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NPO지원센터, ‘비영리 스타트업 데모데이’ 개최
혁신적인 사회문제 해결 아이디어, 초기 자본금 지원
‘비영리 스타트업’
언뜻 봐선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만났다. 새로운 기술, 창의적인 생각, 빠른 의사결정 등 ‘스타트업(Startup)’의 강점을 갖추되, 수익이나 상장이 목적이 아닌 ‘비영리(nonprofit)’ 형태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다. 해외에선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형태로 ‘비영리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곳이 늘고 있다. 저개발국의 환자들을 위한 의료 기부 소셜 펀딩 플랫폼 왓시(Watsi)나 기업, 도시, 국가를 위해 부패하지 않는 디지털 거버넌스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데모크라시 어스(Democracy Earth)’등도 비영리 스타트업이다. 해외에는 ‘패스트 포워드(Fast Forward)’ 같이 기술기반 비영리 스타트업만을 전문으로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 기관도 존재하고, 미국의 유명 엑셀러레이터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에서도 비영리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같은 ‘비영리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을까.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디캠프에서 ‘비영리 스타트업 쇼케이스’가 열렸다. 이번 쇼케이스는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진행한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사업’에 선발된 곳을 대중에게 처음 소개하는 자리다.
올해 국내 최초로 시도된 ‘비영리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험할 수 있도록 ‘초기 자본금’을 지원하고, 다음 단계로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 총 62개의 지원팀 중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5팀이 3개월에 걸쳐 실험을 이어왔다. 양석원 서울시NPO지원센터 성장지원팀 PM은 “문제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지, 3개월 내에 실험과 검증이 가능한지 등의 기준을 가지고 총 5팀을 선발했다”며 “법인 형태나 ‘시드머니’를 쓰는 용도를 제한하지 않고, 3개월간 초기 실험을 해볼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이날 선보인 비영리스타트업을 소개한다.
◇국회의원 캐릭터 다마고치 키우고, 법안 들여다보고… 2030 입법 소개 특화 플랫폼 ‘투정(2jung)’
“공무원 증원안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반대하고 난리가 났는데, 정작 국회의원 보좌관 300명 증원하는 법률안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금새 통과됐잖아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높아졌는데, 입법과정은 알기도 어렵고, 여전히 멀게 느껴져요. 기사가 나간 뒤에야 아는 경우가 많고요. 법안이 올라왔을 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김예인 투정 PM)
프로그래밍 동아리에서 만난 다섯 명이 뭉쳐 만든 ‘투정(2jung)’은 2030을 위한 법안 특화 플랫폼을 개발한다. ‘투정’은 ‘정치를 향한 온 국민의 투정’이라는 뜻. 김예인 PM은 “젊은 청년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입법은 여전히 ‘먼 이야기’라는 문제를 풀고 싶었다”고 했다. 베타 사이트를 오픈한 지 10여일, SNS형 피드에서 개인의 관심사를 설정하면 관련된 법안이 올라왔을 때 피드에서 받아볼 수 있다. 클릭 세 번이면 국회의원에게 청원을 보낼 수도 있다. 김 PM은 “육아휴직, 포항 지진, 데이트폭력, 스타트업 등 우리와 먼 것 같아도 실제로 보면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게 법”이라며 “더 많은 청년들이 법에 흥미를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고 했다.
‘투정’에서 현재 개발하는 건 ‘국회의원 다마고치 게임’. 추억의 게임 ‘다마고치’ 캐릭터를 돌보듯, 원하는 국회의원 캐릭터를 선택해, 법안 SNS 플랫폼에서 활동할수록 쌓이는 포인트를 활용해 주기적으로 밥도 주고, 놀아주며 키우는 게임이다. 시작할 때는 ‘백수’인 캐릭터를 ‘후보자’, ‘국회의원’까지 키울 수 있다. “가볍게 시작해서 재미있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더 해보고 싶은데 자금이 없던 차에 ‘비영리스타트업’에 지원하게 됐다”는 김예인 PM은 “게임을 정교하고 재미있게 개발하는 게 지금의 과제”라고 했다. 게임은 현재 프로토타입까지 개발된 상태. 인디게임 개발자를 인터뷰하면서 수정을 거듭하는 중이다.
