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5대 그룹 CSR, 내년 해빙기 맞나
최근 대기업 지속가능경영팀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회의가 열린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가 발표된 이후, 상생·지배구조 개선·사회책임투자 등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이슈가 연일 터져나오기 때문. 정부 어젠다가 지속가능경영 전반을 포괄하는 만큼 전략기획팀, 사회공헌팀, 환경전략팀, 사회공헌팀, CSR·CSV팀, IR팀 등 부서별 협업을 통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데이터를 관리 및 공유하는 등 대응 방식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얼어붙었던 5대그룹의 CSR이 2018년을 기점으로 시동이 걸릴 것”이라 전망한다.
◇지배구조 개선·투명한 공개로 신뢰 높인다
최순실 사태 이후 지난 1년간 두문불출했던 삼성그룹은 11월 24일 이인용 삼성 사회봉사단장의 임명을 기점으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이 단장은 “상당 규모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해왔지만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떠오르는게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사회공헌 관련 조직을 어떻게 정비할지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조직 변화를 예고했다. 12년간 삼성그룹에서 홍보를 총괄해온 이 단장이 삼성 사회봉사단을 총괄하게 되자, 업계에선 삼성이 향후 투명성과 CSR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의 16개 계열사 중 4곳이 ‘2017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CSR 공시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CSR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를 설립하고, 산하에 CSR리스크관리협의회를 신설했다. CSR리스크에 대한 사내 관리체계 감독과 이슈사항 해결 방안을 협의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사회 9명 중 사외이사가 5명으로 법에서 요구하는 과반수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고, 3명의 사외이사가 소위원회 6개 중 4개 위원회에 소속돼 전문성 있는 의견개진이 어려운 구조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관련기사: 삼성 사회공헌, 1년의 침묵 깨나…CSR 투명성 강화돼야
5대그룹 모두 ESG 정보 공시 강화를 위해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의 도입으로 투자자·소비자들의 감시와 견제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 현대차그룹은 올해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를 작성해 공시했고, 주요 투자들과의 면담과 친환경차·미래기술 설명회 등을 통해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했다. 현대차그룹 사회문화팀 관계자는 “거버넌스 측면에선 전략 및 리더십 부문을 주요 평가항목으로 선정해 사회적책임에 대한 경영층의 참여과 관심을 높이고 있다”면서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우수계열사에 포상은 물론 연4회 임원·실무급 사회공헌협의회를 통해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롯데그룹 역시 지난 2월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을 사회공헌위원장으로 선임한 뒤, 7월 전면적인 사회공헌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특히 롯데지주 CSV팀장과 유통·식품·화학·호텔 및 서비스 등4개 유통사업부문(BU) 담당임원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신설해 실행력을 강화한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주요 키워드는 사회적가치와 사회문제 해결···기부금 집행은 깐깐하게
2018년 5대그룹의 CSR은 ‘사회적가치’ 창출을 위한 전략에 집중될 전망이다. SK그룹은 내년부터 계열사 각 조직별로 사회적가치 측정 및 평가를 시작한다. TF가 평가 지표 개발을 완료하면 계열사별로 사회적가치 관련 조직을 확대하고, KPI가 높은 조직에 사회적가치 관련 상을 수여할 계획이다. 사회적기업 지원 규모도 커진다. SK사회공헌위원회 관계자는 “사회적기업의 사회적가치를 측정해 제공해온 사회성과인센티브(SPC) 규모를 기존 93개 기업에서 130곳으로 늘린다”면서 “국내 최초로 IBK투자증권과 100억원 규모의 사회적기업 전문 투자펀드를 론칭해 사회적금융 활성화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LG그룹은 특히 ‘상생’에 집중할 계획이다. LG그룹 관계자는 “2018년부터 협력사를 대상으로 8581억원의 무이자·저금리의 대출을 지원하고, 거래관계 개선과 자금지원 중심의 상생협력 범위를 환경·안전·보건·에너지 등 CSR 전분야로 확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LG는 일찍이 CSR자체 체크리스트를 개발해 협력사의 자가진단과 CSR 컨설팅 및 교육을 지원해왔다.
계열사별 역량을 살린 사회공헌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공통점도 엿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 사회봉사단 주도로 계열사별 사회공헌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임직원의 역량 및 재능을 살리는 사회공헌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역시 “계열사의 전략적 사회공헌을 강화하고 인적역량을 강화할 것”이라 설명했다. 특히 지난 5년간 2723명의 일자리를 창출한 노하우를 살려2018년엔 향후 5년의 창업지원 방안을 수립, 발표할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여성·아동을 위한 사회공헌을 통해 사회적가치를 높이고, 지주사와 계열사간 협업을 강화하는 등 CSR 전문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SK는 “계열사를 비롯한 타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사회공헌 모델 ‘행복얼라이언스’를 대폭 강화할 것”이라 설명했다.
한편 5대그룹의 기부금 집행 절차는 보다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LG는 법무·재무·CSR부문으로 구성된 ‘기부심의회’의 심사를 거쳐 관련 규정이 준수될 경우에만 후원금을 집행하기로 내부 규정을 강화했다. 롯데 역시 지난 6월부터 매출 2조 이상 계열사는 10억원 이상 기부금 집행시 이사회의결을, 1억원 이상은 경영위원회 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그외 계열사는 5억원 이상 집행시 이사회 의결, 5000만원 이상은 내부위원회 의결을 요한다. 앞서 삼성과 SK는 미르·K스포츠재단 후원 논란으로 10억원 이상 기부금 및 사회공헌 집행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는 등 절차를 강화한 바 있다.
김종대 인하대 경영대학 교수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지속가능경영 이슈가 커지는 만큼, 내년부터 CSR을 잘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며 “기업이 경제·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 및 평가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개선할 때 투자자·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