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청년, 이주여성을 어엿한 ‘선생님’으로 변신시키다

이주여성, 다문화 요리강사가 되다

 

#1. 중국에서 치과의사로 일했던 주채홍(38세)씨는 지난 2008년 국제결혼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적응은 쉽지 않았다. 경력을 살릴만한 직장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중국에서 알아주는 전문직 종사자였지만 본국에서의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이를 낳고부터는 그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2. 몽골인 서드 초롱(38세)씨는 어린이집 교사였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한국에 왔지만, 한국어가 미숙한 그녀가 일자리를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서드씨는 식당 일을 하다가 근처 미싱 공장에 취직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일해도 한 달에 버는 돈은 100만원 남짓. 그녀는 결국 육아를 위해 공장 일도 그만둬야했다. 

그런데 최근 두 사람에게 어엿한 직장이 생겼다. ‘다문화 아동 요리 강사’라는 직함도 달았다. 고려대 인액터스(Enactus) 팀에서 시작한 ‘다울림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다울림 프로젝트란, 기회가 없어서 또는 사회의 편견때문에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주여성들을 어린이집 출강 강사로 양성하는 프로젝트다. 지난 2013년 첫 유료 출강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총 8명의 다문화 강사를 배출하고 서울시내 4000명 이상의 아이들에게 수업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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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수업을 앞두고 서드 초롱 강사의 설명을 듣는 아이들. ⓒ다울림

 

◇ 이주여성을 위한 ‘좋은’ 직업 만들기

 

“처음에는 선생님들 모두 ‘한국 사람이 무섭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안하다’고 하셨어요. 한국인과의 소통에 두려움이 컸죠. 해결 방안을 찾다가, 선생님도 누군가의 어머니시니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괜찮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이에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강사를 양성하기로 했습니다.” (문다은(22) 다울림 프로젝트 매니저·고려대 경제학과 3년)

2011년, 다울림은 이주여성들을 지원하는 한 복지관에 강사 모집 공고를 내며 첫 발을 뗐다. 당시 선발된 4명의 강사들은 6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수업을 듣고 실습을 하며 아동요리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처음 2년간은 계약이 없어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강사들은 자신을 지지해준 학생들에 대한 신뢰에 힘입어 자리를 지켰다. 특히 몽골 출신 서드 초롱 강사는 프로젝트 시작부터 5년째 함께하며 전문가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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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수업 중인 주채홍 강사. ⓒ다울림

다울림의 다문화 수업은 크게 요리수업과 문화수업으로 구성된다. 수업을 맡은 강사가 자국의 요리와 문화를 설명하면, 아이들은 그 나라의 인사말을 배우고 음식을 만들며 새로운 문화를 접한다. 치파오, 기모노 등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어보고, 몽골의 양 가면, 일본 인형 ‘테루테루보즈‘ 등을 직접 만들어보는 등의 체험도 한다. 재미있는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 ’다른 문화‘를 인식하고 이해하게 된다.

문다은 다울림 매니저는 “아이들이 이제 강사분들을 보면 ‘일본 선생님 또 왔다’ 하면서 먼저 달려와서 안긴다”면서 “수업 때 먹어본 요리 이름도 기억하고, 유치원에 그 나라에서 온 다문화 아동이 있으면 여러 가지 물어보면서 관심을 더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반응에 유치원 선생님들의 반응도 뜨겁다. 다문화 교육을 더 받고 싶다는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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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수업에서 강사의 말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 ⓒ다울림

현재 다울림에는 몽골, 베트남, 중국, 일본 출신의 네 명의 강사들이 한 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수업 경력만 3년이 넘는 베테랑들. 능숙하게 한국말로 피피티 강의도 하고, 강사들이 직접 출강하는 어린이집을 관리하며 영업 전화도 돌릴 정도다. 하지만 다울림 프로젝트의 사업이 지금처럼 안정궤도에 들어서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쉽진 않았죠. 특히 영업이 가장 힘들었어요. 전화를 하면 대부분 기관이 ‘죄송합니다’하고 끊으시는데, ‘다문화 교육 그런 거 왜 하느냐’고 도리어 성질을 내는 분도 계셨어요. ‘우리는 다문화 원생 없으니 필요 없다’고도 하시구요. 그래도 교육부 누리과정 지원 등 혜택을 소개하며 잘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어요.”
(남상규(25) 다울림 프로젝트 팀원·고려대 사회학과 4년)

