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TALK] 젠더 관점 투자 시작한 글로벌 시장… 한국은?
삼성전자는 지난 23일 열린 이사회에서 국내 첫 여성 법제처장을 지낸 김선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사회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투명하지 못하다’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지적에 따른 조치다. 실제로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는 지난해 7월 기업의 재무 성과 외에도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가치에 비중을 두고 투자하는 ‘ESG 펀드’ 규모를 1조엔(약 10조원)에서 3조엔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GPIF는 투자 시 ‘기업 내 여성 참여’를 반영하고 있다.
성평등 이슈가 기업 문화 차원을 넘어 투자에도 적용되고 있다. 여성 친화 기업 및 여성 창업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젠더 관점의 투자(Gender Lens Investing)’가 최근 경제 시장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녹색기후기금(이하 GCF)은 ‘젠더 투자계’에 큰손으로 꼽힌다. 개도국 여성들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비즈니스 대출 프로그램인 ‘위민 레드 엠에스엠이(Women Led Msme)’ 사업이 대표적이다. GCF는 2016년 몽골 2위 금융기관인 하스뱅크(XAC BANK)에 약 215억원의 기금을 저리(低利)로 대출해주는 대신, 여성 친화적 몽골 중소기업에게 쓰도록 했다. 그 조건으로는 ▲CEO가 여성이거나 ▲여성 관리자 및 이사진 30% 이상 ▲여성 직원 40% 이상 등을 내걸었다. 현지 기업들은 시중은행보다 대폭 싼 이자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데, 현재 지출된 기금 중 절반 이상이 여성 친화 기업에 대출됐다. 또한 GCF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에도 약 4000억원의 여신을 제공, 이 중 21억원 이상을 젠더 관점의 투자 사업에 쓰도록 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성 다양성’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요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박형건 GCF 민간협력국 금융부분 팀장은 “산업은행도 GCF의 기금을 받아 친환경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여신 사업을 하고 있는데, 대출 심사를 할 때 채용·근무 등 항목에서 양성 평등 요소들을 반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 혁신가를 찾고 선정하는 비영리 조직 아쇼카 글로벌은 한양대의 ‘아쇼카U’ 가입 과정에서 젠더 다양성을 주요 권고 사항으로 제시했다. 한양대 사회혁신위원회에 여성 위원들을 최소 30% 이상 구성하라는 조건이었다. 아쇼카U는 사회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글로벌 대학들의 네트워크로, 미국의 코넬대·듀크대·존스홉킨스대 등이 가입돼있다. 서진석 한양대학교 사회혁신센터장은 “아쇼카U는 성별·지역·종교 등에 차별을 두지 않고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4명의 여성 위원을 추가했다”면서 “현재 총 41명 중 14명이 여성 위원이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투자자들은 성별·인종·국적 등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조직이 더욱 합리적이고 투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평가한다”면서 “투자 항목에 성별·다양성 등 비재무 정보가 포함되는 추세에 발맞춰, 기업들은 조직 내 양성 평등 정책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식의 전환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6년 연속 OECD 국가 중 유리천장(glass-ceiling) 지수 꼴찌,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 보수적인 한국 기업 문화에도 젠더 감수성이 이식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