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기술’ 로 생산망을 혁신하다.. 레이버 보이시스(Labor Voices)

9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사망자 1130명에 부상자 2500여명. 2013 4월 방글라데시에서 무너진 의류공장라나플라자참사다.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꼽히는 사고지만, 이런 사고가 처음은 아니다. 공장 화재·붕괴, 노동자 자살 등 생산망(supply chain) 사고는 수십 년간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임금에 기반해, 다단계의 하청구조로 이뤄진 의류·제조 산업 구조에서 노동자의 인건비와 근로환경은 계속 열악하게 남아있었기 때문

기술이 생산망 구조를 바꿀 수는 없을까.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임팩트 기업레이버 보이시스(Labor Voices)에서 야심찬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해 초, 공장 직원들로부터 직접 정보를 취합해 공개하는 플랫폼인심포니(Symphony)’를 선보인 것. 콜 길(Kohl Gill, 사진) 창립자는심포니를 통해 올해 아쇼카 펠로우로도 선정됐다.

ⓒ주선영
ⓒ주선영

내부 직원들이 익명으로 회사를 평가하는글래스도어(Glassdoor)’나 여행자의 의견을 모으는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or)’같은 서비스가 있잖아요. ‘심포니(Symphony)’는 그런 서비스의 의류 공장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저희는 의류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로부터 직접 정보를 취합합니다. 어떤 기업 제품을 생산하는지, 임금 수준·근로 환경,성희롱이나 아동 노동 활용 여부는 어떤지 등 상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어요. 이 정보가 쌓이면 각 공장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고, 공장 간에 순위도 매겨집니다.”

정보는 어떻게 취합될까. 의류공장 노동자가심포니로 전화를 걸면 자동응답시스템으로 연결된다. 노동자가 근무하는 공장 상황에 대해 익명으로 응답하면, 원하는 정보도 무료로 얻을 수 있다. ‘가까운 지역 내 임금이 가장 높은 공장 5같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 12개월간, 방글라데시와 터키 내 14000여명의 공장 근로자로부터 의류 공장 330곳에 대한 정보가 모였다. 10개월 전까지만 해도 40개 공장에 대한 정보만 있었지만, 의류 공장 근처 기숙사로 찾아가 공장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설명하며 ‘사용자’ 늘려나갔다. 입소문이 나며 이용자도 급증했다. 1년 만에 터키와 방글라데시 내 ‘모든 의류 공장’의 속살이 한 곳에 모이게 된 셈. 

이렇게 취합한 공장 정보는 다국적 기업이나 공장에게는구독방식으로 판매된다. 일정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무료로 공개한다. 모든 공장의 실태가 대중에 낱낱이 공개되는 것. 어짜피 공개될 정보, 기업에서 살 유인이 있을까.

'심포니(Symphony)'프로그램 캡쳐화면. 공급망 전반의 리스크 수치나 각각의 생산공장의 상황이 한눈에 보기좋기 표기된다. 노동자들이 익명으로 응답한 내용도 함께 표기된다. ⓒLabor Voices 홈페이지 캡쳐화면
‘심포니(Symphony)’프로그램 캡쳐화면. 공급망 전반의 리스크 수치나 각각의 생산공장의 상황이 한눈에 보기좋기 표기된다. 노동자들이 익명으로 응답한 내용도 함께 표기된다. ⓒLabor Voices 홈페이지 캡쳐화면

“다국적 의류기업은 생산망 리스크를 관리해야 합니다. 만약 부실했던 공장이 무너지고 자신들의 라벨이라도 나온다면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존 감사방식으로는 공장의 민낯을 알기는 쉽지 않죠. 의류 산업 자체가 하청 구조로 복잡하게 이뤄져있어, 어떤 공장에서 생산하는지 정확히 알기도 힘들고요. 그런데 이미 정보가 공개된 뒤에는 늦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아동 노동을 활용한 제품은 일절 반입을 금지하는 무역 조항이 있거든요. 그런데 정보가 공개된 이후에 생산한 공장에서 ‘아동노동’을 사용했을 확률이 크다면 리스크가 너무 커지는거죠.”

그는 “정보를 유료로 구독하는 기업 수도 늘고 있고, 한 기업에서도 생산망 내 일부 공장에 대한 정보만 구독했다가도 그 비율을 점차 늘리고 있다”고 했다. 

그가 레이버 보이시스를 시작한 건 2013. 지난 3년간은 다국적 기업이 의뢰한 특정 공장들을 들여다보고 조언을 하는 ‘컨설팅 방식’이었지만 올해 ‘심포니’를 선보이며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그는 “하다 보니 노동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정보에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부 감사나 컨설팅 방식으로는 공장에 방문하는 횟수에도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가 어렵습니다. 또 컨설팅을 통해 5개 공장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다고 해도, 의뢰한 기업에 제공하는 것 외에는 노동자에게 정보로서 가치가 부족하고요. 일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경험, 공장 상황을 말할 플랫폼이 있어야 하고, 이들도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돼야 생산망 구조 자체를 바꿀 만한 힘이 생길 것이라고 봤습니다.”

노동자들이 전화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 공장에서 정보를 속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그런 시도도 있었지만, 공장 입장에서 의미가 없다고 했다.

공장 매니저가 강제로 좋게 평가하도록 하기도 했고, 핸드폰을 빼앗아서 자기들이 직접 좋게 평가했던 적도 있어요. 그럼 결국 다시 누군가가 전화해서 그 사실을 알려줘요. 노동자들에게 그런 걸 강요했다는 것 까지 기록에 남으니 더 안 좋은 인상을 줍니다. 이제 공장 입장에서는 이런 거대한 데이터가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산망 내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영국 컨설팅단체임팩트(Impactt)’와도 협력해 자문이 필요한 곳은 연결한다.

의류 생산망문제를 풀어내는 그는 물리학 박사 출신.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던 그의 어머니의 첫 직장도 미시시피주 에 위치했던 의류공장이었다.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 전환이긴 하지만데이터를 다룬다는 사실은 여전히 비슷하다”면서 “앞으로 심포니 플랫폼에서 다루는 국가와 산업을 계속해서 넓혀갈 것”이라고 했다.

“기술을 통해 그간 들리지 않았던 생산망 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한데 모이게 될 겁니다. 이렇게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 생산망 판 자체를 바꿀 것이란 의미에서심포니(Symphony·교향곡)’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방식으로 그간 생산망 내에서 벌어졌던 여러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귀포=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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