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장의 일손이 급했던 2017년엔 한국 면접을 통과한 3명 모두를 ‘6개월 단기계약’으로 뽑았다. 일단 일은 시작하고 ‘글로벌 면접 절차’를 밟자는 거였다. 그당시 채용 공고엔 ‘3차 아쇼카 글로벌팀 면접이 있다’고만 명시됐을 뿐, 6개월이나 걸릴 수 있다는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입사했던 청년들 중 글로벌 면접에 통과한 사람은 없다. 6개월간 일하다 면접에서 탈락해 계약기간이 끝나 나가기도 하고, 2개월 단기계약직으로 입사했다가 재계약을 맺기도 했다. 국내법상 계약직으로 2년을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다보니, 마지막엔 4개월짜리 계약 제의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사실 ‘계약직’ 자체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건강한 조직 구조라고 보기는 힘들다. 더구나 아쇼카에 들어간 기부금 규모에, 퇴사자들이 말하는 ‘업무량’을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직위의 안정성, 일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것. 1년 이상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한 직원에겐 중요한 글로벌 사업 중 하나를 도맡아야 하는 업무가 주어졌다고 한다. 그는 “계약직으로 어디까지 해야하는지 혼란스러웠고, 고용형태에서 오는 불안함이 컸다”고 했다.
◇리더를 견제할 거버넌스 전무(全無)
내부에선 대표에게 수차례 문제 제기를 했다고 한다. 단타성 계약직을 돌리는 대신, 글로벌에 강력하게 항의하든지 어떤 방식으로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 조직을 꾸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타의로 줄줄이 나가야하는 상황이 되니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그러나 L대표는 “글로벌 채용 절차라 어쩔 수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본부와 이야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수년간 반복됐다. 그러나 퇴사자 대부분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을 고용하고 함께 일해야 하는 주체는 한국 법인인데, 대표가 본부와 적극적으로 맞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 결과적으로, 복잡한 채용 절차로 인한 부담은 아래로 전가됐다. 현재 아쇼카에 근무하는 인원 9명 중 정규직은 대표와 부대표 2명이 전부. 나머지 7명은 6개월~2년 계약직 컨설턴트다.
더나은미래와 만난 이들은 “사업, 인사, 실행 등 모든 것을 대표가 결정하고 통보하는 게 또 다른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업무도 수시로 바꼈다. 직군이 3일 만에 바뀐 적도 있었다.
아쇼카의 ‘내부 문제’가 이렇게까지 터져 나온 건, 리더를 견제할만한 거버넌스가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내부 균형을 맞출 장치가 전무했기 때문. 아쇼카의 이사회는 이사장이기도 한 L대표를 포함해 3명. 현재 2명의 이사 모두 1년여 전에 임기도 만료됐다. 지난 1년간 제대로 된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수의 퇴사자는 “본부에 ‘아쇼카 한국이 (당신들의 채용을 통해 선발된) 리더십으로 조직 내 어려움이 있다’고도 알렸지만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고 했다.
2016년 첫 해 8억원의 가치였던 카카오 주식 1만주는 지난해 9월엔 15억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아쇼카의 홈페이지엔 어떠한 재정 보고나 사업 보고도 없다. 그나마 예전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2013년 회계 연도 재무 결산이 유일한 정보다. 아쇼카 한국은 매년 지출한 금액의 약 18%를 로열티·소프트웨어 및 자료 사용비 등으로 본부에 보내는 구조다.
◇달라지는 아쇼카, 구체적인 대안은?
아쇼카 L대표는 “2017년이 특수한 시기였고, 명백한 시행착오였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펀드를 받으면서 사람이 갑작스럽게 필요했던 게 사실이고, 글로벌 면접을 통과할거라 생각해 6개월 계약을 맺었는데 잘 안 되면서 혼란을 겪었다”며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개선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글로벌 채용 절차에 대해 L대표는 “글로벌 절차가 갖는 의의가 있어 하루아침에 다 바꿀 수는 없지만 한국 실정에 맞게 글로벌을 설득해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5월엔 처음으로 2년 계약직으로 입사한 사람도 있다”면서 “앞으로 글로벌 면접 과정도 입사 전에 밟는 것으로 내부 원칙을 정했다”고도 했다. 또한 “글로벌의 인사채용 프로세스와 분리되어 특수한 사업의 목적을 수행하는 자회사 설립을 통해 한국지부에서 독자적으로 고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업과 관련해선 “아쇼카 한국은 매주 글로벌 본부에 보고 및 공유하고 있으며, 기부자에겐 3개월에 한번씩 재무 및 활동보고를 해 왔다”고 했다. 그는 “아쇼카를 이해하는 사람이 이사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2016년부턴 이사장을 겸직했지만 이사회의 기능을 생각하진 못했다”며 “아쇼카가 지속가능한 조직이 될 수 있도록 올해 안에 새롭게 이사회를 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