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배송업체 페덱스(FedEx)는 세계 배송망을 활용해 재난 피해 현장으로 대용량 물자를 신속하게 전달한다. /페덱스
[재난, 그 후] 자연재해 피해까지… 영역 넓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범위와 영역이 확장하고 있다. 그간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밸류 체인 과정에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해왔다. 최근에는 기업이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재난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해결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석 달 전 태풍 ‘힌남노’로 수해를 입은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복구 작업 중에도 고객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했다. 기업이 고객사의 피해까지 책임지려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드물다. 포스코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장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기후변화로 자연재해 발생건수와 피해규모는 커지고 있다.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소(UNDRR)에 따르면, 2001~2020년 사이 연간 평균 350~500건의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다. UNDRR은 2030년 연간 재난발생 건수가 560건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루 평균 1.5건의 재난이 발생하는 셈이다. 전 세계가 자연재해로부터 위협을 받으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지역에 한정되지 않은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 미국 운송업체 페덱스(FedEx)는 비영리 조직을 통해 피해 지역 복구를 지원한다. 배송업 특성을 살려 대용량 물자를 신속하게 지역사회에 전달하는 게 핵심이다. 구호단체 다이렉트릴리프(Direct Relief), 국제의료봉사단 등 여러 비영리 단체와 협업해 피해 지역에 필요한 물자를 파악하고, 식료품·의약품 등 주요 구호물품을 피해 지역에 전달하는 식이다. 일례로 지난 2020년 1월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65㎞가량 떨어진 탈 화산이 대규모 폭발을 일으켰을 때 페덱스는 지역주민이 화산 분출물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필요한 물품을 즉시 배송했다. 구호물품에는 마스크 23만 2245개, 장갑 2만500개, 고글

지난 9월15일 포항 죽도시장 수산상인회 관계자들이 포항제철소 수해 복구현장을 방문해 위문품을 전달하고 있다. /포스코
[재난, 그 후] 태풍이 지나가고… 고객사·자매마을도 제철소 복구에 뛰어들었다

87일이 흘렀다. 지난 9월 6일 영남 지방을 강타한 태풍 ‘힌남노’로 물에 잠겼던 포항제철소에서는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포항제철소 복구에는 그룹 임직원을 포함해 민·관·군 지원 인력까지 연인원 100만명이 동참했다. 침수 3개월 만에 압연공장 18개 중 7개가 정상화됐다. 포스코는 연말까지 8개 공장을 추가로 재가동해 연내 모든 종류의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압연공장은 용광로(고로)의 쇳물로 만든 철강 반제품에 열과 압력으로 용도에 맞게 철을 가공하는 곳이다. 압연라인이 복구된다는 건 정상적으로 완제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재난이 발생한 직후, 업계에서는 포항제철소 복구 기간을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예상하기도 했다. 복구에 속도를 낼 수 있었던 건 협력사와 고객사, 포항 주민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번 태풍으로 제철소에 유입된 흙탕물은 약 620만t 정도. 서울 여의도 지역을 2.1m 높이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규모다. 복구 작업에서 가장 먼저 진행된 건 지하부터 지상까지 차오른 물을 공장 밖으로 빼내는 ‘배수 작업’이었다. 소방청은 소방차 41대와 소방펌프 224대를 투입했다. 울산 119화학구조센터에서 보유하고 있는 대용량포 방사시스템 2대도 포항제철소에 배치했다. 국내에 단 2대뿐인 대용량포 방사시스템은 분당 최대 7만5000ℓ의 물을 배출할 수 있는 첨단장비로 제철소 주요 침수 지역의 배수 작업 속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객사의 지원도 잇따랐다. 수해 직후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는 포항으로 수중펌프 53대, 발전기 4대, 고압세척기 2대, 기타 장비 41대 등 복구장비 총 100대를 복구 현장으로 보냈다. 포스코 관계자는 “침수된 공장들의 조기 복구를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해 수해를 입은 포항제철소에서 한 직원이 설비에 쌓인 흙더미를 씻어내고 있다. /포스코
[재난, 그 후] 공장 침수된 포스코, 중소기업 473곳에 전화 돌렸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죠. 수출해야 할 물량은 밀려 있는데 핵심 소재를 납품해주던 포항제철소가 물에 잠겨버렸으니까요.” 지난 22일 경기 안산의 시화공단에서 만난 박동석 산일전기 대표는 두 달 전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덮친 당시를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산일전기는 태양광·풍력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특수변압기를 만드는 기업이다. 지난 10년간 매출 600억원을 유지하다가 올해 두 배 가까이 매출이 늘 정도로 수주 물량이 많았다. 생산 라인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핵심 소재인 ‘전기강판’을 공급해주던 포항제철소가 수해를 입은 것이다. 납품이 지연될 경우 수십년간 쌓아왔던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가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자연재해로 발생한 일이라 포스코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며 여러 시나리오를 그려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포스코도 큰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차마 바로 연락을 해볼 수가 없었어요. 일주일 만에 포항에 연락을 했더니 담당자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때 정말 감동했습니다.” 산일전기가 생산하는 변압기의 주소재는 전기강판이다. 전기강판은 규소(Si) 1~5%가 들어간 특수 소재다. 전력 손실이 작고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전동기, 발전기, 변압기 등에 쓰인다. 최근 몇 년 새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전기강판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국내에서 전기강판을 생산하는 곳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박 대표는 “전기강판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 일본, 독일, 중국 정도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라며 “소재를 구하지 못하면 수주 물량을 포기하거나 유럽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