“2030세대에선 캐릭터와 굿즈가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빠른 시일 내에 재미있는 게임을 선보여서 정치와 입법을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특허기술’ 활용해 유실견 찾아드립니다… 동물개체인식연구소
“사람에게 지문이 있듯, 반려견은 저마다 각기 다른 코 모양인 ‘비문(鼻紋)’을 가지고 있어요. 비문을 찍어 플랫폼에 올리고, 올라온 사진과 일치도를 판독해, 유실견의 주인을 쉽게 찾아줄 수 있습니다.” (이민정 동물개체인식연구소장)
반려동물 1000만 시대. 그러나 2016년 기준 6만3000마리의 반려견이 길거리에 유기·유실됐다. 이중 집으로 돌아간 비중은 고작 15%. 특히 견주가 애타게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는, 이른바 ‘유실견’ 문제에 집중한 곳이 있다. ‘비문’을 인식하는 특허기술을 통해 유실견 주인을 쉽게 찾아줄 수 있다는 ‘동물개체인식연구소’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상에 따르면,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반려견을 등록하게 되어있지만 등록율이 낮아요. 몸에 심어야 하는 내장 칩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외장형 목걸이는 분실률이 높다는 한계도 있고요. 컴퓨터 기술과 비문이 만나면 이 문제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봤습니다. 두 기술을 결합해 반려견 비문 사진을 찍어 플랫폼에 올리면 누구 개인지 쉽게 판별하게 할 수 있는 거죠. 이게 국가 시스템으로 등록되면 반려견 유실·유기 문화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동물개체인식연구소는 ‘기술기반’의 비영리 스타트업. 이민정 소장이 대학원 석사 당시 등록했던 비문판독 특허기술과 출원 2개가 기반이 됐다. 누구나 손쉽게 비문 사진을 찍어 올리면 본인의 개를 판독할 수 있도록 안전하고 편리한 수단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기술을 바탕으로, 비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알고리즘을 개선하고 웹 서버를 구축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웹사이트에서 반려견으로 판독된 사진을 클릭하면 어느 보호소에서 보호하고 있는지도 확인 가능하다. 현재 94.9%의 확률로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을 수 있다.
“비문등록은 인간 지문을 활용한 주민등록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안전하고 저렴하고 간편한 시스템이에요. 결국은 국가의 동물등록 시스템으로 도입되길 바랍니다. 안락사시키는 유실견이 줄면서 약 114억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광견병·브루셀라병 등 공중보건상 중요한 병을 역추적 하는데도 중요한 기능을 할 것이고, 책임있는 반려동물 문화의 기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IT기술·새로운 시각, 목표는 사회변화… 비영리 스타트업 키워드
기부자와 수혜자 잇는 ‘사각사각프로젝트’, 장애인 매핑 ‘위에이블’, 동네 놀이 플랫폼 ‘시스브로’…. 이날 쇼케이스 현장에서는 ‘입법문제’와 ‘유실견 문제’ 외에도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전장을 내민 ‘비영리 스타트업’이 선보였다. 복지 사각지대의 이웃들과 개인 기부자들을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 ‘사각사각프로젝트’의 한정화 PM은 ‘찾아가는 복지센터 ‘따동’ 모델이나 기존 크라우드펀딩 모델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에 대해 “웹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툴’을 개발한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효과적으로 쓰이는 툴이 되길 바라며, 이러한 환경이 조성됐을때 기부문화를 더 효과적이고 투명하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문화된 온라인 플랫폼과 기부금의 100% 전달을 통해 새로운 기부 모델을 시도하고 싶다”고 했다.
50명 이상의 장애·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서울시내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카페나 문화공간 정보를 매핑하는 위에이블의 송덕진 마스터는 “기존의 장애접근지도가 박물관 같은 딱딱한 공간만을 대상으로 했다면, 위에이블에서는 ‘대림창고 갤러리카페’ 같이 일반인들에게도 ‘핫’하고 좋은 공간들 중에 함께 갈 수 있는 곳들을 찾아 엘리베이터나 화장실의 이용가능 여부, 경사턱 유무, 출입문의 폭 등을 조사하는 중”이라며 “서울 남부 장애인복지관에서는 지금까지 모인 지도 데이터를 활용해 도심 여행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언니 오빠들이 모여 동네 아이들과 놀아주는 플랫폼인 ‘시스브로’를 이끄는 김은주 공동대표는 “아이들이 동네 놀이터에서 뛰어놀 수 있는 경험을 주기 위해 시스브로를 시작하게 됐다”며 “지난 8월부터 성동구와 광진구 두 곳에서, 총 480명의 아이들을 60명의 언니 오빠 자원봉사자들이 53회에 걸쳐 노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양석원 서울시NPO지원센터 성장지원팀 PM은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사업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만큼, 이 자리에서 선보인 비영리 스타트업과 다양한 곳이 연결되거나 새로운 협력이 일어나는 등, 이후 자원 연계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