몽골 서드초롱 강사가 아이들과 함께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있다. ⓒ다울림
몽골 서드초롱 강사가 아이들과 함께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있다. ⓒ다울림

프로젝트 초기에는 인액터스 팀원들이 사업계획서 및 강의자료 제작, 출강 기관 영업까지 전부 담당했다. 어린이집의 원장부터 정부 관계자까지 대면하는 ‘비즈니스’의 영역이 대학생인 팀원들에게 다소 어려웠던 것도 사실. 그럼에도 다울림을 지금까지 끌고 온 원동력은 강사들과 팀원들 간의 끈끈한 소통이었다. 이들은 몇 년째 매주 일요일 오후마다 만나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수업에 대한 사항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다들 학생이라 프로젝트를 공부와 병행하는데, 일주일에 200통씩 전화를 돌릴 때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한시도 쉬지 않고 자료를 만들고 영업 콘텐츠를 개발하고, 출강기관을 관리했으니까요.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강사 분들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 힘을 얻었습니다. ‘고생했어’ 한 마디에 많은 위로를 받았죠.” (문다은 매니저)

다울림의 강사들은 매주 일요일 만나 회의를 하며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은다. ⓒ다울림
다울림의 강사들은 매주 일요일 만나 회의를 하며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은다. ⓒ다울림

 

◇ 다울림 수업 요청 쇄도···자립 모델까지 

 

지역 내 입소문이 나면서 매해 출강기관 숫자도 늘었다. 무료 시연회를 다니며 시작한 사업이, 이제는 1년 단위 계약을 척척 맺을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 강사들은 25개 유치원 및 어린이집에 출강 중이다. 올해 신규 계약만 13건. 작년에 계약한 어린이집의 재계약 비율이 50%를 넘었다. 2014년도에는 사회 환원교육기관에 부여하는 교육기부기관 인증마크도 획득했다.

강사들도 한 달에 평균 70-80만원의 수익을 꾸준히 올린다. 경제적 자립에 충분한 금액은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도 저녁에 아이를 돌볼 수 있어 강사들의 만족도가 높다. 다울림을 통해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강사들 모두가 한국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 또한 커다란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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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주채홍 강사와 함께 용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 ⓒ다울림

“선생님들이 전보다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게 되셨어요. 이전엔 그저 외국인이었다면, 이제는 한국 사람이나 자녀들의 학교 선생님에게 다문화 강사라고 밝히고 자신있게 소통하신다고 해요. 선생님 자녀들도 친구에게 자랑도 하고, 인터넷에 엄마 이름을 쳐본다고 하구요.” (이규성(23) 前 프로젝트 매니저·고려대 언어학과 4년)

다울림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이주여성 강사들이 스스로 사업을 이끌어 갈 수 있을 만큼 자립하는 것. 이를 위해 강사들은 인액터스 팀원들이 도맡아 하던 역할을 하나씩 분담하며 행정적 업무들을 배워가고 있다. 추후에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다.

김혜영(22) 다울림 프로젝트 팀원(고려대 사학과 3년)은 “몽골 선생님은 ‘할머니가 될 때까지 다울림 강사를 계속 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며 “앞으로도 다문화 수업을 통해 선생님들의 자립도 돕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다문화 감수성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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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울림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고려대 인액터스 팀원들.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혜영, 남상규, 문다은, 박지헌, 이규성. ⓒ박혜연 기자

다울림 강사들의 다문화 요리 레시피를 공개합니다
더나은미래와 다울림 프로젝트가 월 2회 다문화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는 ‘Recipe&Good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다울림의 이주여성 강사들이 직접 소개하는 전세계 다채로운 요리들, 레시피 속에 녹아있는 강사들의 스토리도 엿볼 수 있습니다. ‘Recipe&Good’ 1편은 4월 중순에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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